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첫 발갈음
한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 설렘은 마치 첫사랑과의 약속이 잡힌 날 만나러 가는 그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설렘과 두려움은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른다. 설렘의 끝자락에는 두려움도 공존하니까. 내게, 인도네시아란 나라는 한국을 떠난 첫 타지였고 주위의 사람들은 첫 해외가 “빡시네~“ ”이제 다른 나라가면 나쁜 쪽으로 힘들지는 않겠네? 라는 뉘앙스로 거들먹거렸다.
대부분의 추억들은 나쁜 일들 보단 좋았던 것들만 기억되게 마련이다. 인도네시아는 내게 군대처럼 “어여.. 집으로(한국)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주게 만든 나라였지만,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잊을 수 없는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과 부글부글 끓었던 화산과 자카르타의 놀라운 경험 등은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로 장식되고 있다.
이 자전거를 타지 않은 추억들은 “라이딩 이야기” 카테고리에 등록되는 것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게 된 계기가 세계적인 자전거 타이어 브랜드 ‘슈발베(SCHWALBE, 슈왈베)’의 타이어가 생산되는 PT. HUNG A INDONESIA 공장 방문을 계기로 이루어진 여행이었기 때문.
주목적이 타이어 공장 견학이라 흥미 없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소중한 추억이기에 그 흔적들을 글과 사진 그리고 조금의 영상으로 추억해 본다. 혹시나 인도네시아의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의 뭔가를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무엇이 어찌 됐든 이런 포스팅을 올릴 계획이 없었기에 방랑기라고 하기엔 그 목적이 부실한 이야기지만 누군가 혹시 읽는다면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한다.
▲ 이 지도를 한번 보고 읽으면 인도네시아 여행에 참고가 될지도 4개의 포인트가 있는데 본문의 에피소드들이 생긴 장소다. 좌측부터 Soekarno-Hatta International Airport(국제공항), Jakarta(자카르타), Cikarang(치카랑), Tangkuban Perahu(화산)
독수리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서울과 울산을 오가는 비행기는 많이 타봤다. 하지만 국제선은 처음이다. 하필이면 내가 처음 타는 국외 항공사가 가루다 인도네시아(GARUDA INDONESIA)라니 가루다는 인도네시아어로 ‘독수리’를 칭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썩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또 주위에서 들은 게 있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여러모로 좋았다.
역시 사람의 편견은 무섭다. 무엇이 상관있겠는가! 내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흥아 인도네시아 측에서 지원해주는대로 따라다니면 된다. 기내식은 ‘닭고기와 밥‘이 주제였는데 맛있게 먹은 걸로 기억한다. 후식인 아이스크림도 맛있었고 하지만 가는 비행기 안은 승객들이 제법 많았고 자리는 이코노미 클래스라 한 6시간 비행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가니 몸이 몹시 피곤했다.
한국은 겨울이지만 인니는 뜨거워
인도네시아에 도착하니 2시간을 벌었다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한국보다 인도네시아는 2시간이 느리다. 색다른 기분이다. 사진의 보이는 공항은 자카르타의 Soekarno-Hatta International Airport(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이다. 그때 기억을 되짚어 보면 나는 큰 롤탑 백팩 을 메고 있어 기내에 짐을 실었는데 일행분중 몇몇 분은 수화물 처리를 하셨다.
근데 문제는 수화물을 찾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 인도네시아의 수도 공항임에도 조금은 낡았고, 무척이나 더웠고, 시스템적으로도 뭔가 비효율적인거 같아. 아쉬웠다. 물론, 단 두 번 가본 인천국제공항도 그 큰 규모 때문에 길 찾는다고 마치 하프라이프(Half-Life) 같은 FPS 게임 하는 것 같았지만
공항을 나오니 실내보다 더욱 더웠다. 그나마 공항은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플랫폼 밖 흥아 인도네시아 측에서 보내준 차량이 대기하고 있어, 짐을 싣고 숙소로 향했는데 그 여정이 정말……. 생각하면 인도네시아의 3일중 1일은 이동하느라고 고생한 여정이었다.
블랙베리와 페이스북의 나라
처음 렌터카를 타고 일행들과 고속도로를 타고 나오는 길에 수도 자카르타의 외곽지와 중심부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것은 어딜 가나 정도의 차이가 있고 마찬가지겠지만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고가도로 밑에 집을 지어 사는 사람들 오염된 하천들을 볼 수 있었고 다운타운으로 진입하자 삐까번쩍한 건물들이 우르르 나타나고 광고판에는 우리나라 삼성의 스마트폰 광고 LG, 현대자동차의 광고들도 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 이곳 사람들은 RIM(Research In Motion)의 블랙베리(Black Berry)를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더불어 페이스북(Facebook) 사용량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자카르타에서 치카랑으로 갈 때 마을에서는 한국의 PC방과 비슷한 가게도 보았다. 자카르타의 대부분의 커다란 빌딩들은 중화권의 사람들이 돈 자랑을 한다고 올린 건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도네시아에는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내가 겪어본 인도네시아의 교통은 정말 “답이 없다.”가 맞다. 이것은 이 글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을 영상에서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인데. ‘수카르노하타국제공항’에서 수도인 자카르타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향하는 길의 교통체증도 상당했고 자카르타에서 우리가 향할 리포 치카랑(Lippo Cikarang)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도 상상 그 이상이었으며 이것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까지 이동하는 내내 이어졌다.
서민의 꿈, 오토바이
도로 구조가 고속도로가 하나 있으면 차들이 계속 고속도로로 몰리고 차량이 나가는 구멍은 드물며 외곽순환도로 같이 도시순환 고속도로가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국도도 마찬가지다. 자카르타에서 외부도시로 이어지는 국도는 단 하나고 그 도로 옆으로 바로 민가와 상가가 이어져 만약 국가에서 도로 정비 사업(예를들어 차선을 넓힌다던지)을 하려 한다고 해도 보상규모가 어마어마할 것이 뻔 하기에 아직은 후진국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답이 없다.“가 맞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인도네시아 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내가 만약 인도네시아에 살았어도 오토바이를 탔을 것 같다. (추후 구글 어스를 통해 내가 방문한 곳들을 하늘로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도로구조가 심각한 구조는 아닌데, 그 간격이 너무 넓었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나라 농촌의 도로구조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현지 PT. HUNG A INDONESIA에 계시는 한국 직원 분은 이곳 사람들에게 오토바이가 한국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과 똑같은 가치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서민들은 오토바이 하나에 온가족을 다 태우고 다닌다. 탑승 인원 3명은 기본이다. 이곳에서 잘 팔리는 오토바이는 정말 성능하나는 어디를 가도 인정받겠구나 생각했다.
잊을 수 없는 렌터카 아저씨
일행들이 향하는 치카랑은 수도 서울이 있으면 많은 산업체들이 있는 안산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그 도시규모가 무척 작았지만 말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차들 중엔 트럭이 많았는데 산업단지로 향하는 차들이 많아서일 거다.
2시간 정도 걸린다던 예상시간은 4시간으로 5시간으로 늘어나 우리의 렌터카 기사님은 (이름을 알았는데 까먹어 버렸다.) “트래픽 쨈~“이라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어투가 기억이 난다. 같이 타고 있던 도싸의 성인이형도 트래픽 쨈을 재미있게 흉내 내던 기억이 나고. 타고 있던 렌터카는 일본의 토요타(Toyota)의 차량이었는데 연식이 상당히 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한국차로 비교하자면 카렌스)하고 에어컨을 빵빵히 가동했음에도 잔 진동 없이 잘 달렸다. 그래서 일본차가 좋구나 생각했다.
렌터카 기사 분은 40대로 착하고 밝은 분이라 이동하는 내내 여러 가지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중에 우리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쇼핑센터에서 모이기로 했을 때 자카르타 도로에서 기사분이 헤매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나 기억나는 건 그의 핸드폰이다. 앞서 많은 인도네시아 인들이 블랙베리를 사용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 이야기 일게다. 우리 렌터카 기사님은 삼성의 오래된 흑백 휴대폰을 사용하고 계셨는데 배터리가 접촉이 잘 안되어 고무줄로 배터리를 묵고 다니셨다. 한국에 있는 사용하지 않는 핸드폰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첫 저녁식사
지정된 숙소로 향하기 전 지옥 같은 “트래픽 잼“과 싸운 일행들이 매우 지친 상태였고 저녁 시간도 한참 지났기 때문에 주최 측에선 곧바로 한인 식당으로 우리들을 초대해 맛있는 소고기를 대접해 주셨다. 그 고기는 인근섬(발리였던가?)에서 직접 키워 공수해온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저게 소 였던지 돼지 이었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뭘.)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은 한국 기업들이 많고 한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업소가 많았다.
이곳 식당은 이상하리 만큼 직원들이 과하게 많았는데 그것은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PT. HUNGA INDONESIA 견학을 갔을 때도 기계로 설비를 확충하는 거 보다 아직은 사람을 늘려서 쓰는 게 돈이 더 절약된다고 말씀 하셨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성향이 온화한거 같았다.
날씬한 사람들
다음날 숙소에 도착해 취침 후 일어나보니 비가 보슬보슬 오고 있었다. 숙소의 이름은 Grand Zuri고 이제와 검색해보니 제법 인도네시아에서 호텔 여러곳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Grand Zuri Jababeka – Cikarang‘이다. 자세한 사항은 이곳을 보면 된다. 호텔에서 와이파이도 지원했는데 한국의 그것에 비하면 속도도 상당히 느렸고 하루마다 제한시간이 있었다. 식사는 뷔페식으로 제공했는데 자기 먹고 싶은 거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좋았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아리수처럼 수돗물의 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생수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양치 후 이를 행굴때도 생수를 이용했다. 이유는 석회질 많아서 치아에 좋지 않아서라고 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래서 치아가 건강하지 않다고 했다.
수도 자카르타나 이동할 때 빼고는 뚱뚱한 인도네시아 사람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른체구를 하고 있었다. 100명을 봤다면 90명은 다 뚱뚱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대부분이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대신에 틈틈이 자주 먹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행인건 마지막 화산에 갔을 때 빼곤 항상 잠을 잘 때만 비가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이 덥지 않게 공장 견학을 할 수 있었다. 또 아침에 일어나서 비가 보슬보슬 내리면 기분이 이상하게 상쾌하고 좋다. 내가 비오는 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가 많이 오고 햇볕도 쨍쨍 내리쬐니 거리에 식물들도 한국과 달리 항상 풍성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다
피아랑이 치카랑으로 향하고 있다. 거리에는 오토바이 가게가 많았다. 자전거 가게는 하나도 볼 수가 없었고(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는 자전거 가게 하나 나왔다.) 자전거 탄 사람들도 드물었다. 이런 도로 환경에서 자전거를 타면 위험하기 그지없다. 완전 무법지대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들은 곡예 운전을 하며 차 사이를 헤집고 다니고 어떨 때는 말이 끄는 마차가 차량의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그럴 땐 1차선이 다인 국도에서는 생명을 담보로 추월하기도 한다. 정말 좋게 얘기하면 짜릿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렌터카 기사님은 앞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레이싱을 펼치셨다.
적도지방
두 번째 날 PT HUNG A INDONESIA를 1회차 견학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횟집에 방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회에다 한국 음식이 가득했다. 거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귀하다는 소주까지 그곳에서는 한국 소주 한 병에 우리 돈 만 원 정도 한다고 했다. 역시 회에는 소주가 제 맛이다. 헌데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회가 한국의 것처럼 좀 찰지거나 씹는 맛이 덜하고 흐물흐물했다. 그리고 물고기가 잘 잡혀서 횟값도 저렴하다고 했다.
현지 한국인 직원 분들과 함께 자기소개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차는 자세히 이곳에 적을 순 없지만 한국 사람들이 주축이다 보니 한국의 밤 문화를 빼다 박은 아니 오히려 인건비와 물가가 싸니 더 좋게 시간을 보냈다. 그 이야기를 이곳에 자세히 못 적는 게 갑자기 아쉽다. 왜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으로 여행을 가는지 알았다. (나쁜쪽으로)
'미고랭'과 '나시 고랭'
전날 일행들은 과음을 했기 때문에 (그중 동갑내기 부부의 자전거 여행 시리즈를 연재하고 책을 펴낸 이성종, 손지헌 부부는 공장장님 댁에 방문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많이 들었다고 한다. 역시 여행가들은 다르다.) 몹시 피곤했다. 공장을 2회차 견학하고 화산 관광을 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우리는 계속해서 Bandung 지방으로 향했다.
숙소인 Cikarang에서 화산인 Tangkuban Perahu까지는 지도를 보니 상당히 먼 거리다. 오후에 흥아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인도네시아 현지 아주머니께서 한국음식 하시는데 어느 한국의 할매집 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 솜씨를 자랑했다.) 향했는데 밤이 다 되어서 인근 숙소에 도착했으니 우리나라 치면 부산에서 서울 거리는 될 듯싶다.
화산 근처 숙소에 다다랐을 즈음 한 식당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었다. ‘Bangjun’이라는 식당인데 내가 가본 시골의 인도네시아 식당들 대부분이 이렇게 창문이 없는 건물이었다. 한쪽에는 뱀장어 비슷한 물고기도 키우고 있었다.
이날부터 인도네시아 음식을 본격적으로 먹어보기 시작했는데 (그전엔 계속 한국음식만 먹었다.) 가장 무난하다는 인도네시아 볶음밥인 Nasi Goreng(나시 고랭) ‘나시 고랭’은 집에 갈 때까지 시켜 먹었다. 가장 무난해서이다. 식당 마다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음식을 쫌 짜게 먹는 거 같았다. 향신료도 우리나라와 달라 맥락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는 음식인데 미묘하게 달랐다.
일행들에게 가장 인기 메뉴는 역시 Mie Goreng(미 고랭)이라는 볶음 면인데 거의 ‘나시 고랭’과 같은 재료를 이용해 밥에서 면으로만 바뀌었을 뿐인데 굉장히 맛있었다. 자전거 여행가 이성종씨는 엄청난 식욕(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했다.)으로 미고랭을 먹어치우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이 기억이 난다.
코코넛 음료
사실, 한국에서 떠나온 사람들의 음식 선택권한은 없었다. PT. HUNG A INDONESIA의 직원 분께서 한국 사람들이 먹기에는 무난한 음식만 시키셨기 때문이다. 다른 음식을 하면 조금 힘들다고 하시면서, 그도 그럴 것이 화산을 가는 도중 길에서 파는 튀김류를 먹었는데 그 음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조리가 되고 있었다.) 도싸 성인이형은 마지막 날 한국에 올 때까지 탈이나 고생하셨다. 덕분에 화산구경도 못하셨다.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먹은 것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음식은 코코넛을 넣고 만든 열대 음료였는데 정말 적당히 달면서 맛있었다. 여기 사진이나 동영상에도 살펴보면 볼 수 있다. (빨대가 꽂혀있는 것) 마시면서 이 음료를 한국에 들여와서 팔면 정말 대박이 날 텐데 생각했지만 이러한 맛을 내려면 한국에 원료(인도네시아산 코코넛)가 공급이 원활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노천 이야기
산으로 가기는 길목에서 우리는 Grand Zuri에 이은 두 번째 숙소 'Ciater SPA Resort'를 찾았다. 쉡게 이야기하자면 펜션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꽤 규모가 큰 타운 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President Suite' 하우스에서 묵었는데 1박에 우리 돈 70만원 (사실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비싸긴 했다.) 한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PT HUNG A INDONESIA 직원 분께서 협의를 잘해서 그것보단 싸게 합의를 봤다고 하셨다. 세상은 어디든 쇼부(협상)의 달인이 되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에 도착했으므로 짐을 풀고 시원한 옷차림으로 풀(노천)에 들어갔다. 곧 흥아 인도네시아 직원 분께서 맛있는 파인애플(정말 달고 맛있다.)과 함께 Sate(사떼, 꼬치구이) 그리고 현지 맥주인 ‘BINTANG’을 사들고 오셨다.
유황온천수가 나오는 물이 몸을 푹 담구면서 맥주와 안주를 먹으며 일행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좋은 시간은 자전거 여행가 이성종씨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거였다. 내가 책에서만 보던 저자와 이렇게 맥주를 마시며 웃통을 벗고 허심탄회하게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쏟아질 듯 했다.
'Tangkuban Perahu'의 여왕
West Java섬의 Bandung 지방에 위치한 Tangkuban Perahu(땅꾸반 페하루) 화산은 1983년 마지막 분화를 했고 높이는 2,084m다. 확실히 위에 올라가니 날씨가 춥고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이틀간의 인도네시아와는 다른 우리나라의 가을에 가까운 날씨를 경험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분화구는 ‘Kawah Ratu’라는 Tangkuban Perahu 산의 3개의 분화구중 가장 큰 규모고 그 뜻은 ‘여왕의 분화구’라고 한다. 주변은 유황 냄새가 많이 나고 증기 때문에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았다.
이곳은 흙과 화산제와 물이 섞인 것(온수 온천과 끓는 진흙)이 분화구에서 끓고 있는데 뜨거운 표면으로 삶은 계란을 구매해서 먹을 수도 있고 관련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기념품이 화산관련이 아니라 이날 밤 한국에 오기 전 방문했던 인도네시아 최대의 쇼핑센터중 하나라는 곳의 ARUN ARUN INDONESIA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팔아 메리트가 떨어졌다.
물론, 현지 상인들에게 나 봉 아니요! 라고 떠보면 가격을 확 낮춰 살 수 있다. 한국 관광객이 ‘Kawah Ratu’ 분화구에도 많이들 오는지 한국말로 자기가 파는 물건이 선물로 가격이 얼마라는 현지 상인들의 말을 들을 수도 있는데 그 가격은 정말이지 물건의 질의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러니 흥정을 하면 반 이하로 값이 바로 내려간다.
이 산을 올라가는 산기슭에는 중간 중간 차밭을 볼 수 있고 길목에는 파인애플을 파는 가게를 볼 수 있다. 기억이 나는 것은 화산관광을 하고 내려오는 도중 파인애플을 사서 먹었는데 그 맛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꿀맛이었다. 역시 적도부근이라 그런지 열대과일 맛이 끝내주었다. 그리고 도요타의 렌터카를 몰던 기사님이 돈을 주고 자동차 바람을 넣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시설이 산기슭에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 해발 2000m나 되는 이 산을 오토바이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이곳을 자전거(로드바이크)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던 사람을 봤다는 것이다. 그는 저지를 입고 있었고 헬멧을 갖춘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였는데 우리는 그 관경을 보고 뚜르드 인도네시아를 하면 포함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코스라고 농담했다.
고양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 인니
인도네시아 같은 이슬람 교인이 많은 나라들은 고양이들의 천국이라 한다. 개는 이슬람 성전에 들어갈 수 없으나 고양이는 전혀 제한이 없다. 심지어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내가 본 고양이들도 행색은 뭐 천국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모두들 식당에서 본 녀석들임에도 불구하고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손님 주변에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떠는 녀석들을 쫓아 내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얼마나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행 중 이곳 인도네시아서는 개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는데 거 큰개는 길거리에서 혀를 내밀고 무척 지친 모습을 하고 있던 게 기억나는 반면 고양이 녀석들은 눈빛도 풀려 있고 말랐지만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은 점에서 한국과 참으로 대비되었다. 특히, 한국의 길고양이들과 달리(코리안 쇼트 헤어(코숏)) 주둥이가 좀 더 튀어 나와 있고 눈빛이 덜 날카로운 생김새의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
인도네시아의 교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구글 지도를 통해 인도네시아 도로 상황을 보니 자카르타에서 내가 지나온 고속도로나 국도는 타 지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주 오래 하나로 되어 있고 드문드문 빠지는 커다란 도로가 연결 되어 있어(땅덩이가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될 만큼 넓다.) 극심한 교통체증은 피할 수 없다. 특히, 고속도로 외의 국도는 2차선이 대부분이다. Cikarang 부근에서 Jakarta로 이어지는 Jalan Tol Jakarta – Cikampek 고속도로는 자카르타로 가까워질수록 교통체증이 극심해진다.
목표점인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은 자카르타를 완전 관통해야만 도달 할 수 있다. 그곳에 가기 전에 우리들은 인도네시아의 최대 쇼핑몰이라는 곳에서 쇼핑을 즐겼다. 자카르타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여과 없이 볼 수 있는 도시인데, 고속도로 한번만 타고 시를 지나간다면 인도네시아의 흑과 백을 한 큐에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느낌을 말하기에 앞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에의 성남시에서 분당구와 그 외의 나머지 성남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도저히 같은 도시라고 느낄 수 없는 이질감. 거기다 구가 이어지지 않고 잠시 떨어져 있다가 나타나는 도시구조는 충격적이었다. 세계 어떤 도시를 가나 부자동네와 그렇지 않는 동네가 존재하지만 자카르타는 극심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쇼펭센터에 들어가 스파벅스에 커피를 마셨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만원 가까이 나온 걸로 기억한다. 즉, 우리나라 돈 만원이면 십만 루피인데 십만 루피면 인도네시아 일반 직장인의 월급 평균 소득이라고 한다. 월급을 부자동네의 별다방 커피 한잔으로 바꿀 정도면 어마어마한 빈부의 격차다.
또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상당히 성격이 느긋하다. 더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내가 커피를 기다리는데 한국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속도로 커피를 주고 순서가 뒤바뀌었음에도 사과도 안하고 태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같은 스타벅스라도 나라마다 서비스가 다르구나를 느꼈다.
잘 지내나요. 인니?
시간에 쪼들려 쇼핑을 하고 쇼핑이라고 해봐야 한국의 지인들에게 선물로 줄 고양이 목각 인형 몇 개를 사왔다. 일행 중 몇몇은 루왁(Luwak)이라는 커피원두(원두인가 가루인가 기억이 가물가물)를 샀는데 우리 돈으로 따지면 3~4만 원가량 한 걸로 기억한다. 지금 이글을 쓰는 날 KBS에서 인도네시아 이야기가 나왔는데 루왁커피는 루왁(말레이사향 고양이)이라는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싼 똥을 원료로 한다. 그때는 커피에 관심이 없어서 처다도 안 봤는데 지금 이였다면 나도 루왁커피를 사들고 왔을 게다. 지금 있는 한국에서는 먹어보고 싶어도 비싸서 안사 먹는데 말이다.
그렇게 3일전에 도착한 공항에 도착하고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전히 항공사는 가루다 인도네시아고 다행히 야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면 아침이 되어 있기 때문에 탑승객이 얼마 없다. 해서 우리 일행들은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비즈니스 클래스 못지않은 호사를 누렸다. 1명마다 1열씩 전 시트를 차지해 잠을 청했던 것이다. 다행이 승무원들은 그런 우리들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한국에 다다를수록 비행기 창문에 서리가 낀다. 겨울이다. 다시 비행기 안에서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나의 꿈중 하나는 자전거 여행기를 출간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마 약 10개월 전에 기억을 더듬어 여행기를 쓰니 새삼스럽게 내가 서평을 줄곧 쓰던 에세이를 집필 하신 분들이 존경스러워 진다. 자전거 여행가 이성종씨가 그때 말했다. 원고 쓰는 게 정말 힘이 들다고. 기억 하나 하나를 되풀이 해보니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거 같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그날의 일들 그리고 인도네시아. 잘 지내나요. 인니(印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