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내가 <바퀴> 독자이던 시절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해주던 코너가 바로 <바이킹 캠퍼스>였다. 그런데 막상 이 코너를 책임지게 된 지금, 신경써야 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게다가 함께 떠나기로 약속했던 아무게 씨가 갑자기 잠수를 타버리는 바람에 모든 일정이 틀어지고 말았다. 부담은 날로 쌓여만 갔다. 그저 비우고 싶어졌다. 실타래 같이 엉켜버린 머릿속도, 캠핑을 위한 짐들도. 일단 떠나면 머리는 비워진다 생각했다. 인터넷을 낱낱이 뒤져보았다. 그리고 ‘심봤다!’를 외쳤다. 텐트, 코펠, 버너, 침낭 등을 빌려주고 부대시설까지 모두 갖췄다는 ‘밤 빌리지(Bam Village)’를 찾아내서였다. 늘 갈망하던 배낭하나 들러 메고 가볍게 떠나는 호사로운 자전거 캠핑은 그렇게 나름 파란만장하게 이루어졌다.
이곳에 살면 편두통은 안녕
목적지인 가평군 북면 목동리까지 자전걸 타면 84km, 마음만은 페달을 굴려 가평까지 가고 싶었다. 허나 편집부에서 상봉역까지 가는 길은 아리랑 고개가 어찌나 많던지 우리는 제법 지치고 말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이대로 가다간 무슨 일이라도 나겠다 싶어 자전거 전용칸이 있는 경춘선의 힘을 빌려 가평까지 당도했다. 남이섬과 자라섬, 각종 명소들이 가득한 가평군은 관광객들로 무척이나 활기찼다. 지도를 펼쳐 목적지를 체크하곤 페달을 밟으니 연료가 부족하단다. 문득 아리랑 고개를 넘고 넘어서 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우린 바닥난 연료 보충을 위해 고즈넉한 읍내에서 따스한 국밥으로 요기를 달랬다. 그릇에 담긴 반찬이 어찌나 푸짐하던지 시골인심 참 후하다 생각했다.
가는 길은 유난히도 언덕이 많았다. 편집부에서 상봉역까지 향하는 길이 그러했고, 열차에서 내려서도 그러했다. 우리 내 인생길처럼 잠깐의 짜릿한 내리막은 수고스러움을 감내할 만큼 신이 났지만 언덕은 오를 때 마다 고됐다. 탁하고 무미건조한 서울과는 달리, 맑은 공기는 탄산수 같이 끝이 살아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난 말했다. “이곳에 살면 편두통은 안녕”이라고, 일행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들판의 벼들은 어서 오라 고개 숙여 인사했고, 농부들은 바짝 마른 볏짚을 돌돌 말아 소 여물 재료로 준비해뒀다.
조용하게 잔을 부딪쳤다.
페달을 밟고 밟아 목동리 북배산기슭에 위치한 밤 빌리지에 도착했다. 갑자기 멍! 멍!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고 말았다. ‘곰이’와 ‘밤이’라고 쓰여진 개집에서 녀석들이 나와 반갑다며 꼬릴 흔들고, 서글서글한 주인장이 환한 표정으로 맞아주니 여정 길의 피로가 가셨다. 그는 우리를 가장 전망이 좋다는 곳으로 안내했다. 냇물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진 곳에 꾸러미를 풀어헤쳤다. 그간 터를 찾아내 무거운 짐을 내리고 캠핑을 준비할 때와 달리, 모든 게 준비 돼있으니 호사로웠다. 화로에는 숯불이 벌겋게 물들어 열기를 내뿜었다. 뜨겁게 달궈진 그릴 위에 고기와 바비큐 햄을 얹어 지글지글 구워서는 한 입 쏙 넣으니 참으로 담백했다. 좋은 사람들과 훌륭한 풍광, 맛난 음식이 어우러진 이 순간을 위해 우린 조용하게 잔을 부딪쳤다.
모닥불은 감정에 충실하게 만든다.
어느새 한기가 도는 날씨에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곱게 쌓은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몸을 녹였다. 소싯적 캠프파이어만 했다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닥불은 감정에 충실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생각했다. 남자 둘이 마주앉아 불꽃놀이도 했다. 제법 울적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빳빳이 뻗어있던 불꽃놀이 장대는 한 몸 불사르더니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건 마치 아릿한 찬바람에 저미는 내 마음 같았다. 한껏 취기가 오른 우리는 마음속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두울 풀어냈다. 일, 사랑, 추억, 꿈…
자신을 비워내는데 효과적인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니 또 다시 출출해졌다. 모닥불 사이에 감자와 고구마를 찔러 넣곤 호호 불어 먹고 싶단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오늘 캠핑의 아쉬운 점을 토로하며 먹거리는 자고로 넉넉히 사는 것이 장땡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시에선 쉽사리 구경할 수 없던 별이 팔방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 별들이 쏟아지는 만큼 피로 역시 몰려왔고, 전기장판이 따뜻이 달구는 훈훈한 텐트에 몸을 뉘였다.
자전거 여행은 페달을 휘휘 저으면 그 만큼 잡념들이 하나씩 사라져가 자신을 비워내는데 효과적이었다. 풀벌레 우는 자연속 캠핑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나를 찾아 하나씩 덜어 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자연에서 잠을 이루는 게 얼마만이던지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새 서울서 가져온 스트레스가 서서히 사라짐을 느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옆을 바라보니, 번데기 같은 모습의 동료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한 참을 키득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바퀴(baqui) vol.24, Biking Campers : Editor's B-Cut>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bamvillage.com (밤빌리지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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