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협재 - 제주시(예하게스트하우스) : 비로소 완성된 자전거 여행 작은 지구촌을 만나다!

코골이에 대응하는 법
첫날은 병훈이가 코를 심하게 골더니 오늘은 제주 ‘용윤'형님께서 드르렁 드르렁 대신다. 내 살면서 다섯 손가락 안에 꽂을 정도로 대단한 코골이 였는데 적당한 비유를 찾자면 탱크가 몰려오는 정도다. 내가 만약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면 이용규칙에 코골이 손님은 이용 할 수 없다는 규칙을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만성으로 코를 고는 사람들이 있는고 하면, 피곤할 때만 간헐적으로 고는 사람들이 있으니 잠을 자지 않으면 분별해 낼 수가 없거니와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한 가격에 묵는 것이 메리트고 이런 조건들을 감안하고 묵으며, 코골이와 도미토리를 함께 이용하게 되면 평상시 잠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거시였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달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는 결론에 까지 이르렀다.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는 이번 건이 처음인 내가 괜찮은 팁을 하나 스스로 발견했는데 코골이와 함께 잘 때는 바로 커널형 이어폰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최근에 번들로도 커널형 이어폰을 탑재한 제품들이 많고 가격도 시중에서 저렴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이어폰으로 쓰다. 잠자리에서 불가피 할시 커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면 상당히 차음이 많이 된다. 물론, 대단한 코골이 소리를 민감한 잠자리서 100% 차단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이걸 이용하면 그나마 잠들만 하다. (더불어 1부서 치열한 게스트하우스 콘센트 확보 법으로 4구 미니 멀티탭을 지참하라는 것도 언급)


 

▲ 쫄깃쎈타는 입구부터 감성적이다.


첫날(1부)서 나를 잠못들게 하던 병훈이 녀석은 용윤형님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쫄깃쎈타 거실쇼파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나는 녀석에게 “야~ 니가 왜 나가노? 니도 함 당해봐라!” 했지만 이기적인 녀석은 내 말을 무시하고 나갔다. 시간이 지나보니 내 말을 차갑게 무시하고 거실의 좋은 자리를 선점한 병훈이가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이었다.

나는 첫날 이미 하드 트레이닝을 한 상태이기에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잠을 자려 노력했다. 새벽 3정도 였을까 모슬포서 치킨 집을 운영하시는 형님도 항복하시고 거실로 나가셨다. 그는 비양도가 보이는 창가 쪽을 피난처로 삼으시고 잠이 드셨다. 생각해보면 거실도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게스트들이 잠을 자다 거실서 물을 먹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해도 사부작거리는 소음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래도 탱크 코골이 곁에서 6.25 전쟁을 다시 한번 체험 하는 것 보단 낫다.

 


▲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게스트들을 위해 메뚜기 수프를 끓이는 메가쑈킹님


속풀이로는 메뚜기 스프
나는 커널 이어폰을 무기로 끝까지 저항했다. 그렇게 잠시 잠이 들었다 리얼리티한 6.25 참전 자각몽을 꿨다 깼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6시가 됐다. 거실에는 병훈이와 치킨집 사장 '창우'형님이 괴로운 잠을 청하고 계시고 메가쑈킹님이 주방 찬장에서 무언가를 달그락 거리며 꺼내고 계신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인사 한다. 재빨리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메뚜기 스프를 휘휘 젓고 계신 계 아닌가? 왜 메뚜기 스프냐면 ‘메가쑈킹이 만든 오뚜기 스프‘라고 메가님이 직접 대답해주셨다.

메뚜기 스프는 오뚜기 스프에다. 게스트하우스서 전날 과음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해장용으로 맵싹하고 개운하게 끓이는 게 포인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두울 게스트들은 잠에서 깨고 준비된 재료로 먹고 싶은 조합을 세팅해 아침 식사를 한다. 나는 귤, 몸에 좋다는 제3국 출신의 차, 토스트, 계란 프라이, 스프를 조합해 냠냠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제법 든든하다.

아 스프 맛이 어떠냐고? 말 그대로 종전에 맛 볼 수 없는 얼큰맵싹한 맛이 일품이다. 제법 많은 양을 먹어도 입에 물리지 않는 진정한 코리안 스타일로 승화됐달까? 역시 소싯적 식품영양학과(메가쑈킹님은 30세부터 전업 만화가를 시작함 그전 까지는 요리함)를 나온 전직 요리사(?)의 결과물은 달라도 뭐가 달랐다.



▲ 묵었던 숙소 중 아침이 가장 알차게 나왔던 쫄깃쎈타, 메뚜기 스프가 은근히 배부르다.


그렇게 식사를 정리하고 잠시 앉아 있다. 화장실에 가 있으니 병훈이게 날 부르는 게 아닌가? 용윤형과 창우형님이 가신단다. 이른 아침 작별 인사를 하니 뭔가 아쉽다. “여행 마무리 잘하고, 제주도 또 오면 연락해!“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분들이 떠나고 나니 무언가 허전하다. 밖을 보니 스믈스믈 비가 내린다. 울산을 떠나기 전, 날씨를 체크할 때 이 시점에 비가 오리라 예보가 돼 있었고 스트라이다를 가져 온 이유가 바로 도난과 비에 대비하기 위함이 가장 크기에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오늘 주행할 거리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리 길지 않고, 별다른 일정이 없기에 여유를 부리고 침대에 잠시 누워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좀 있다 보니 어여 다음 숙소로 떠나 푹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병훈이에게 떠나자고 한다. 거실에 때 마침 메가님이 사람들과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메가님과 우리 일행도 짧은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고 트위터로 잘 지내다 간다고 메시지도 남기니 맞 팔로우도 해주신다. 기념사진을 찍고 떠날 채비를 한다.


 

▲ 메가쑈킹(고필헌)님과 떠나기 전, 추억을 남기다.


한참 추운 날에 비가 왔으면 덜덜 떨면서 라이딩을 했을 텐데 다행히 이번 여행 중엔 날씨가 크게 춥지 않다. 굳은 날씨지만 마음은 가볍다. 오늘만 열심히 달리면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커다란 목표는 하나 끝이 나고 나머지 한라산만 정복하면 되는 것이다. 1132 국도로 접어든다. 쫄깃쎈타를 나올 땐 빗방울이 많이 떨어지진 않았고 어쩌면 그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 날씨였는데, 다음 목적지인 예하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 까지 비는 그치질 않았다.

생각보다 오르막 길이 많다. 언덕길은 넘다보니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어진다. 제주시에 가까워질수록 차량도 많아지고 특히 트럭 비율이 압도적이다. 쏟아지는 비와 늘어나는 차량에 위협을 느낀 우리는 후미등을 낮부터 키기로 한다. 그런데 내 스트라이다에 달린 바이크윙커 후미등이 켜지질 않는다. 물이 많이 묻어 정상 작동을 하지 않나보다. 결국 앞에 달려 있던 조그마한 비상용 라이트를 뒤에 달고 주행을 한다.


 

비, 자동차, 펑크 3대 악재
자전거 타기에 환경이 썩 좋지가 않다. 통행량이 많다보니 도로 상태도 안 좋다. 결국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뒷바퀴 느낌이 이상하다. 빵구가 난 것이다. 길바닥에 유리, 아스팔트 조각 등이 많다보니 펑크 가드가 되어 있는 슈발베 마라톤 타이어도 결국엔 버티지 못한다. 다행이 근처에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어 그곳에서 비를 피하며 수리를 하기로 한다.

살펴보니 커다란 유리가 박혀 있다. 때울까 고민을 했지만 비상용 튜브를 2개 가지고 왔기에 튜브 교체를 하기로 한다. 다시 바람을 넣는다. 내가 이 스트라이다를 중고로 구매할 때 펌프와 가방도 함께 내용물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펌프로 공기를 주입해보니 상당히 잘 들어간다. 역시 플로어 펌프처럼 발로 밟고 꾹꾹 눌러 넣는 펌프가 무게가 무겁긴 해도 성능은 좋다.

때 마침 점심시간이라 밥을 뭐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썩 입맛당기는 곳이 없어 길을 다시 나선다. 그렇게 쉬지 않고 한참을 달리니 머리위에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저기 멀리 제주국제공항이 보인다. 다 왔다~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힘차게 페달링을 한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차는 갈수록 늘어나고 옆에는 자전거 도로도 없지만 고지가 머지 않았다.


 

▲ 자전거 여행에서 늘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빵구


다시 열심히 달리다 보니 뒤에 오던 병훈이가 나를 부른다. 뒤를 보니 자기 자전거도 펑크가 났단다. "그래~ 자전거 여행에 빵구가 안 나면 재미가 없지. 비도 맞고 빵구도 나고 할 건 다 하네~" 그렇게 웃으며 근처 주유소로 향한다. 그곳에 가서 비를 피하며 펑크패치를 한다. 가져간 펑크패치는 본드를 바르지 않고 근처 부위를 사포로 문지른 후 바로 붙이는 스티커식이였는데 우리 둘 다 한 번도 사용은 해보지 않았다.

영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사용을 해보니 성능이 기대와 달리 좋은 거 아닌가! 스티커식 펑크패치는 본드를 바를 필요도 없고 게다가 접착제 말릴 시간도 없으니 참 간편했다. 병훈이가 작업 중일 때 옆을 가만히 보니 차 한 대가 오더니 바람을 넣고 있다. 나는 병훈이에게 저기 바람 넣으면 되겠다고 컴프레셔로 손짓했다. 때 마침 적절한 위치에 필요한 기구가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여행은 이렇게 사소한 거 하나도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 비가 오니 주변 풍경은 뒷전이고 달리는데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이제 조금만 가면 제주 시내다. 비행기서 내려 국도로 나올 때 타고 나왔던 도로가 다시 나타난다. 비로소 한 바퀴 돌았다는 기쁨에 나와 병훈이는 “정확히 딱 한 바퀴 돌았네”라며 서로 부뜻함을 담은 한마디씩 주고받는다. 예하게스트하우스를 가기 위해선 조금 더 가야 한다. 한 바퀴보다 조금 더 가려니 자전거 타기 싫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제주도 사람들은 차동차 운전을 참 더럽게 한다. 부산 못지않다. 운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운전자들이 렌터카를 렌트해 차를 모는 경우도 많고, 관광객들이 객지라 길을 잘 알지 못해 헤매는 경우 때문에 특히나 더 그렇다. 게다가 그곳서 사는 제주도 사람들은 그 영향을 받아 운전습관이 더 이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입으로 쌍욕을 하며 인도로 들어갔다 차도로 나오기를 반복한다.


 

▲ 점심은 삼계탕으로 해결했다. 제주 막걸리는 소주인 한라산보다는 별로 였다.


드디어 목적지 근방에 도착했다. 시간이 아직 2시 정도기에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완주를 한 기념으로 좀 비싼 거로 먹기로 하고 뭘 먹을까 고민하다. 삼계탕을 먹는다. 후추가 제법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맛이 있다. 먹고 싶던 제주도 막걸리도 시킨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제주 막걸리가 없다고 하시면서 국순당 막걸리를 권해주신다. 나는 “저희가 육지서 왔는데, 제주도 막걸리가 먹고 싶어서..“ 라고 말씀드리니 근처에서 사다 주셨다. 제주 막걸리는 제주도 소주인 한라산 보다는 특별함이 떨어진다. 울산의 태화루가 더 맛좋다.

예하게스트하우스는 병훈이가 제주 여행을 홀로 왔을 때 묵었던 숙소다. 왔던 숙소는 가지 말기로 했지만 다시 이곳에 온 이유는 1인당 5천원의 비용만 내면 콜택시를 불러서 성판악 등반 코스까지 데려다 주고, 참고로 성판악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없다. 겨울 이벤트로 아이젠까지 무상으로 빌려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 날 얼리 버드로 떠나기에 공항에서 가깝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자전거를 안에다가 놓아야 하는데 카운터에 물어보니 지하에 놓으면 된다고 한다. 다만, 도난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자전거는 제법 값이 비싸고 접이가 되니 1층 라운지에 놔두고 싶다고 했다. 그러라고 한다. 모두가 사용하는 라운지에 놓으려니 비 맞은 스트라이다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물을 퍼와서 입구서 자전거를 깨끗이 씻기곤 라운지 테이블 아래에 잘 주차 해 놓는다. 스트라이다는 씻길 때도 물을 막 뿌리면 되니 부담이 없다. 다만 언덕길을 만나면 사람도 자전거도 모두 힘들어 할뿐.


 

▲ 이틀을 지낸 예하게스트하우스의 4인실 도미토리(1일 2만2천원)


체계적인 시스템의 예하게스트하우스
이곳은 그동안 묵은 숙소와 달리 외국인들이 많고 하나부터 열까지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다. 어느 정도냐! 예약 및 결제가 완료되면 문자 메시지로 찾아오는 법을 상세하게 알려줘 관광객이 문의전화 할 일을 미연에 방지한다. 룸에는 1인용 미니 캐비넷이 하나씩 있어 소중한 물품의 도난을 방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그동안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랑 비교 할 수 없게 전문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울산서 떠나기 전 가장 저렴한 6인실은 이미 매진사례라 4인실 2만 2천원짜리로 이틀 연속 예약했다. 덕분에 색다른 인연과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체크인 하니 딱 봐도 외국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큰 짐이 침대 밑에 놓인 채로 관광을 위해 자리를 비운상태다.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외국인의 짐을 눈으로 살펴보니 처음엔 중국에서 온 거로 추정했으나 화물택을 보니 'Singapore‘ 라는 표기가 있다. 아! 이 사람 싱가포르에서 왔구나! 외국인 관광객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나는 기뻤다. 병훈이는 하도 외국인에게 많이 디어서 썩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진 않았다. 녀석은 “외국인에게 잘해줘 봐야 호구만 되고 돌아오는 게 없다” 그러므로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하면 된다는”게 그의 오랜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자기만의 삶의 지혜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관념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게 중론.


 

▲ 산뜻한 1층 라운지에는 게스트들이 모여 식사와 담소, 각종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비를 맞아 옷이 눅눅하다. 겨울옷은 부피가 크고 이동 중 계속해서 가방을 메야 하기 때문에 짐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내일 한라산을 가려고 보온이 되는 옷을 다시 입기 위해서는 세탁해야 했다. 세탁기에 넣을 옷을 정리해 세탁기를 돌리고 라운지에 앉아 게스트용 컴퓨터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

이 얼마 만에 맞보는 여유인가 돌이켜보면 첫날 여행이 가장 힘든 것 같다. 날씨도 흐렸고 거리도 제법 길었고 해가 일찍 저무는 바람에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두 번째날은 아침 일찍부터 출발하고 날씨도 좋아서 관광할거 다 하고 다녀도 심리적 부담이 덜했다. 거리가 가장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생을 먼저 해서 그런지 마지막 하이라이트 한라산을 느긋하게 기대하며 계획대로 오늘은 휴식이다! 라면서 편하게 쉰다.

쫄깃센타서 떠나기 전 잠시 메가쑈킹님이 스트라이다 타고 온 우리를 보며 스트라이다로 자전거 여행에 한 획을 그은 ‘정태준’ 이야기를 꺼냈는데 나 또한 그를 안다고 맞장구치며 그의 여행기가 참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으로 엮일 뻔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말이다. 메가님은 그의 이야기가 구성상 인터넷으로 스크롤링을 해야 재미있고 책으로 내면 재미가 없는 구조라고 말씀하셨다.


 

▲ PC에 앉아있던 중국인들은 메신저를 한다고 정신 없었다.


병훈이는 그 말을 듣곤 내게 정태준의 여행기가 어딧냐?고 물어봤고 나는 주소를 알려줬다. 지금 녀석은 휴식을 취하며 그의 스트라이다 일본질주 블로그 글을 읽으면 키득대고 있다. 그러다.. 트위터에 관심을 가진 녀석은 내게 트위터 사용법을 알려달란다. 녀석 그때 트윗 몇 번 하더니 지금은 잠수상태다. 예전에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앱 하이데어로 자전거 한 대 팔고 만다는 다짐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걸로 여자 몇 명 만난 후로는 영 재미가 없는지 그 또한 잠수상태인거 같다. 녀석이 현재 간간히 하는 건 페이스북 뿐이다. 그렇게 라운지서 휴식을 하고 나니 타이머 맞춰놓은 폰이 진동한다. 세탁 시간이 끝난 것이다. 세탁물을 챙겨 건조대에 널어놓곤 숙소로 올라가 낮잠을 자기로 했다. 내일 성판악 코스 등반을 위해 피곤한 몸을 최대한 충전해야 한다. 침대마다 전기장판도 세팅되어 있어 따끈따끈 노곤노곤한게 좋다.


 

▲ 예하게스트하우스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어림향’ 생각보다 비쌌지만 맛있었다. 굳이 숙소서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일식을 즐기고 싶다면 가볼만 하다. 음식이 대체로 입에 물리지 않고 깔끔해! 반찬까지 깨끗히 비워낸다면, 돈이 아깝지 않을 것!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 1동 567-8, 064-727-7999, 지도)


나는 그저 '날 것'을 좋아할 뿐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나니 저녁이다. 점심에 이어 오늘도 호기를 부려보기로 하고 주변 맛집을 검색해보는데 예하게스트하우스서 가장 가깝다는 일식집 '어림향'이 블로그 포스팅으로 걸려있어, 이곳으로 결정하고는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제주도만의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이를테면 흑돼지 같은.. 그런데 병훈이가 값도 제법 비싸고 맛이 그저 그렇다고 하는 게 아닌가! 뼛속부터 때때무치인 나는 평소 좋아하던 회나 먹자고 생각하고 말았다.

일식집서 회덮밥을 주문하니 반찬이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매우 만족스럽다. 회덮밥 가격이 8,000원이긴 하지만 값어치를 한다. 거기다가 초밥을 플러스로 시켰다. 여전히 빠지지 않는 멘토 한라산도 추가요! 나는 본전을 뽑겠다며 모든 반찬을 두루두루 싹쓸이 했다. 병훈이는 그런 나를 보며 진짜 니는 때때무치다며 빈정된다. 나는 일식을 좋아할 뿐이다. 그 뿐이다. 사실 모듬 회 세트를 먹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매우 비싼 가격에.....


 

▲ 다음날 한라산을 함께 등반한 싱가포르인 룸메이트 ‘Xing Jian’


드디어 외국 관광객과 한 방을 쓰다
쌀쌀한 날씨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와 널어놓은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으니 딱 봐도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 계열 사람이 문을 열고 돌아온다. "안녕하세요?" 라는 어색한 한국말과 함께.. 그렇게 우리들의 대화는 시작됐고 한국 어디 어딜 관광했느냐부터 시작해 자기소개까지 하기 이른다. 이름이 ‘Xing Jian‘인 그는 우리보다 나이가 4살이 많다. 중국계 싱가폴 인으로서 자국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자신의 국적은 싱가폴이라도 스스로 중국인라고 말했다.

우리는 내일 한라산에 간다고 했다. 더불어 성판악 코스로 올라가는데 가장 힘든 길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패드로 2010년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온 것을 보여주며 자신도 일본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는 등산을 했다고 증명했다. 우리는 내일 갈 코스가 그것과 비교가 안 되는 곳이라고 했고, 한참을 생각한 그는 엄두가 안 난다는 투로 손사래를 쳤다.

병훈이 녀석이 영어 전공이라 상대방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결국에는 내일 XingJian과 함께 등반하기로 했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게스트 한명이 더 왔다. 총 4인실에 비로소 4인이 꽉 찬 것이다. 부산서 온 한국인이다. 다음날 학회가 있어서 왔고, 둘이서 왔는데 함께 온 이는 여자라 다른 방을 쓴다고 했다. 그에게도 잠시 후 우리가 맥주를 먹으러 내려가는데 함께 하겠냐고 하니 흔쾌히 승낙했다. 물론, Xing Jian도 함께!


 

▲ HAPPY HOUR! 타임은 맥주를 무료로 한캔씩 지급한다.


이곳이 작은 지구촌
먼저 씻은 병훈이와 나는 라운지에 내려와 예하게스트하우스서 밤 7시부터 9시30분까지 무료로 주는 맥주 (버드와이저부터 Max까지 종류가 다양함) 를 챙겨 자리를 준비하고 앉아서 룸메이트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낮에 일찍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은 제법 시끌시끌하다. 대만사람 중국사람 인도 사람 등이 많다. 서양인은 볼 수가 없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 옆에 인도에서 온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은 백그라운드로 나오는 소녀시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나는 한국 맥주중 Max를 좋아한다. 그런데 Xing Jian 역시, 냉장고에 들어있는 수많은 맥주중 Max를 골라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에게 맥스가 한국 맥주중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Cheers 하곤 이야기를 나눴다. Xing Jian과 나눈 대화를 몇 소개하자면 싱가포르는 겨울이 없고 1년 대부분이 여름으로 습하고 한국이 추울 때는 싱가폴은 뇌우가 쏟아진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비가 자주 오면 우울하고 자살률이 높아진다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가 한국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자신의 아이폰 지도를 이용해 보여주고 현재 날씨도 보여줬다.

병훈이와 나는 한국의 울산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부산과 대구 그리고 경주도 알았는데 울산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경주 밑에 있고 부산 위에 있는 도시라고 말하고 지도를 보여줬다. 그러곤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이자 부자도시라고 소개했다. 현대자동차가 있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내가 울산 출신의 여배우 김태희를 아냐고 하니 모른단다.

서로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그러다 우연히 Xing Jian의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떤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더니 여자친구 였다고 한다. 우리가 “와 예쁘다”고 말했고 사진의 주인공이 싱가포르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하니 한국인이란다. 그런데 이별했단다. 좀 더 깊게 들어가니 대구 사람이며 한국에 오게 된 것이 그녀를 보기 위해 왔고 대구에 무작정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여기저기를 여행을 한 것이라고.


그는 한국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소녀시대, 티아라, 슈퍼주니어 등의 한국 아이돌을 알고 있었고 겨울연가의 배용준, 최지우, 대장금의 이영애도 알고 있었다. (울산의 김태희는 모르고) 나는 최지우는 한국에서 이제 인기가 좀 없어진 배우라고 했다. 그는 작년엔 일본여행 다녀왔는데 도쿄의 지하철이 정말 복잡하다고 말했다. 나는 응수해서 한국의 서울 신도림과 신림의 지하철역도 생지옥이고 서울 사람들은 좀비같이 무표정하며 삶의 여유가 없다고 흉내 냈다. 모두들 웃었다.


 

▲ 우리가 떠나온 여행, 우연히 만난 사람들, 모두들 서로의 기억 한 조각으로 남다.


여행 내내 마셔댔던 한라산이 나를 기다리다
내일 한라산을 등반하기 위해 일찍 잠을 자야 하는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하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우리가 묵을 2층 룸 올라가는 계단에 붙어 있는 사진들. 지난겨울 이곳에 온 병훈이 모습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 나는 그 사진을 가리키며 병훈이가 여기 있다고 했다. 녀석 옆에는 그 순간을 함께한 외국인들도 시간 속에 영원히 멈춰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마지막 날 예하게스트하우스를 떠날 때, 비행기 시간에 쫓겨 일찍 서두르는 바람에 이곳에서 찍어주는 룸메이트와의 소중한 추억(사진)을 남기지 못해 아쉽다. 우리들은 늘 이런 말을 한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

내일을 위해선 잠을 자야 한다. 선잠을 한시간정도 잤을까 병훈이가 첫날에 이어 또 코를 골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커널 이어폰을 귀에 꽂아 차음을 하고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질 않아, 일어나서 라운지로 나간다. 따뜻한 차를 끓여 한 목음씩 마시며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이곳은 북적 부적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먹은 컵을 씻어놓곤 자리에 올라가 다시 잠을 청한다. 눈을 뜨면 여행 내내 마셔댔던 한라산이 나를 먹을 차례다. 울산을 떠나오기 전 한라산 등반 당일 날씨는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일기예보는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 비가와도 무조건 간다고 일정을 짰지만, 가장 힘든 코스인 '성판악' 오를 생각하니 긴장이 되나보다. 생에 첫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 2011년 12월 7일 스트라이다 제주일주 넷째 날 (제주도 한바퀴 완주 함) [자세한 지도] :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숙소에 도착 할 때까지 비가 내렸다. 제주시에 다가갈수록 도로상태가 나빠지고 차량 통행량이 많아진다. 특히 트럭이 늘어난다. 도로변에 자전거 도로도 없다. 일식집 어림향의 음식은 매우 깔끔하다! 예하게스트하우스는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곳 중, 숙소로서 본연의 임무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으므로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추천! (예하게스트하우스 : 조식 포함, 도미토리 1인 1만9천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561-17, 064-724-5506, 홈페이지)

한국에서 자전거 매장 실장 그리고 월간지 팀장을 엮임 후, 70여년 역사의 캐나다 Ridley's Cycle에서 Senior Service Technician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경험을 녹인 자전거 복합문화공간 <#라이드위드유>를 고향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업사이클을 테마로 한 카페이면서 스캇, 캐논데일, 메리다, 콜나고 그리고 브롬톤, 턴, 버디, 스트라이다, 커넥티드 전기자전거 등을 전개하는 전문점이기도 합니다.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합니다. *찾아가기 | 연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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