꿈꾸는 엔지니어, 최성필
중학교 때 자전거를 처음 탔다. 유사 MTB로 구불구불한 임도를 내려오며 산악 자전거의 재미를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두 달에 한 번씩은 바퀴가 접혔고 몸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덧나는 일도 흔했다. 고교 2학년 때는 부모님께서 반 석차 10등 안에만 든다면, 95년 당시 120만원을 호가하던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의 보급형 산악 자전거 록하퍼(RockHopper)를 사주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자전거에 미쳐있던 친구 녀석과 함께 석 달 밤을 새가며 학업에 열중했다.
결국 8등을 해내어 꿈에 그리던 록하퍼의 안장 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도 성적이 많이 올라 자이언트(GIANT)의 카본 산악 자전거 MCM을 구입했다. 간절히 원하던 드림카를 거머쥔 두 녀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산길을 누볐었다. 그렇게 남부러울 것 없던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처럼 교내 자전거 보관소에 애마를 묶어 두고 하굣길에 찾으러 갔더니 자전거가 보이질 않더라.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었다. 그제야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쓰러질 수 있단 걸 몸소 체험했다. 그 후 1년 정도 자전거를 멀리 했었다.
자가 정비는 금전을 절약하기 위해 시작했었다. 고1때 PC통신 하이텔의 자전거 동호회 중고장터에서 스페셜라이즈드의 스텀 점퍼(STUMP JUMPER)를 25만원에 구입했는데, 3년 동안 거친 길을 누벼서인지 프레임 외에 구동계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정비를 하기 위해 매장을 찾아갔더니 시마노(SHIMANO) XT 브레이크 패드 교체에 8만원이나 달라고 하더라.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중고 장터에서 부품을 수급해 필요 부속만 교체하는 식으로 자가 정비를 시작했다.
88 서울올림픽의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을 당시 초등학생 최성필은 굽이진 대모산을 자전거로 내려왔을 만큼 떡잎이 남 달랐다. 여세를 몰아 산악 자전거 선수가 되고자 체육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자전거가 좋아 미캐닉이 된 그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는 어른 아이다.
산악 자전거를 꿈꾸던 꿈나무, 미캐닉이되다
한때는 산악 자전거 선수도 꿈꿨었다. 대학 진학을 앞둔 무더운 여름날 용평에 놀러 갔더니 자전거 대회가 펼쳐지고 있더라. 1등 상품은 경차였고 권영학, 노기탁, 최형보 등 1세대 산악 자전거 선수들이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게다가 잡지에서나 보던 최고급 자전거 100여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고 있던 나는 결국 체육대학교를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자전거 타는 것을 취미로만 허락하겠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에는 대학에서 기계 전공을 하게 되었는데, 재료공학이나 구조설계학 등 관심 없는 학문들을 공부해야 하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되더라. 그래서 고교 3학년 때부터 자주 왕래하던 산악 자전거 전문 매장 ‘바이크인코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장 미캐닉에서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 기술 팀장까지
학창시절 제집처럼 드나들던 자전거 매장 사장님께서 자전거의 원리나 구조에 대해서 이해가 쉽도록 설명해주셨었다. 게다가 유사 MTB로 산을 누비다 보니 자전거가 성할 날이 없어서 기초적인 정비법도 알려주셨다. 중1때까지 자전거를 3대나 부러뜨려 먹었으니 오죽했겠나. 중학교 3학년 시절엔 광평서점에서 출간 된지 1년이 지난 마운틴 바이크 액션(Mountain Bike Action) 잡지를 구해서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탐독하며 스템, 핸들바 등의 명칭을 깨우쳤다. 그리고 각 부품들이 따로 판매된다는 사실과 산을 전문으로 누빌 수 있는 자전거가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됐다.
훗날에는 바이크인코리아에서 김성주 씨에게 제대로 된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고급 자전거 시장의 1세대 미캐닉으로 이론과 실전을 완벽히 겸한 인물이었다. 고급 부품들이 망가지면 여분의 부속이 없다시피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작은 부속 하나까지도 직접 제작해낼 만큼 제대로 된 정비를 해냈다. 나 역시 그 때 배운 습관들이 몸에 배여 여전히 작은 부속 하나까지도 각별히 여긴다.
프레임, 휠 세트, 구동계 조합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 조립차 매장에서도 일했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한 자전거들을 시승하면서 각 브랜드별 성향이나 특색들을 깨우쳐 나갔다. 또한, 휠 빌딩 등의 고급 기술을 주로 구사하다 보니 정비 지식이 특별히 많이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많은 공부가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기를 2년, 매장 사장님께서 자전거 매장에서는 앞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자전거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으니 수입상을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며 조언했다.
그 때부터 1년간 제논인터내셔널(현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에 채용공고가 뜰 때까지 매일같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매장 사장님이 추천하기도 했고, 좋아했던 브랜드들을 많이 취급해 마음에 들어서였다. 마침내 공고가 고시되었는데, 물류팀원만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잠시 고민을 했었지만 간절히 기다려왔던 터라 냉큼 지원했다. 면접 때는 본직이 미캐닉이고 기술 지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과 발표까지 어찌나 피가 마르던지 하루가 1년 같더라. 그렇게 물류, 마케팅, 영업직을 각각 1년씩 거친 후에 입사 4년 만에 기술팀장으로 제자리를 찾게 됐다.
물류, 마케팅, 영업, 미캐닉까지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의 전신이었던 제논인터내셔널에서 수입했었던 브랜드만 서른 개가 넘었다. 총 수량만 해도 수 만개에 이르렀었으니 하나라도 잘못 배송된다면 커다란 사고였다. 때문에 물류 일을 하면서 덤벙대던 성격이 많이 꼼꼼해진 것 같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입사 전 4X 대회에서 6위를 한 이력 덕에 인디페스티벌을 기획했다. 누가 참여해도 짜릿한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휘닉스 파크에서 두 달간 숙식하며 크로스마운틴(XM) 코스를 조성했다. 정말 좋아했던 대회를 직접 만들어서 아직도 뿌듯하다.
그리고 단언컨대 영업직이 가장 힘들었다. 미캐닉을 했었기에 매장 사장님들께 제품에 대한 소개도 잘했고 실적도 나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제일만 다가오면 친구 같이 지내던 사장님들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려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어서 잠 못 이룰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그래도 영업 일을 하면서 사람을 파악 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듯 돌이켜보면 모두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자 재산이라 생각한다.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한 기술팀
소비자나 대리점 모두 자신의 선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마지막으로 기댄 곳이 바로 서비스 센터라고 본다. 기술팀원들은 소비자들과의 분쟁으로 인해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많은 소비자들이 본사에 연락을 취하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외국인들은 제품 본연의 기능이 문제없이 작동한다면 이상이 없다고 여긴다. 이들은 나이든 풀 서스펜션 자전거의 링크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다.
한계 수명에 대한 인지 역시 확실해서 사용기간이 오래된 제품이 고장 났을 경우에는 수명이 다했다 여긴다. 카본 프레임의 경우 주물에 넣고 내부를 팽창시키기 때문에 단면이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국내 소비자들은 커다란 문제라 여겨서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사 직원들은 제조상 간혹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일 뿐 성능에는 이상 없으므로 교체를 거부한다. 단, 정말로 기능적인 하자가 있다면 확실한 처리를 보장한다. 이렇듯 지사나 수입상들이 외국 기업과의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아쉬울 따름이다.
원할한 기술 지원을 위한 끈임 없는 노력
보다 원활한 기술 지원을 위해 다양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각종 기술 세미나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매주 밤 12시에 열리는 본사와의 화상회의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를 빗대어 살펴보니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 기술팀의 업무능력은 유럽, 미국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기술력이나 속도면에서 최고 수준이더라. 브랜드 기술팀원들은 실전뿐만 아니라 이론을 놓쳐서는 절대 안 된다. 소비자들의 자전거 지식이 날로 향상되고 있어서 원만하고 확실하게 응대하지 못한다면 회사 전체에 커다란 손실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또한 기술팀 내에서도 세미나를 개최해 특이사항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하고 숙지한다. 담당 업무도 1년을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모든 팀원들이 서로간의 업무를 이해 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 받는다. 기술팀 입구에는 ‘프로정신’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스스로를 기술자라 생각하지 않고 서비스맨임을 강조해 항상 친절하라 당부한다. 한편으로 중국 시장이 날로 성장하고 있어서 이를 필두로 각 브랜드들의 서비스 정책이 아시아 사람들의 성향이나 정서에 맞게끔 점차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제 기술력을 논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미 온라인상에는 수많은 매뉴얼들이 공개돼 있고 부속품 수급도 원활해졌기 때문에 서비스로 승부하는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본다. 머지않아 서비스 센터가 독립해서 기술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을 하고 소통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들도 자전거 브랜드 기술팀의 업무를 보다 깊게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 전자제품 서비스 센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정비의 시작은 세척이다
유지관리를 포함해서 모든 정비의 시작은 세척인 것 같다. 제품 서비스가 접수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청소인데, 문제점을 눈으로 쉽게 발견 할 수 있어서다. 많은 이들이 오염 된 상태에서 문제점을 간과하고 넘어가다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서야 비로소 고장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기적으로 자전거를 정성스럽게 닦아주면서 이곳 저곳을 관심 있게 살펴본다면 큰 문제를 미리 예방 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는 세계적인 서스펜션을 제작하는 폭스(Fox Factory)를 정말로 좋아한다. 폭스 서스펜션에는 수 백 개의 부속들로 가득한데, 출고담당자나 계산대에서 전화를 받는 직원들이 나보다 자사 서스펜션에 대하여 더 잘 알 정도로 엔지니어들의 집단이다. 때문에 기술력과 품질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전세계 서비스 센터들을 대상으로 4박 5일간의 기술 교육을 실시하는 브랜드는 폭스만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장에서는 샘플 제품을 마음껏 분해하면서 충분한 기술 채득을 할 수 있도록 교재를 준비하고 이를 토대로 자세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아울러 각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사후 지원을 진행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기도 편하다.
미캐닉, 자전거를 요리하다
공임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어서 기술자들의 입지가 날로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심도 깊은 정비를 원하는 이들이 만족할 만한 조그만 공방을 열어 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자전거 프레임이나 서스펜션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정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길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늘어났기 다양해졌기 때문에 이론과 실무가 결합된 균형 있는 실력을 다져나갔으면 한다. 과거에는 기술이 중요했지만 근래에는 소비자들과 교감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감성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소통을 보다 중요시 여겼으면 좋겠다. 가끔씩 미캐닉은 요리사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도구를 잘 이용한다고 해서 손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그 요리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온로드(onroad) vol.5, Mechanic Blues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www.specialized.co.kr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 서울특별시 강남구 영동대로 82번길 25)
http://peakpc.co.kr/ (PeaK PC방, 최성필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 전 기술팀장이 운영하는 PC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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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의 역사 : 두 바퀴에 실린 신화와 열정 (2008, 프란체스코 바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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