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길을 가라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프랜시스 타폰이 미국 애팔래치아(Appalachia) 산맥을 트레킹하며 깨달은 삶의 지혜들을 엮어낸 책 ‘너만의 길을 가라’를 우연히 보게 된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학생 때 꿈꾸었던 이상과 사회라는 현실에 괴리감을 느껴 힘들어 했었는데, 책은 내게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말고 네 삶에 맞물린 작은 인연들은 스스로 이끌어가라’고 속삭였다. 한편으로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여행과 사진 그리고 글쓰기를 갈망하기도 했다.
▲ 방랑하는 자유영혼을 꿈꾸는 자전거 여행가 임종태(엘체)의 784일을 엿보다.
진짜배기 야생 여행
여행에 중점을 둔 부분은 하루 5달러로 연명하는 진짜배기 야생 여행이었다. 그래서 걷기보다 빠른, 이왕이면 튼튼하고 어디서나 수리가 가능하며 거친 길을 누빌 수 있는 산악 자전거를 택한 것이다. 3,000만원의 여행자금으로 하루 5달러 생활을 가정했을 때, 7~8년은 가능하다고 생각해 기간도 이에 맞춰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바라보았다.
5달러로 생활하기
실제 5달러로 생활이 가능했다. 이동은 자전거로 했고 잠은 텐트에서 잤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로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 위주로 여행을 다녀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도 많이 봤다. 음식은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맛보다는 배를 채울 수 있는 메뉴 위주로 사먹었다. 밀가루는 두세 시간 안에 배가 꺼지기 일쑤여서 쌀과 고기를 주로 섭취했다. 안남미(날리는 쌀)로 지어진 밥을 먹을 때는 되도록 많이 먹어두었다.
100km 가량을 매일같이 자전거로 이동해야 하니 삼시세끼만으로는 부족해서 열량이 풍부한 음식만을 섭취한 것이다. 중국은 특히 밥이 공짜인 경우가 많아서 허기를 달래기에 좋았다. 비교적 물가가 비싼 호주 같은 나라는 대형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해서 직접 해먹으려고 노력했다.
끼니를 굶기도
하루 5달러라는 목표 생활비로 인해 관광명소는 많이 방문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이 좋은 것은 관광지를 전체적으로 느리게 음미하며 받아드릴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되는 거라고 감히 비유하고 싶다. 굳이 입장료가 필요한 특정 명소를 찾지 않아도 현지인들을 만나 소통하다 보면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게 된.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물론, 꿈에 그리던 곳은 표를 끊어 입장해서 끼니를 굶기도 했다.
정면돌파
기억에 남는 일화는 많다.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기도 했고 티베트 봉기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천안문 광장 20주년 행사로 인해 살벌한 공안들을 의식하면서 여행했다. 자연재해도 많이 겪었는데, 말레이시아와 인도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지진과 쓰나미에 쓸려 생사를 오갔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지역민들이 재난 경보가 있으니 행선지를 빨리 지나가거나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계획된 일정을 바꾸기 싫어서 막무가내로 돌진했었다.
중국이 그립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중국의 윈난성(云南省)과 쓰촨성(四川省)을 가로지르는 고산지인 차마고도(茶馬古道)이다. 해발 4500m를 오르내리자 하늘이 가까워지면서 청명해지고 한 폭의 그림을 이루는 듯한 산새에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마냥 신났었다. 지형이 워낙 험준한 탓에 미개발되어 사람들도 순수했다. 다양한 종족들과 티베트 문화가 섞여 신비롭고 새롭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전거에 태극기를 달고 마을에 진입하면 오토바이 한 두 대가 감싸면서 차량과 사람들이 에워싸니 한류스타가 된 듯 했다. 중국인들은 늘 도움을 흔쾌히 수락했는데, 손님에 대해서 극진히 여김을 체면치레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주변인들이 여행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면 빼놓지 않고 중국을 가보라 한다.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녀온 친구들 대부분 특유의 매력에 빠져서 돌아왔다.
특별한 인연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중국 친조우(欽州)에서 만나게 된 학교 선생님이 그간 여행 이야기를 듣더니 곧장 학교를 관두더라. 그리고는 자전거 여행에 동행했다. 한 날은 호흡곤란이 올 정도의 고산지 텐트에서 고개만 쏙 빼놓고 잠을 자다 깨서는 옆을 보니 목 없는 귀신이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을 두 달간 함께 유랑하다 리장(麗江)에서 동행을 마무리했는데, 현재 그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한다.
받아들이기
784일간 세계를 누비며 힘든일도 많았다. 특히, 외로울 때면 미칠 것만 같았다. 별이 쏟아지는 산꼭대기에서 모닥불 하나 피워놓고 알몸으로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도 했다. 바람마저 불지 않으면 세상 속에 철저히 혼자가 된 듯 했으니 말이다. 결국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해답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미화 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힘든 것을 극복하려면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때로는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때 좌절감이 극대화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겸손해지기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겸손해진 것이다. 1년 중 300일을 현지인들과 지내니 단기 여행자들을 얕잡아 보게 됐었다. 여행 중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니 아집과 고집, 자만심만 더해져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이 이내 깨지게 되더라. 원인을 알 수 없는 회의감과 외로움에 태국에서 6개월을 눌러 앉은 적이 있다. 거기서 만난 여행자들은 나보다 훨씬 먼 길을 오랫동안 누볐더라. 그들에게서 자부심이 묻어 날 만도 한데, 그저 소탈하게 재미있어서 여행을 한다 했다. 호주에서 베트남까지 80달러도 안 되는 자전거에 배낭을 꽁꽁 묶어 5000km를 떠나온 이도 보았다.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한 없이 겸손해짐을 느꼈다.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여행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조사를 많이 했어도 현지인 보다는 그곳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을 수 밖에 없다. 현지 고유의 언어로 다가가서 먼저 인사를 건 낼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기꺼이 최고의 여행 도우미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자전거 여행은 책으로 엮어 낼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혹시 나처럼 출판을 목표로 여행했다면 당시에 느낀 감정이나 사건을 현장감 있게 요약해 놓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GPS를 적극 활용하라
장시간 먼 길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에서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두 팔로 종이지도를 펼치는 일은 매우 번거롭다. 출입국사무소가 표시된 국경지도 외에 현지지도는 부피가 커 짐이 될 뿐이다. 더구나 꾸준한 속도로 달리다 여러 번 멈추는 것은 체력도 빠르게 소비되고 계획한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가 있다. 하지만 핸들바에 장착된 아웃도어 피트니스용 GPS가 있다면 속도와 거리, 고도 그리고 지도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더 이상 멈춰 설 필요가 없다.
그간 지나왔던 길, 머물렀던 장소들을 기록하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지구촌 사람들과 정보공유도 할 수 있다. 특히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시간을 미리 파악하여 일정을 계획 할 수가 있어 어두워지기 전 안전한 캠핑장소를 찾아나서는데 도움이 된다. 자전거 여행가라면 지나왔던 길을 기억하고 싶기 마련인데, GPS는 지나온 길을 기록할 수 있어 좋다. 그러한 기록들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 계절이 바뀔 때 코끝에 스미는 내음처럼 여행지의 향기가 스치는 듯하다.
여행은 사람이다
내게 여행이란 사람과의 교감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홀로 감상하는 것보다 조용히 흐르는 강가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값진 것 같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 이러한 감흥들은 굳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니 가슴을 울렸던 절경보다 사람과의 기억이 아름답게 비춰지더라. 자전거 여행을 다시 하게 된다면 혼자 가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를 뒤에 태우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외롭지 않게 떠나보고 싶다.
<바퀴(baqui) vol.28, 바퀴와 사람들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phototour.tistory.com/ (임종태의 지구별 1박2일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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