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도, 자전거 기술 배우다.
글쓰기를 원래 좋아한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할 기회도 있지만 대학 2학년 때 심취해 있던 인문학의 영향으로 ‘손을 쓰면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대학을 졸업 하고 어머니께 “자전거 일이 참 좋은거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네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는 일이라면 참 좋은 일”이라 답하셨다. 자전거 일은 정직해 보였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좀 막연했었다. 산악 자전거와 로드 사이클을 구분 할 줄도 몰랐다. 지식 습득을 위해 자전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였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결국 체계적인 자전거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 미국의 미캐닉 양성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한국 <바이크아카데미>에서 만난 동기생은 수료 후 곧 장 자전거 매장을 열었는데, 매장 수익에서 자전거 정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0% 정도라고 귀띔해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자전거를 단순히 고치기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자전거 정비의 범위를 확대하여 활로를 모색해 보니 ‘프레임 빌딩 (이하 빌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빌딩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영싸이클>을 찾아갔다. 두부공을 찾아주는 손님중에는 “네가 빌딩이라고 하는 것은 자전거의 몸통을 만드는 일밖에 더 있느냐, 변속기를 만드냐? 그걸 왜 커스텀이라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핵심은 결국 범위의 문제였다. 나는 크로몰리(Cr-Mo)를 소재로 한 프레임을 제작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영싸이클에서 크로몰리 프레임 빌딩과 도색과정을 배웠다.
▲ 그는 공식적으로 총 3개의 교육기관을 수료하였다.
일본과 미국, 자전거 기술 유학
영싸이클의 선생님께서는 일본 <3RENSHO> 출신의 다나카 씨로부터 빌딩 연수를 받으셨고, 자체 제작한 공구를 사용하는 영싸이클의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프레임 빌딩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의 공방들은 이미 완성된 튜빙을 사용하여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빌딩 전문공구를 기반으로 의뢰인이 원하는 자전거 프레임을 제작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에서 보고 느낀 것은 그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며, 관련 기반시설이 훌륭했고, 미쟁이, 목수, 자전거 포 주인과 같은 기술자들의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이 자연스레 느껴져 좋았다. 세계적인 자전거 공방 <칼라빙가>(Kalavinka)를 방문하여, 대표 ‘다나베 아키오’ 씨에게 “당신이 존경을 받느냐?”고 물어보았다. 때 마침 옆에 있던 여성이 자신의 가방 속에 있던 가위를 꺼내며 대뜸 “가위의 가격이 얼마일 것 갔냐?”며 물었다. “88만원이고 100% 수제이다. 일본인들은 노동의 대한 가치를 굉장히 높게 여긴다.”고 말했다.
일본 자전거 대학 대표의 아들 ‘코이치’ 씨를 찾아 갔다. 젊은 나이에 불을 사용하여 빌딩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그에게 “몇 살 때부터 빌딩을 시작했나?”라고 물으니 “열세살 때부터 했다.”고 답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프레임 빌더를 직업으로 삼으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에게 조언을 구하니 어려서부터 빌딩으로 가업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면, 늦은 나이기에 미국에 있는 <UBI>(United Bicycle Institute)>를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미국으로 날아가 UBI의 교육과정을 모두 다 수료하였다. 미국은 프레임 빌딩이 대중화 되어 있었고, 창고나 차고를 활용한 DIY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매장과 프레임 빌딩 공방을 결합한, 두부공
한국에서 프레임 빌더로서 취업을 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공방을 직접 운영하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자전거 정비와 빌딩만으로는 공방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기에 수익 창출과 자전거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매장과 공방을 결합한 <두부공>이다. 두부공은 가족들이 내게 부르는 애칭이자, 별명이다. 내 이름이 김두범이지 않나, 내게 ‘두부’ 라고 불렀다. 때로는 ‘피렌체 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피렌체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존경할만한 장인들을 피렌체 공이라 한다. 두부공 캐릭터와 공방의 벽화는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해 주었다.
공방일은 주문자의 몸에 맞게 튜빙을 재단하고 용접하는 프레임 빌딩 보다는, 다른 매장에서 할 수 없는 불 작업 튜닝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은 최대한 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일의 양에 비해 수익적인 측면에서 딱히 효율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불 쓰는 일을 하려고 공방을 겸하는 것이니 재미있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케이블 스톱을 프레임에 용접하는 작업과 크로몰리 튜빙의 상단부가 외부 충격으로 변형이 일어 난 것을 새로운 톱-튜브용 튜빙으로 교체한 것이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다른 매장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니 공임비에 대한 이견이 없다. 일이 힘들어도 돈 문제로 손님과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하다. 프레임 빌더로서 ‘북미 수제 자전거 쇼(NAHB)’에 내가 제작한 프레임을 출품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 두부공을 통하여 제작 된 프레임 헤드튜브에 부착 될 엠블럼
미캐닉으로서 여러 브랜드들에 대하여 할말이 많을 것 같다.
독일의 <싸이클 옵스>(CycleOps)사의 공구를 좋아한다. 우선, 공구의 강도가 틀리다. <파크툴>(ParkTool)은 오래 쓰다보면 부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사이클-옵스는 무척 견고하고 편의성도 좋다. 반면 파크툴의 공구로 자전거 100대 정도를 수리하면 렌치의 끝이 마모가 되기 시작하는 반면, 사이클-옵스의 공구는 거의 원형 그대로다. 가격 차이가 두 배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파크툴의 공구들이 모이면 업무 효율이 증가하는 것은 마음에 든다. <스램>(SRAM)은 재미있는 회사라 생각한다. 로드 사이클 듀얼 컨트롤 레버는 변속 방식이 더블 탭(Double Tap)인데 매우 편리하고 신기하다. 더불어 부품들의 완결성이 뛰어나고 사용자 배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산악 자전거 구동계의 경우 뒷디레일러 장력 조절부가 완전히 배제 된 채 핸들바의 변속 레버에만 장력 조절부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공구의 경우 <(아이스 툴즈>(Ice Toolz)>를 싫어한다. 사용 빈도가 높은 4/5/6mm 육각렌치를 아이스 툴즈 것으로 매장 내에 이곳저곳에 비치하여 정비를 하다 손님 자전거의 볼트가 망가지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또한 <삼천리자전거>는 자전거를 잘 만드는 것은 알겠는데, 너무나 보편적이라 재미가 없다. 사업주의 관점으로 본다면 대기업의 폭리가 싫다고나 할까? 대표적으로 매장에 자사의 간판을 달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알톤자전거>의 경우 새 제품을 받아보면 세팅이 하나도 안 되어 있는 등의 황당한 요소가 가져다주는 재미가 있다. 알톤의 RTC D8은 <포스코>와 협업해 순수 국산 크로몰리 튜빙으로 프레임이 제작됐는데 재미있는 시도라 생각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정비도 있지 않나?
특별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은 변속 세팅이다. 카세트에 체인이 의도대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특히 듀라-에이스(Dura-Ace)와 같은 높은 등급의 부품들이 잘 맞아 들어가면 더욱 기분이 좋다. 마치 <시마노>(Shimano)의 기술자들과 대화하는 기분이랄까? ‘우리가 이런 것 때문에 이렇게 비싸게 파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디티-스위스>(DT Swiss)사의 허브를 만지다 스타-라쳇 특유의 구조와 소리를 들으며 교감을 나눈다. 그러한 만남, ‘당신네들 정말 대단해, 이 정도 생각을 했단 말이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미캐닉과 개발자간의 소통인 것이다.
꺼려하는 정비는 주로 여성용 자전거에 장착된 드럼(밴드) 브레이크와 관련된 수리는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매장 에 해당 자전거가 들어오면 앞바퀴인지 뒷바퀴인지 곧장 물어본다. 뒷바퀴라고 하면 나의 표정은 굳어진다. 드럼 브레이크가 장착 된 자전거를 두 대 동시에 받은 적이 있다. 자전거를 맡겨 놓고 가시라고 해도 기다린다. 손님들 생각은 이런 거다. ‘이 정비는 별 게 아닌데, 이리저리 잘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때 다른 손님이 상담을 받으러 오면 응대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구경만 하다 그냥 돌아간다. 또한 브레이크 패드의 소음을 잡는 것이 있다. 제동을 할 때 소음이 발생하는 것은 이유가 다양하다. 작업을 해놓고 테스트 할 땐 소리가 나지 않다가, 손님이 타고 나서 곧장 소리가 나면 스트레스가 말도 아니다. 수리한 자전거가 같은 문제로 다시 돌아오면 기분이 좋지 않고 불명예스럽다.
자전거 매장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자.
공임에 대해서는 굉장히 불만이 많다. 매장들이 서로 경쟁을 하느라 제 값을 못 받고 있다. 한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내가 공임료를 요청하자 고치질 않고 근처에 있는 큰 매장으로 간 경우가 있다. 또는 자신의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 공임료가 청구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냥 타는 사람들도 많다. 저마다의 가치관 차이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잘 굴러가는 것이 좋은 거니까 고치고 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두부공>은 고급 자전거 매장으로서의 기능을 하되, 동네 자전거포 역할도 하고 있기에 공임비를 청구할 때 미묘한 부분이 있다. 다른 매장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특히, 자전거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다. 자전거가 팔리지는 않지만 프레임 빌딩 작업에 있어 시간적 여유도 많고, 매장을 재정비하고 부족하다고 여겼던 기술 공부도 할 수 있다. 겨울을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이라고 한다면, 손님이 자전거 정비를 받아야 할 때 집 근처 매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딩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 두부공,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69-45 (02. 3141. 9399)
행복하고 서러웠던 순간들
시즌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때가 있다. 눈치 보고 있다가 후다닥 식당으로 들어가 라면 한 그릇 먹고 있으면 곧장 전화가 온다. 손님 온다니까 다시 매장으로 가야지 어쩌겠나. 그러나 그 손님은 정작 1시간 동안 이것저것 둘러만 보고 간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불은 라면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과 함께 힘이 빠진다. 또한,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자전거를 수리하면 내 기분도 좋지가 않다. 자전거 수리에 이틀이 걸린다고 말했으나 시간이 더 지체됐다. 그렇게 일들이 밀리면 만사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꼬이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 하고 나면 정신도 없고 체력은 고갈 상태가 된다. 세금 신고도 해야 되고 물건 주문도 해야 하는데,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닐까?’ 극단적인 생각에 치닫게 될 때도 있다.
5개월 정도 전의 일이다. 의뢰인이 언덕을 자주 오른다고 하여 설계한 약간의 슬로핑과 톱-튜브를 최대한 짧게 만든 로드 사이클 프레임의 얼라이먼트가 훌륭하게 나와 빌더로서 행복했다. 또한, 늦은 밤 브레이크, 변속 등 간단한 정비를 받은 손님이 있었다. 그렇게 매장 문을 닫고 후배와 술을 마시러 가고 있었는데, 그 손님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많은 홍대 거리에서 손을 흔들며 “사장님이 만져주시니 자전거가 너무 잘 나가요!” 라고 큰소리로 감사를 표할 때 기분이 참 좋았고 미캐닉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매장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내가 해결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것은 당연하다.
▲ 불피우는 공방 청년, 김두범
미캐닉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미캐닉은 자부심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기술을 이용하여 정직하게 일해서 먹고 산다는 자랑스러움. 또한, 자전거 외적인 다른 취미 활동이나 정치, 사회, 문학,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도 길러야 한다고 본다.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무시 받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에 관심을 가져야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세상의 수많은 흐름들 중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캐닉들이 마음이 부자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dooboogong.com (자전거 공방, 두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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