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자전거 미캐닉은 내 운명, 최자람 : 전 썽이샵 미캐닉이자, 현 루비워크샵 마스터

미캐닉은 내 운명, 최자람
자전거를 탄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을 휴학하고 2년간 공장에서 생산직 일을 했다. 교통비도 줄이고 운동도 할 겸 출퇴근용 자전거를 알아보다 특이한 모양새에 눈길이 간 미니벨로가 스트라이다였다. 일하다 말고 곧장 서울로 달려가 녀석을 구매한 것이 본격적인 자전거 생활의 시작이었다. 막상 두바퀴를 굴려보니 유년시절 바람을 가르며 만끽했던 즐거움이 되살아나더라.

퇴근 후에는 접이식 미니벨로의 이점을 살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로 이동하여 한강 라이딩도 했다. 그렇게 일상 속의 작은 자유를 느끼게 해준 자전거는 삶의 낙이 되어갔다. 시간이 흘러 스트라이다의 달리기 성능에 한계를 느끼곤 보다 빠른 접이식 미니벨로 버디를 일본에서 구매해 왔다. 녀석을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일주를 하며 두바퀴와 함께하는 추억을 켜켜이 쌓아나갔다.

자전거 정비를 시작한 시점인 2005년에서 2006년은 국내에서 미니벨로 붐이 한창 피어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니벨로를 전문적으로 정비 할 수 있는 매장이 전무 하다시피 했다. 자전거에 문제가 생겨 매장을 찾아가도 바퀴가 작다며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정확한 모델명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버디는 내게 자전거에 대한 기계적인 궁금증을 유발시켰던 모델이었다. 즉, 당시 매장들이 미니벨로에 대한 정비지식이 부족했던 것과 함께, 자전거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시너지를 일으켜 자가 정비를 결심하게 한 셈이었다.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준 자전거는 일상 속에서 자유를 선사해주었다. 수많은 자전거를 섭렵하면서 생긴 자전거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리도 했다. 입대한 부대에도 자전거가 유난히 많았기에 사회에서 배운 기술을 더욱 갈고 닦을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자전거 미캐닉이란 직업이 마치 운명처럼 한걸음씩 다가왔던 것이다.


 

온라인 쪽지 하나로 맺어진 인연
2006년 늦가을, 미니벨로 동호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미니벨로 전문 매장을 준비 중이던 유호성 씨(썽이샵 대표, 이하 썽이)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자전거 정비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져만 가던 나는 “함께 일하고 싶다. 정비를 배워보고 싶다.”며 온라인 쪽지를 발송했다. 2007년 2월 <썽이샵>이 오픈 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썽이형과 함께 달려온 셈이다. 당시, 정비학원을 수료하고 곧장 매장을 창업한 썽이형과 그저 자전거를 탈 줄만 알았던 내가 정비 실력이 형편 없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미니벨로에 대한 정보가 국내에는 없다시피 했으니 밤을 새가며 손님 자전거를 교재 삼아 정비 공부를 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커다란 자전거 박스를 이불 삼아 잠들었고, 다음날 눈을 뜨면 목욕탕을 다녀와서 일하기를 6개월 가량 지속했다. 그러다 입대시기가 도래하여, 보름간의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까지도 정비보다는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굴리며 바람 맞는 게 좋았다. 6개월간의 수고로 얻은 정비기술은 내 자전거를 고치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니 그걸로 만족했던 셈이었다.


 

인생을 바꾼 군생활
입대할 때 생활기록부에다 ‘자전거 정비사’로 직업을 써놓았더니, 자대배치 받자마자 군 간부들이 쓸 만한 물건이 왔다며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부대 간부 150여명 중 50명이 자전거를 탔고, 고급 산악 자전거도 많았으니 이등병 때부터 손발에 불이 나도록 수리를 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휴가를 나오면 필요한 자전거 부품이나 공구들을 챙겨서 복귀하곤 했다. 간부들 입장에서는 매장에 방문하지 않아서 좋고, 나 역시 자전거 공부를 할 수 있어 상부상조였던 것이다. 급기야 정비 실력은 나날이 늘어 타 부대까지 입소문이 퍼지더니 파견 정비까지 했다.

여가 시간도 제법 많은 편이었는데,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정비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레너드 진이 저술한 ‘산악자전거 즐겨찾기’와 파크툴에서 출간한 ‘블루 북’에 밑줄을 쳐가며 즐겁게 읽었다. 이 책들은 모두 공구에 대한 설명이 잘 돼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한편, 당시 행정보급관에게 조립해줬던 재활용 자전거는 폐부품들을 수집하여 도색을 직접하고 프레임에 이름도 새겨 넣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군생활을 보내며 정비에 대한 재미를 깨우쳐 자전거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제대 후 일주일 만에 썽이샵 미캐닉으로 복귀했다. 군대에서는 산악 자전거를 집중적으로 다뤘었기에 미니벨로가 콘셉트인 썽이샵에서 배운 기술을 접목하기까지 제법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2년의 공백 기간 동안 국내 자전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모델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모델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웹사이트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밤을 새가며 기술을 다져나갔다.

가족들의 반대도 처음에는 있었다. 요리사 집안인지라 가족들이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 역시 집안내력을 살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했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은 좋아했지만, 요리에는 좀처럼 흥미가 생기질 않더라. 무엇보다 대학을 관두고 자전거 업계에 투신하니 가족들이 서운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미캐닉으로 업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가족들도 자전거에 대한 것을 물어보거나 주변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연락할 만큼 좋아한다.


 

남들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미캐닉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바로, 손님들 입장에서 미캐닉의 실력을 평가할 만한 부분은 자전거를 얼마나 세심하게 다루느냐로 귀결되는 것 같다. 또한, 다른 매장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자세히 알려준다면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좋아하더라. 자전거 정비란 게 표준화된 규격의 공구들을 사용하여 매뉴얼에 입각한 작업들을 행하는 것이어서, 어떤 미캐닉이라도 비슷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좀 더 빠르고 정확하며 깔끔히 처리하는 것이 실력이 뛰어난 미캐닉의 기준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 소음에 무척 민감한데, 미세 트러블로 인한 소음해결 하나는 그 누구보다 자신있다. 소음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빨리 파악하고 해결하려면 각 부품이나 소재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정비의 기본은 청소라고 생각하는데, 평소 체인에 묻은 이물질만 잘 닦아주어도 잔 고장 발생 확률이 현저히 줄어든다.

체인이 더러워지면 체인플레이트 사이에 위치한 롤러 틈새로 체인오일이 흡수되지 않아 움직임이 뻑뻑해지고 소음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변속 트러블까지 발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래서 각종 문제나 소음들이 체인 청소만으로도 해결된 경우가 상당수다. 소음이 많이 발생하는 부위는 라이더의 힘이 가장 많이 가해지는 구동축 BB다. 황당했던 사례도 있다. 프레임 내부에 작은 돌이 들어간 것을 서울시내 각 매장들에서 해결하지 못해 한 손님이 찾아왔었다. 시트포스트를 뽑아 프레임을 흔들었더니 돌이 빠져 나와 해결된 적도 있다.


 

손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기뻐
가장 좋아하는 정비는 손님이 부푼 기대감을 안고, 평소 자신이 갈망하던 모습의 자전거로 조립을 의뢰할 때다. 가장 설렌다. 자전거를 모두 완성시켜 놓았을 때, 의뢰인이 안장에 올라 페달을 굴리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피곤함이 말끔히 가실 정도로 뿌듯하다. 특히, 변속 트러블과 같은 기초적인 세팅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새롭게 완성된 자전거를 탔을 때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설레는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최근에는 SBCU(Specialized Bicycle Components University)를 통해 보다 전문화된 피팅 교육을 이수하였다. 이를 토대로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알맞은 피팅을 시행했더니 1,200km 라이딩을 무사히 다녀오는 것이었다. 인체공학을 바탕으로 한 신비스러운 피팅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소통과 다년간의 노하우로 쌓여진 정비
모든 자전거가 마찬가지이지만, 로드 사이클은 유난히도 프레임과 휠 세트가 중요하더라. 즉, 부품등급이 높고 비싸기만 해서 최고성능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각 부품간의 궁합이 중요한 것이다. 한 손님이 카본으로 제작된 하이 프로파일 휠 세트를 고려했다. 장거리 투어 라이딩을 즐긴다고 하여, 로우 프로파일의 듀라-에이스(DURA-ACE) C24 휠 세트를 권했더니. 투어를 다녀와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C24는 올라운드 타입으로 어떠한 지형에서도 훌륭한 주행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장거리 투어에 적합하다.

이처럼 가격을 떠나 바른 길잡이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부품의 소재나 특성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또한, 경량을 극도로 추구한 프레임 세트들 중 변속 케이블이 당겨지면 카본의 탄성으로 인하여 브레이즈 온 타입의 앞 디레일러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변속범위를 고려하여 장착하거나, 장착부와 마운트 사이에 알루미늄 조각을 넣어 고정하면 트러블이 해결된다.

풀 사이즈 자전거들은 대부분 폭넓은 기어비를 사용 할 수 있도록 체인라인이 형성되는데, 미니벨로는 체인라인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장에서 출고된 사양 그대로 즐긴다면 문제가 없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작업을 하다보면 설계상의 특수성을 극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앞 디레일러의 플레이트를 임의로 성형하거나 가공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자전거들은 수많은 부품간의 조합으로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정석대로 정비를 하더라도 바른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또한, 자전거를 정비할 때 손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소통을 통해서 또 다른 문제점을 파악하여 조언을 하면 정비 만족도가 대폭 상승하더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는 체인오일이나 클리너 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모간블루(Morgan Blue)를 좋아한다. 자전거를 정비하는 미캐닉들을 위한 배려가 뛰어나서다. 정비를 한 뒤 손을 깨끗이 세척하는 핸드 클리너가 따로 준비가 되어있고, 오일을 도포할 때 편리하도록 입구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습식오일임에도 불구하고 오염이 덜 되면서 유지기간이 길어 프로 팀 미캐닉들도 편애하는 브랜드이다. 더불어 피니쉬라인(FINISH LINE)의 쇼룸 폴리시 광택제를 좋아한다. 코팅력이 우수하여 우중 라이딩을 했을 때, 빗물이 모두 말끔히 흘려내려 프레임에 물때가 끼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프로 사이클링 팀의 전속 미캐닉이 목표
국내 사이클 실업팀이나 콘티넨탈 팀들의 경우 전속 미캐닉이 없이 매장 미캐닉이나 팀 코치가 선수들의 자전거를 정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팀 운영에 필요한 인력들이 보다 전문화 되었으면 한다. 팀 소속 전담 미캐닉이 있으면 지속적인 관계 형성으로 선수의 요구사항을 빨리 알아 낼 수 있고, 그에 맞게 자전거 성능을 향상 시킬 수 있다. 종합적으로 성적이 향상되는 셈이다. 물론, 한국 사이클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F1 레이스만 하더라도 미캐닉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지 않나. 자전거도 마찬가지라 본다.

앞으로의 목표는 프로 사이클링 팀의 전속 미캐닉이 되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자전거 정비 서적들이 매뉴얼에 입각한 번역서들이 많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며 불편했던 점들을 대화체로 풀어낸 책을 출간하고 싶다. 또한, 자전거 미캐닉들이 교류 할 수 있는 쉼터 개념의 공방도 열어 보이고 싶다. 미캐닉들이 모여 새로운 기술에 대하여 함께 공유하고 성장 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함께 시너지를 창출해야지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캐닉은 바텐더와 비슷하다
국내 자전거 시장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었더라도 미캐닉이란 직업은 아직 대중들에게 환영을 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혹시나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남다른 열정으로 자전거를 수리해 나갈 때 비로소 한 분야의 장인으로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다. 고친 만큼 더 빨리 나아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탈 것이 바로 자전거이니 말이다. 어느 직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자전거 미캐닉 역시 끈기와 성실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끝으로 자전거 미캐닉은 바텐더와 일맥상통 한다고 본다. 재료를 조합하고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과의 소통도 필수인 바텐더 말이다.



<온로드(onroad) vol.4, Mechanic Blues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facebook.com/chuckyshadow (최자람의 페이스북)
http://s2s.kr (썽이샵,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271번지 우성빌딩 1층 | 02-336-6675)

관련 문화평

자전거 그냥 즐겨라 (JUST RIDE) : 자전거를 재미있게 타는 88가지 방법 (2014, 그랜드 피터슨)
로드 바이크의 과학 : 사이클의 원리를 알면 자전거가 더 재미있다 (2009, 후지노 노리아키)
자전거의 역사 : 두 바퀴에 실린 신화와 열정 (2008, 프란체스코 바로니)
자전거 과학 : 라이더와 기계는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가 (2013, 맥스 글래스킨)

관련 글타래
유기농 자전거 프로젝트 프롤로그 : 근본 없는 놈, 프레임 빌더로 성장하기까지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자전거 공임비(수리비), 올바른 정비 문화를 위한 단상

관련 인터뷰
자전거 정비문화의 리더 : 사단법인 한국자전거미캐닉협회 '이상훈' 회장
서울 한복판에 자전거 공방 <두부공>을 열어 불을 피우는 청년, 프레임 빌더 김두범
자전거에 철학을 담은 예술가를 꿈꾼다. <영원사이클>(YOUNGWONCYCLE) 오영원
클래식 자전거의 성지 시온바이크(ZIONBIKE) : Oldies but Goodies, 신하루

한국에서 자전거 매장 실장 그리고 월간지 팀장을 엮임 후, 70여년 역사의 캐나다 Ridley's Cycle에서 Senior Service Technician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경험을 녹인 자전거 복합문화공간 <#라이드위드유>를 고향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업사이클을 테마로 한 카페이면서 스캇, 캐논데일, 메리다, 콜나고 그리고 브롬톤, 턴, 버디, 스트라이다, 커넥티드 전기자전거 등을 전개하는 전문점이기도 합니다.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합니다. *찾아가기 | 연락하기

이미지 맵

특집/칼럼|문화|인물의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