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전 오디바이크 미캐닉, 현 한국자전거기술인협회 회장 - 노력형 자전거 연주가, 최창환

노력형 자전거 연주가, 최창환
90년대 후반 제대를 하고 공사판에서 몸을 굴릴 때 운동도 할 겸 생활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가진 게 별로 없었던 젊은 날, 자전거는 일상의 탈출구였다. 허벅지가 뻐근해지는 느낌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특별히 좋아했다. 한날은 자전거 이곳저곳에서 삐걱대는 소음이 거슬려서 자전거포를 찾아가 수리를 의뢰했다. 자전거포 아저씨는 누렇게 녹이 슨 BB를 길다란 공구를 이용해 망치로 때려 풀어서는 부품을 교체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갸우뚱해지면서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정비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상태가 다소 호전되기는 했었으나 역시나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직접 애마를 고쳐보자는 마음이 커져 갔다.



자전거 타는 것이 마냥 좋았던 최창환은 열악한 환경의 자전거포에서 정비의 기초를 다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독학으로 휠을 짜보기도 하면서 정비의 참 재미도 알아갔다. 어느덧, 업계 15년차 베테랑 반열에 올라선 그는 한국 자전거 정비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노력형 자전거 연주가(미캐닉)이다.

동네 자전거포 찾아가 일 배우기 시작해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전거 정비 기술을 배울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자전거는 직접 수리해보고 싶은데, 기술을 배울만한 곳이 없으니 자주 가던 자전거포에 무작정 찾아가서는 나 좀 써달라고 애원해 일을 시작했다. 기름때 묻히기를 수개월, 하지만 당시 자전거포 아저씨는 제대로 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비를 제때 해내지 못할 때면 공구로 때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1년 정도 몸담으면서 기초적인 정비 기술은 몸으로 직접 부딪혀가며 채득했다. 자전거 기름밥으로 받았던 월급이 50만원이었다. 미캐닉이란 전문용어도 없이 ‘기사’로 불리던 그 시절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환경이 참 열악했었다.

고급 기술은 책을 보면서 스스로 익혔다. 당시에는 관련 서적을 마땅히 구할 방법도 없었고, 있어봐야 일본어로 되어있었다. 원서를 구매하기 위해 책값도 많이 썼다. 도움됐던 책을 굳이 꼽아보자면 ‘바넷 매뉴얼(Barnett's Manual)’과 ‘아트 오브 휠 빌딩(The Art of Wheel Building)’인데, 권당 5만원 이상 줬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현재 미캐닉을 시작하는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참 좋은 환경이라 여겨진다.

키워드만 입력하면 모니터 위에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한국어로 된 정비서적들도 제법 출간되었으니 말이다. 관심이 가는 기술 서적이 있다면 지금도 빼놓지 않고 챙겨서 읽고 있다. 예전에는 책 속의 내용들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굳게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업에 10년 이상 종사해보니 정답은 없더라. 자전거가 사람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겠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정비법이 해답이라고 본다. 미캐닉은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와 대형 매장에서 농익다
90년대 후반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자전거타기 운동연합>에 들어갔다. 그때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헬멧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라이딩에 필요한 기초 안전교육과, 2002 부산아시안게임 성황봉송 퍼레이드에도 참여했다. 자전거 전국일주, 불우이웃을 위한 자전거 문화 기행도 펼쳤었다. 월 50만원이라는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자전거가 마냥 좋아서 열정적으로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쥐꼬리만큼 적은 임금은 생활을 힘들게 하더라.

그래서 <송파코렉스> 실장으로 매장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미 생활 자전거 수리 실력은 일정부분 궤도에 올라섰었고, 독학으로 자전거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 고급 정비도 자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님이 너무 많아서 수많은 자전거들의 문제점들을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무척 힘들었지만 실력은 날로 향상됐었기에 돌이켜보면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비 실력은 자전거 조립만 많이 한다고 해서 느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접해가면서 스스로 해결해봐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전거가 드물었다. 부품의 완성도 역시 높지 못해 기계적인 결함이 끊이지 않았던, 다분히 과도기적인 시절이었다. 미캐닉 정비공간에는 블리딩을 위한 전용 공구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도 못했다. 동호인들은 도트(Dot)나 미네랄(Mineral)로 구분되는 오일의 종류 등 기초적인 이론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각각의 디스크 브레이크에 적합하지 않은 브레이크 오일을 주입하던 불상사가 비일비재 했다. 때문에 리저브 탱크와 캘리퍼 내부에 위치한 실링이 부풀어 올라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는 소비자 과실이어서 무상 수리는 불가했다.



손봤던 자전거가 입상하면 기쁘나, 사람이 가장 골치 아파
대회장에서 수리했던 자전거가 입상하면 그렇게 기쁘더라. 한 동호인이 변속 케이블이 터져 정비 부스에 자전거를 입고 시켰다. 수리를 위해 전시 차에서 변속 케이블을 뽑아내 교체를 했고, 그는 레이스에 나가 1등을 차지했다. 그는 포디엄에 올라 공개적으로 내게 고맙다는 인사도 아끼지 않았다. 산악 자전거 프론트 서스펜션 문제도 있었다. 깨진 스냅링을 교체하면서 오염된 서스펜션 오일까지 갈아주었더니, 다음날 2등을 했던 이도 있었다. 이 밖에 끊어진 체인을 응급처치 했던 적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미캐닉은 역시 수리한 자전거가 두 땅 위를 온전히 누비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가장 골치 아픈 정비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사람으로 인한 문제가 가장 머리 아프다. 많은 사람들이 무상으로 정비를 못 받을까 봐 거짓말을 한다. 이를테면, 디레일러를 직접 손댔다가 변속 트레블이 더 심해졌을 때 원래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더불어, 주변 동호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듣고 와서는 미캐닉들에게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 왜곡된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론적인 설명을 아무리 해보아도 수긍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수많은 자전거들을 수리하는 미캐닉은 손님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대게 쉽게 구분 할 수가 있다. 솔직하게 사연을 털어놓으면 보다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서로간의 깊은 유대감이 형성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이 들통났다고 판단이 서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도리어 화를 내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이는 아직까지 자전거를 하대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자전거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자전거 정비는 매우 세세한 감각과 실전에 입각한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결코 우습게 볼 분야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



끈임없이 공부하는 미캐닉이 실력의 기준
미캐닉들마다 특출나게 자신 있는 부분이 달라서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사실 애매모호하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미캐닉들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기 위해 그 만큼 노력한 사람들이다. 자전거의 종류가 다양하듯 미캐닉들도 전문분야를 파악해서 서로에게 일을 분배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미캐닉들은 기술을 연마해서 소득을 올리는 전문가들이어서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한 편이다. 때문에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업계에서 도태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끈임 없이 공부하는 이들이 실력 있는 미캐닉이라고 본다.

나만의 정비 노하우는 따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자전거를 제때 관리를 하지 않아서 비롯된다. 제때 청소하지 않으면 흙먼지들이 찌들어서 각종 부품들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해 수명이 줄어든다. 자전거는 사실 각종 미세 먼지와 흙, 물 이 세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만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방지한다면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뿐만 아니라, 금전도 절약 할 수가 있다.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과 수고에 대한 합당한 대가는 필요
한국 자전거 문화에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 10년 전만해도 대낮에 한강 자전거길로 나서면 사람이 없어 그야말로 고속도로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전거를 즐기는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 막히는 경우가 많더라. 심지어는 겨울에도 그렇다. 그러나 일부 동호인들은 값비싼 자전거를 타는 것만으로 마치 훈장이라도 단 것처럼 행동하고, 자전거의 등급을 나눠 폐를 가르기까지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전거에다 너무 많은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바퀴가 구르는 대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소소한 추억을 남기면서 소탈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실력이나 금전적 가치를 떠나 자전거를 타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 말이다.

자전거 업계에서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 미캐닉들이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손님들 역시 물건을 구매했으니 무상 수리는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물건 값과 기술료는 별개다. 합당한 공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미캐닉들의 임금 역시 열악한 편이다. 업무 시간은 길어서 몸은 지치고 정비를 하면서 머리까지 굴러야 하는데, 무엇보다 사람까지 상대해야 한다.

손님이 미캐닉에게 구매 상담을 요청하면 대가 없이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길게는 두 시간여를 상담 받은 뒤 매장을 나가버리면 허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의사들에게는 진료 상담만으로도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자전거 의사인 미캐닉은 그렇지 못하다. 손님들이 정당한 공임료를 지불하면서 즐거운 자전거 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 또한, 업계 자체가 레저사업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부분이라 불경기로 인한 매출 급감에 대처하기 위해 유난히도 돈에 민감하고, 다들 검소한 것 같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순수 탈 것인 자전거에 대한 철학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돈벌이로만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검증된 미캐닉 배출과 제조에도 욕심이 나
한국자전거기술인협회라는 비영리 단체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오래전 삼삼오오 모인 미캐닉들간의 기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시작됐다. 당시에는 미캐닉들간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만나 새벽까지 토론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기술적인 부분들을 배우게 되고 친분이 두터워졌다.

현재 협회 인원은 30명 정도로, 미캐닉 경력 5년 이상의 조건만 충족된다면 과반수 찬성 시 입회 할 수 있다. 활동으로는 협회원이 운영하는 매장이 위치한 지역에 도움이 필요한 손님이 있으면 유기적으로 연결해준다. 또한, 각종 자전거 관련 지역행사에 정비지원을 나가기도 한다. 이 밖에, 협회차원에서 발부하고 있는 ‘자전거 정비사 자격검정’을 1급과 2급으로 나눠 시행하여 대외적으로 검증된 미캐닉을 배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도 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은 사소한 정비에도 감동하고, 다시 찾아오기도 하며 기술적인 이해도 역시 높아서 자전거 관리도 잘한다. 이들이 계속해서 자전거를 즐겁게 탈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다. 더불어 그간 쌓아왔던 노하우들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업계에서 나만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나가고 싶다. 나이를 먹다 보니 힘과 감 모든 부분에서 쇠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늘 발전하는 미캐닉이 되고자 한다. 또한, 가격과 성능 모든 부분을 두루 만족하게 할 수 있는 프레임과 부품을 직접 제조해보고 싶다.



미캐닉은 책임감 있는 솔직해야 해
미캐닉을 간절히 하고 싶다면 평생 노력할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이 같은 마음이 굳게 다져지지 않았다면 뜯어 말리고 싶다. 미캐닉은 깊이가 깊은 직업이기 때문에 끝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프로 미캐닉으로서 정비를 맡았으면 스스로의 선에서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래서 애당초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떳떳하게 모른다고 말 할 수 있는 솔직한 미캐닉이 되었으면 한다. 손님에게 지지 않으려고 잘못된 정보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전달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말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인지라 결국 자신에게 치명적인 화살로 되돌아 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온로드(onroad) vol.6, Mechanic Blues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odbike.co.kr (오디바이크,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동 양재대로 1421 오디타워)
http://bikebox.kr/ (바이크박스, 최창환 씨가 속해 있는 분당의 자전거 매장)

관련 문화평
자전거의 역사 : 두 바퀴에 실린 신화와 열정 (2008, 프란체스코 바로니)
자전거 과학 : 라이더와 기계는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가 (2013, 맥스 글래스킨)
사진보고 따라하는 자전거 정비 (2007, 한국자전거미캐닉협회, 자전거생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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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철학을 담은 예술가를 꿈꾼다. <영원사이클>(YOUNGWONCYCLE) 오영원
꿈꾸는 엔지니어, 최성필 :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Specialized Korea)의 (전)기술팀장

한국에서 자전거 매장 실장 그리고 월간지 팀장을 엮임 후, 70여년 역사의 캐나다 Ridley's Cycle에서 Senior Service Technician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경험을 녹인 자전거 복합문화공간 <#라이드위드유>를 고향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업사이클을 테마로 한 카페이면서 스캇, 캐논데일, 메리다, 콜나고 그리고 브롬톤, 턴, 버디, 스트라이다, 커넥티드 전기자전거 등을 전개하는 전문점이기도 합니다.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합니다. *찾아가기 | 연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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