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전거 바퀴가 바뀌다. 26인치에서 27.5, 29인치로 진화하는 산악 자전거(MTB)

29인치 산악 자전거의 탄생
197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주 인근 자전거 매장에서 근무하던 게리 피셔(Gary Fisher)는 친구들과 굽이진 산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즐겼다. 마치 서커스를 하는 듯한 짜릿함이 일품인 산악 라이딩에 빠져버린 그는 시중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자전거에 변속기와 브레이크를 장착해 나갔다. 보다 빠르게 산길을 내려 올 수 있도록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전거를 개선해 나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특별한 자전거를 보고 ‘벌루너(Ballooner)’ 혹은 낡고 오래됐다는 의미의 ‘클렁커(Clunker)’라 칭했다.

1979년 9월 게리 피셔는 소액의 자본금으로 산악 자전거 전문 회사를 창업해 콜로라도의 큰 바위들이 보이는 해발 4,000m의 산에서 보다 큰 휠 즉, 29인치(29er, 투나이너)의 필요성을 느꼈다. 산악 자전거 세계화에 힘쓰던 게리 피셔는 1998년 오랜 지인들과의 의논을 시작으로 29인치에 맞는 프레임과 타이어를 제작해 생각을 현실화했다. 이는 1980년대 중반 TIG 용접 기술 발달로 인한 알루미늄 프레임의 대량 생산 시작과, 카본 소재의 대중화와 더불어 새로운 휠 규격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혁신이 되었다. 이후 그는 6개월 동안 26, 29인치 자전거를 동일한 환경에서 직접 타보며 실험했고, 29인치가 26인치 자전거 보다 3~5% 더 빠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1년 게리 피셔는 29인치 산악 자전거 ‘MT Tam29’를 발표했다.

MT Tam은 타말파이어스산(Mount Tamalpais)을 일컫는데, 그가 클렁커로 산을 처음 달린 곳이자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도전한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내포했다. 26인치에 비해 장애물이나 평지, 언덕 등 모든 길을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는 29인치 바퀴가 처음 등장 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미비했었다. 그러나 게리 피셔의 부단한 노력으로 2004년부터 29인치 자전거의 UCI 경기 출전이 허용되면서 관련 부품들이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월드컵에서는 ‘빅 휠’(Big Wheel, 29인치, 27.5인치)을 채용한 자전거들이 모두 포디엄에 올라 26인치 자전거 시대의 퇴보를 간접적으로 예고했다.


 

 TREK Superfly FS 9.9 SL (트렉 슈퍼플라이 FS 9.9 SL) (29er)

 


 SCOTT SCALE 710 (스캇 스케일 710) (27.5)


27.5인치 바퀴의 등장
29인치는 분명 산악 자전거(Moutian Bike, MTB)의 탄생과 함께 오랜 시간 확고한 입지를 다져온 26인치에 비해 뛰어났다. 그러나 신장이 작은 사람들에게 바퀴와 프레임이 모두 커져버린 29인치는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거친 길을 빠르게 누빌 수 있는 29인치의 이점을 포기하고 26인치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 때, 니노 슈터(Nino Schurter, Scott Swisspower)는 29인치와 26인치의 장점을 고루 배합한 27.5(650B)인치 자전거에 올라 월드컵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29인치로 유럽 선수권 대회를 제패한 호세 안토니오(José Antonio, Multivan Merida Biking Team) 역시 2014년부터 27.5인치 자전거에 오르는데, 두 선수의 신장은 172cm로 일반 남성들의 평균 신장 보다 작은 편이다. 호세 안토니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9인치를 처음 탔을 때 핸들바가 높아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26인치로 20년간 자전거를 타오던 니노 슈터도 같은 반응이었다. 한편, 27.5인치는 26인치에 사용되는 서스펜션 포크를 별도의 조정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어 산악 자전거가 중요시하는 서스펜션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또한 29인치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올 마운틴 모델도 두루 찾아 볼 수가 있다.


 

 S-WORKS Epic 29 (스페셜라이즈드 에스웍스 에픽 29)


바퀴가 커지면서 변화한 것들
프레임을 비롯한 각 부품들을 지지하는 바퀴가 커지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프레임의 중심기둥인 시트튜브와 뒷바퀴가 체결되는 드롭아웃을 이어주는 체인스테이가 길어졌고 구동 축인 BB가 지면과 가까워졌다. 이로 인해 앞 뒤 바퀴간의 간격이 넓어져 안락한 승차감을 선사하는데, 마치 긴 세단의 부드러운 승차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시트튜브의 각도 역시 뒷바퀴 쪽으로 좀 더 뉘어지면서 무게중심이 뒤로 향하게 돼 부드러운 주행에 보탬이 됐다.

또한 톱튜브가 길어지는 동시에 경사가 깊어져 프레임 크기가 커짐에 따른 라이더의 부담감을 상쇄했다. 더불어 핸들바가 높게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헤드튜브를 최대한 짧게 성형했다. 이는 프레임 무게를 줄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또 헤드튜브의 각도를 수직에 가깝게 형성해 큰 바퀴로 인해 둔해진 핸들링을 상쇄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기존 26인치에 비해 3인치 더 커진 29인치 프레임의 경우 지오메트리상 많은 부분이 달라진 반면, 27.5인치는 변화의 폭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MERDIA Big Seven 300 (메리다 빅 세븐 300) (27.5)


 

 GIANT XTC ADVANCED 27.5 (자이언트 엑스티씨 어드밴스드 27.5)


큰 바퀴의 장단점
같은 높이의 장애물을 통과한다는 가정 하에서는 바퀴가 클수록 진입각도가 낮아진다. 이는 서스펜션이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는 범위인 트레블(Travel)의 길이가 짧더라도 장애물을 원활히 통과 할 수 있고 평균속도 유지도 수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만큼 라이더의 힘 손실이 줄어들어 오랜 시간 먼 길을 달리기에 유리한 것이다. 또한 아래에서 위로 전해지는 수직 진동과 구름저항도 줄어들어 거친 길에서도 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라이딩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타이어 마찰 면적도 늘어나 접지력과 제동력에 보탬이 되고, 급커브를 빠르게 탈출 할 수 있는 등의 효율적인 라이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커진 바퀴만큼 순간 가속도와 민첩성은 떨어질 수 있다. 기존 26인치보다 스포크(바퀴살)가 길어져 같은 소재라면 강성도 비교적 낮아질 수 있다. 때문에 스포크 개수를 늘려 휠 세트를 튼튼하게 엮기도 한다. 또한, 26인치는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산악 자전거의 표준 휠 규격이었기에 전 세계 어디서든 타이어나 튜브 등의 부품 수급이 원활해 유지보수가 쉬웠던 반면, 큰 바퀴들은 지역에 따라 관련 부품들을 구하기가 어려운 곳도 있어서 당분간 관련 부품들의 유통 및 보급에 있어 과도기적인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바퀴가 바뀌고 있다
27.5인치는 26인치와 29인치의 단점을 상당부분 보완한 타입으로서 오솔길처럼 아기자기한 코스가 많은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다. 반면, 길고 매끄러운 산길이 즐비하고 라이더의 평균 신장이 큰 미국에서는 29인치가 인기다. 하지만 국내 실정은 판이하다. 많은 이들이 26인치 산악 자전거에서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자전거를 새롭게 구입하지 않는 이상 큰 바퀴의 자전거로 전향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새로운 규격의 바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체되어 있던 산악 자전거 시장을 확대하고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27.5인치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아담한 동양인들에게도 적합하며, 곧게 뻗은 산길이나 코스를 직접 만들기 보다 이미 존재하는 등산로를 즐겨 타는 국내 산악 라이딩 실정에도 잘 맞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주요 브랜드들 역시 26인치의 비중을 점차 줄여나가고 27.5인치나 29인치 빅 휠 라인업을 늘려나가고 있다.

2013년 언제나 앞서가는 기술력으로 각광받는 스캇(SCOTT)을 시작으로 세계 최대의 자전거 브랜드인 자이언트(GIANT)와 메리다(MERDIA)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제품이 더욱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악 자전거 계에 불어 닥친 이번 이슈가 라이더들의 취향과 라이딩 환경에 맞는 다양한 제품들이 공존하며, 단순한 변화가 아닌 보다 선진화된 시장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발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바퀴(baqui) vol.29, 자전거 바퀴가 바뀌다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www.trekbikes.com/kr/ko/ (Trek Bicy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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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전거 매장 실장 그리고 월간지 팀장을 엮임 후, 70여년 역사의 캐나다 Ridley's Cycle에서 Senior Service Technician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경험을 녹인 자전거 복합문화공간 <#라이드위드유>를 고향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업사이클을 테마로 한 카페이면서 스캇, 캐논데일, 메리다, 콜나고 그리고 브롬톤, 턴, 버디, 스트라이다, 커넥티드 전기자전거 등을 전개하는 전문점이기도 합니다.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합니다. *찾아가기 | 연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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