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주시 - 성산일출봉(성산게스트하우스) : 스트라이다 일주 계획부터 첫 목적지까지

Prologue :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섬, 제주도
내가 자전거를 타게 만든 계기는 정본좌라 불리는 정태준의 스트라이다 여행기를 통해서였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었는지 나는 하던 일을 관두고 울산으로 다시 내려와 자전거 한 대를 산다. 그게 다혼 스피드 P8 (DAHON SPEED P8)이다. 그 자전거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곳을 다니고 로드바이크를 타게 되고 결국엔 내게 순수한 자전거 매력을 알려준 은색 스트라이다를 입양하게 됐다. 녀석은 처음 언급한 다혼과 싸이클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눈 오는 날 비오는 날 가리지 않고 내 발이 되었다.

스트라이다(STRiDA)와 나는 내 생에 첫 몇 박 며칠 걸리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됐다. 내 꿈 중 하나가 작게나마 이루어지게 됐던 것이다. 그곳은 남들 다 일주하는 ‘제주도‘ 하지만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겨울’ 제주도다. 원래 울릉도를 다녀와서 나머지 일정으로 강원도 쪽을 여행하는 코스로 확정되는 분위기였으나 함께 여행을 떠난 병훈이가 "제주도 갈래?" 라는 반전의 한마디로 "그래 돈도 돈대로 쓰고 고생할빠엔 제주도가 무난하니 좋겠다" 싶어 최종 선택이 된 것이다. 제주도를 말한 병훈이는 어떤 의도로 제주를 얘기했는지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아 모르지만 나에게 제주도는 미지의 섬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해서 나는 오케이!

제주도 자전거 일주라는 퀘스트를 올리곤 그날 저녁 우리는 바로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제주에어 일인당 왕복 8만원 중반 정도 (세금 포함)의 금액이 나왔다. 최대한 싸게 싸게 다녀오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얼리버드를 예약했다. 교통편을 잡았으니 제주에서 작은 일정들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5박6일의 시간이 있었고 스트라이다는 잘 달리지 못하는 자전거 였으며 겨울 해는 짧았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게스트하우스 선정
처음엔 넉넉하게 짜이기 시작했던 일정은 차츰차츰 변경이 되기 시작했다. 병훈이는 이미 브롬톤으로 제주 일주를 한번 했던 녀석이고 최근엔 제집 드나들듯 제주를 자주 왕래했기에 그 녀석이 가지 말자고 하는 곳은 안가기로 했다. 어차피 주요 관광은 나중에 차를 렌트해서 하던지 혼자 올레 길을 걸으면서 하던지 하면 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고정관념과는 달리 제주는 옆 동네 가듯 쉬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

섬을 한 바퀴 돌기엔 210키로 정도의 거리가 됐고 하루에 50~60키로 남짓만 돌아도 다 돈다. 그렇지만 좀 더 고생을 하고 싶었던 우리는 한라산을 계획에 넣었고 덕분에 자전거 제주도 일주는 2박3일만에 종료하고 나머지 일정을 한라산에 올인 했다. 이제 골자는 정해졌으니 숙소 위주로 하루 일정과 루트를 정했다.

나는 처음 민박이나 2인실을 하자고 했으나 병훈이는 끝까지 도미토리로 하잔다. 어차피 2인 이상이 가게 되면 도미토리나 2인실이나 금전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도미토리를 하면 하루 밥값이 빠지므로 도미토리로 하기로 했다. 병훈이는 자기가 가본 게스트하우스는 가지 말자고 했다. 그렇게 정해진 게스트하우스가 ‘첫날 - 성산게스트하우스, 둘째 날 – 산방산탄산온천게스트하우스, 셋째날 – 쫄깃쎈타, 넷째날 다섯째날 – 예하게스트하우스’다.

이들 게스트하우스를 선정한 이유를 얘기해 보자면 성산게스트하우스의 경우 일출봉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바비큐 파티를 했으며 조식을 제공했음에도 1만5천원으로 가격까지 저렴했다. 둘째 날 산방산탄산온천게스트하우스는 둘째 날 이동거리가 70Km가 넘을 만큼 이동 거리가 긴데 탄산온천에 몸을 푹 담고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게 크나큰 장점이라 선정했다. 가보니 여행자가 돈을 쓸 수 밖에 없는 가장 상업적인 게스트하우스 이었지만 2만원에 온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셋째 날의 쫄깃쎈타는 서쪽의 코스에는 썩 땡기는 코스가 없었다. 숙소를 정하긴 정해야 하는데 별다른 특징이 없는 코스니 고민이 많았다. 적당한 주행 마무리 부분에서 지도를 확대하다 보니 쫄깃센타라는 특이한 이름이 뜨는 것이 아닌가? 알아보니 만화가 메가쑈킹이 하는 게스트하우스래서 숙소를 관광하자는 생각에서 선택 했다. 마지막날 예하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이 많고 한라산 등반 코스인 관음사를 1만원에 픽업해주는 서비스가 있고 아이젠까지 무료로 대여해주고 공항에서 가까워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선택한 숙소는 다들 만족스러웠다.


 

▲ 보라색 라인으로 죽 들러져 있는 것이 제주 210km 일주코스다. 우리는 이 길을 동쪽(지도상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다.


1132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돌다
숙소 루트를 보면 동쪽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병훈이 녀석이 자기가 서쪽으로 이미 돌아봤다며 "가보지 않은 동쪽으로 돌자" 길래 "그래 그러자" 라고 했다. 다녀와 보니 자전거 여행이든 렌터카 여행이든 서쪽이 진리다. 왜냐면 서쪽이 해변을 끼고 달릴 수 있고. 특히 자전거의 경우 해풍이 불면 페달링을 열심히 해도 해도 입에서 쌍욕이 나올 정도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데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서라도 서쪽이다. 제주도는 서쪽으로 출발해서 동쪽으로 끝나는 것이 진리니 참고하시길. 뭐 참고랄 것도 없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서쪽으로 돌고 있었고 우리들만 동쪽으로 돌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첫날에 여행의 끝을 내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우리의 여행이 끝날수록 여행을 갓 시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정하고 마찬가지로 예약을 했다. 본래 예약을 안 하려고 했다. 병훈이 녀석이 숙소는 예약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 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했다. 나도 그것에 대해 동의 했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론 가격대 성능비 좋은 게스트하우스들은 예약을 안 하면 안 될거 같아서 예약을 다 해버렸다. 결과론 적으로는 예약을 미리하고 가길 잘했다. 왜냐면 숙소는 당일 환불이 되지 않는데 돈이 아까워서라도 우리는 열심히 다음 숙소를 향해 페달링을 했기 때문이다. 또 숙소와 길 찾는 시간을 아낄 수도 있었다. 겨울은 해가 빨리 저무니 우리에겐 길에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들이 다니는 1132 일주도로는 가로등도 없어 밤이 되면 너무 어두웠다.


 

▲ 비행기에 싣기 위해 미리 자전거 박스를 준비했다. 15kg 이하는 추가 부담을 받지 않는다. 일반적인 자전거는 15kg 이하니 포장만 잘 하면 비행기에 무료로 실을 수 있다. 공항 수화물센터에서 포장할 경우 평균 1만5천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제주도를 일주할 자전거로 스트라이다를 선택한 이유
함께 제주도로 떠난 병훈이나 나나 주어진 상황은 다를 게 없었다. 똑같은 자전거인 16인치 바퀴의 접이식 미니벨로 스트라이다와 짐이 제법 많이 들어가는 큰 백팩 하나가 우리가 준비한 것의 전부다. 겨울이라 옷이 좀 더 많이 필요하단 것이 살짝궁 짜증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한라산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면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하드코어하게 제주도를 남들이 안도는 반대 방향으로 돌았고 한라산 역시 남들이 잘 오르지 않는 제일 힘들다는 관음사 코스로 오를 계획으로 마지막 날 숙소를 예하게스트하우스로 잡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스트라이다로 정한 것은 비가와도 부담이 없었고 음식점 등이나 고가의 자전거를 몰고 갈 경우 도난과 오염이 부담스러워 마음의 짐이 될 경우가 있는데 스트라이다는 그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훈이 녀석이 가진 자전거가 스트라이다 밖에 없었으며 그에 맞춰서 내가 가진 자전거도 스트라이다 였기에 공평하게 스트라이다로 했다. 우리는 비행기에 싣기 위해 자전거를 담을 박스를 울산에서 미리 다 준비를 해 놨다.


 

▲ 김해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여행의 시작날인 12월4일 재수가 좋게 우리들은 병훈이 부모님께서 부산으로 김장을 하기로 떠나신 다기에 거기에 실려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예감이 좋다. 교통비가 줄었다. 하하하. 김해국제공항도 나에게는 처음 이였다. 공항의 느낌은 인도네시아의 Soekarno-Hatta International Airport(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며 병훈이 어머니께서 제주도는 돌 박물관이 좋았고 김해공항에서는 카페에 딸린 정원 테라스가 있는데 가보시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너무 일찍 도착해 말씀하신 카페 딸린 정원 테라스로 가봤다. 역시나 예상했듯 문을 열자마자 추운 바람이 부는 동시에 뭐 별다른 볼게 없었다. 이런 게 좋다고 말씀하시다니 분명히 그 앞 카페서 파는 커피가 맛있었을 게다. 나중에 성산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26세의 룸메이트에게 물어보니 돌 박물관도 자연산 특이하게 생긴 돌을 구경 할 줄 알았는데 인공적인것이 많았다며 뭐 볼게 없다고 얘기했다. 각자 취향의 차이지만 우리들의 코드와는 병훈이 어머니 코드완 맞지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 수화물보관소 직원과 협상끝에 1만5천원에 울산서 가져간 자전거 박스 두 개를 지켜냈다.


네 말은 역시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
비행기는 제주국제공항에 도착을 했다. 우리들에겐 떠나기 전부터 해결하지 못한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울산으로 돌아올 때 자전거 박스를 어떻게 다시 구하느냐 였다. “마지막 날 숙소에 박스를 맡기자.” “공항에 잘 말해서 맡기자.” “가장 가까운 자전거 샵을 찾아 박스를 구해보자.” “공항 안에서 박스를 구해보자.” 우리는 1인당 포장비용 1만5천원이 아까워 생각의 생각을 거듭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엔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로 끝이 났고 가보니 어떻게 됐다. 역시 모든 일엔 시작이 반이다.

수화물이 우리 것이 커서 그런지 가장 먼저 나왔다. 카트에 바로 박스를 싣고 수화물보관소로 향했다. 그 앞에서 자전거를 꺼내곤 훈남인 병훈이가 먼저 여직원과 흥정을 했다. 병훈이의 이빨 까기가 먹혀들지 않는다. 그곳의 관리자인 듯한 분과 다시 이야기했지만 그는 우리가 가지고 온 박스가 자기네들이 가진 박스보다 질이 좋다며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박스를 맡아 줄 테니 자전거 하나에 1만5천 원씩 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가져온 박스 공짜로 주고 자기네들이 가진 작은 박스 이어 붙이지도 않고 (자전거를 포장하려면 그들은 작은 박스를 테이프로 이어 붙혀 자전거 크기에 맞게 재단한다.) 고생도 덜 하면서 날로 먹으려는 심보가 싫어. 나는 그럴 바에는 이 박스 딴 데 다가 버리고 떠날 때 1만5천원주고 포장 맡기는 게 안 낫겠냐며 대놓고 강하게 나갔다. 그러곤 박스 두개를 맡아주고 테이프와 칼만 제공해준다면 우리가 알아서 돌아오는 날에도 포장 할 테니 5일간 박스 두 개 보관하는데 1만5천원에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OK다. 3만원 나갈 뻔 한 걸 반값에 해결하여 1만5천원을 아꼈다. 병훈이는 내게 “네 말은 역시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 흐린 날씨의 제주시 시내, 사진에 보이는 곳으로 가면 KAL 호텔이 나온다. 그 근처에 보성시장이 있다.


보성시장 안에 있던 숨은 맛집 '세기식당'
비행기 창가에서 내려 봤던 제주의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고 흐렸다. 역시나 밖에 나와 보니 보는 그대로의 날씨다. 나는 병훈이에게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타야 힘이 나니 우선 제주시에 들러 밥을 먹고 이동하자고 했다. 스마트폰 어플로 맛집을 찾아보니 만화 식객의 '허영만'이 찾아가서 유명해졌다는 식당을 가기로 했다.

보성시장 부근에서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당최 GPS로 내 위치를 찾고 지도를 봐도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 목적지를 돌고 도는 중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스트라이다에 관심을 보이신다. 이거는 수입이죠? 자전거 얼마냐부터 시작해 벨트를 보고는 체인이 아니고 타이밍 벨트네 까지. 여기서 접이를 한번 보여주면 우와~ 하는 레퍼토리는 스트라이다를 처음 보는 이들의 대부분의 반응이다. 아저씨 ‘감초식당’ 어디 있나요? 물어보니 건물 안에 있는데 오늘 쉰단다. 우리가 정확히 위치를 찾았는데 건물 안에 식당이 있단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밖에서 웅성웅성 하고 있으니 "우리 집도 맛있는데~" 하는 식당 아주머니의 말씀이 들린다. 우리는 그곳을 가기로 했다. 사장님 여기는 뭘 잘하나요? 순대국밥이 대표음식이란다. 시켰다. 먹어보니 맛이 끝내준다. 내가 살아오면서 먹은 순대 국밥중 가장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끝내줬다. 메뉴판에 가격이 없어 과연 이게 얼말까 싶었는데 5천원이란다. 싸다. 나갈 때 사장님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당연하지 이곳에서 장사만 30년 하셨다고 하신다.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로 말이다. 그 후 제주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된 사투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의 사람들처럼 억양이 세거나 하는 그런 사투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만난 그들의 억양은 표준어의 가까웠다.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된다면 서?↑)


 

▲ 5천원의 끝내주게 맛좋은 ‘순대국밥’. 제주도에 들리면 항상 이곳에서 식사 한 끼를 하리라. 내 평생 먹어본 순대국밥 중 가장 맛있었다. 여행중 뭐 먹을까 고민을 할때마다 이 맛이 그리웠다. (세기식당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289-5 / 064-757-4713 지도)

피똥싸도록 열심히 달리다
밥을 다 먹고 나니 3시 즈음 됐다. 성산게스트하우스까진 약 40km의 거리가 남았다. 달리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스트라이다로 우리는 열심히 달렸다. 난생 처음 보는 첫날 제주의 풍경은 '세계7대자연경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사를 했고 날씨도 흐리멍텅해 내가 꿈꾸던 섬이 아닌 그냥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평범한 한국의 모습이었다. 구멍 빵빵 뚫린 돌(화강암)이 많은 게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라이딩 중 나는 ‘검정치마’의 앨범을 들었는데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기대에 못믿치는 제주의 풍경이 보컬 ‘조휴일’의 음색과 잘 맞아떨어진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까지 도착해야 한다. 겨울이니 5시30분이면 어두워진다. 우리는 처음 제주도에 도착한 것이 기분이 좋아 시속 삼십키로 가까이로 달려가다 점점 지쳐 이십키로를 유지하자고 의논을 나눴다. 그렇게 15Km 가량을 열심히 달리다 보니 도로변에 게스트하우스가 보인다. 주변 풍경도 슬슬 함덕서우봉해변을 지나면서 내가 상상하던 제주도다운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병훈이가 말했다. 아. 숙소 예약만 안했어도 저기서 편히 쉬는 건데 라고 말이다. 나도 동감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린 달려야만 했다.

한 20Km타니 엉덩이가 마비가 온다. 나는 그동안 안장을 대충 골라 앉아도 웬만하면 맞는 그런 축복받은 엉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간 스트라이다로 50Km 넘는 거리를 타보지 않아서 몰랐다. 엉덩이가 거의 마비가 올 지경으로 아팠다. (이 아픔은 어떤 말로도 설명 할 수가 없다.) 내 스트라이다에 장착된 안장은 fizik tundra(피직 툰드라)로 1년을 잘 타고 다닌 안장인데 말이다. 샵에서 실장으로 있을 때 손님들이 내게 엉덩이가 아프다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고 물을 때 그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비로소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오죽하면 샵에 와서 묻고 안장을 바꿀까 고민을 하게 됐을까 이해가 됐다. 



▲ 힘들거나 배고프면 우리는 준비해간 파워 젤을 단물처럼 쪽쪽 빨아댔다.


▲ 첫날부터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여행 기분도 나지 않고 엉덩이가 아파 힘들었다.


우리 둘은 입에 18 숫자를 궁시렁거리며 열심히 달렸다. 밤이 되고 있다. 야간 라이딩은 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내가 전조등은 가지고 와서 다행이다. 거리에 가로등이라곤 하나도 없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그 주위로 많은 건물들의 불빛이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렇게 오직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싶단 신념하나로 달리다 보니 성산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정확히 6시22분에 도착. 앞 주차장도 횡하고 건물 안에 사람도 거의 없는 듯하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반겨주신다.

나는 무언가 허탈한 나머지 첫날 숙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스트라이드를 접어서 들어갔다.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그물‘이란다. 그물에 걸려서 죽다 살아나서 그물이란다. 녀석 참 활발한 게 빨빨거리며 게스트하우스 로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조용한 숙소에 미소를 샘솟게 해주었다. 스트라이다를 복도에 주차하고 도미토리로 들어가서 각자 누울 침대를 잡고는 짐을 풀었다.

아무래도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하다보니 여행 출발 전 나는 디지털 기기 충전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콘센트는 침대보다 분명히 개수가 적을 텐데 내가 가지고간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 GPS는 어떻게 충전을 할까? 라는 고민 말이다. 그것을 나는 멀티 탭으로 해결했다. 플러그에 꽂자마다 4구로 갈라지는 작은 멀티 탭 말이다. 그것으로 나는 충전 스트레스를 해결했고 같이 여행한 병훈이 녀석도 참 그거 잘 들고 왔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그나마 겨울이 비수기라 여행자가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일반적인 여행일 때 디지털 장비를 많이 가지고 가고 도미토리에 묶는다면 이러한 멀티 탭을 하나 가지고 가시길 크기도 작고 부담도 없다.


 

▲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6시30분경이다. 여름 이였으면 아직도 어둡지 않을 텐데 겨울이니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다. 제주도는 이렇게 저녁이 되면 대부분 일찍 가게들이 문을 닫고 모두들 불을 끈다고 했다.

맑은 튀김옷에 살코기가 부드럽던 닭과 한라산 소주
짐을 풀고 나오니 시간이 7시가 넘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맛있는 밥집 좀 추천해달라니 옆에 식당 고등어조림이 괜찮을 거라고 하신다. 별로 안 땡긴다. 스마트폰 어플로 맛집 주변 검색을 해봤지만 없다.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여기를 갈까? 왠지 관광지라서 비싸 보여 망설이며 돌아다니다 병훈이는 네네치킨 이야기를 꺼낸다. 그놈은 울산에 돌아갈 때 까지 농담 삼아 네네치킨을 입에 올렸다. 어디선가 닭 냄새가 난다. 어어, 냄새를 쫓아 가보니 닭집이 있다. 그래. 무턱대고 아무데나 들어가 바가지 쓸빠에 닭집이 안전하다 싶어 그리로 갔다.

내 인생의 첫 제주의 저녁은 닭이였다. 후라이드와 양념 반반으로 시켜 생전 처음 보는 ‘한라산’소주와 함께 먹었다. 치맥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제주도 특산물(?) 한라산을 먹어보고 싶어서다. 병훈이는 떠날 때까지 한라산을 놓지 않았다. 한라산은 탄산이 들어 있어. 일반 소주와는 목 넘김에서 청량감이 있고 많이 마셔도 육지의 소주보다 뒤끝이 덜한 것 같았다.

제주의 닭은 뭘 먹고 자랐는지 육질이 매우 부드러웠다. 거기다 우리가 저녁 첫 손님 이였기에 깨끗한 기름에 닭을 튀겨서 그런지 튀김옷도 맑고 바삭바삭했다. 우리는 오늘 먹거리는 실패가 하나도 없다며 기뻐했다. 닭을 먹고 소주를 마시니 피곤해진다. 그렇게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우곤 인근 마트에서 맥주 두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여담이지만 본래 성산게스트하우스는 바비큐 파티를 한다. 그러나 겨울엔 비수기라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바비큐파티를 하지도 않았고 아침에 모여서 성산일출봉에 향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몇몇 숙소에 묵는 이들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 소주 한라산은 여행 중 하루 빼고 거의 매일 마셔댔다. 도로에서 먹은 먼지를 알콜로 소독하고 싶었나 보다.


방에 올라가 샤워를 하고 로비로 내려오니 많은 사람들이 있다. 도미토리에서 봤던 룸메이트도 로비에 홀로 앉아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 아닌가! 나름 여행 경험이 있는 병훈이는 그에게 말을 붙였다. 액면가는 형이나 또래인줄 알았는데 26세로 동생이었다. 이번에 인턴을 거쳐 사원이 되었는데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닌다며 명함을 주었다. 머리도 식히고 앞으로 어떻게 회사 생활을 잘할 것인가 생각도 할 겸 제주에 왔단다.

그렇게 자리를 합석해 캔 맥주를 마시며 자기소개를 했고 그 친구는 다음날 어디를 여행할지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메모를 하고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우리에게 어디를 가봤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오늘 도착해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옆에 여자2분이 또 캔 맥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분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며 병훈이가 말했다. 그렇게 대화가 섞이게 됐다.

한참을 나와 병훈이 그 친구 셋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씩 한 테이플 건너 여자 분들과 여행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가 맥주 더 하실래요? 라고 말을 꺼낸다. 술 좋아하는 병훈이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인근 마트를 가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와서는 옆 테이블의 여성분들과 합석을 했다.

테이블이 있으면 게스트들을 위해 컴퓨터가 두 대 마련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컴퓨터를 하던 여자 분도 함께 합석을 해 자연스럽게 3:3의 모두가 원하는 최적의 밸런스가 됐다. 다들 비슷한 연배인지라 자연스럽게 대화는 흘러갔고 여행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로비 불 끄고 취침해야 하는 시간 11시가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주인장님이 조용조용 이야기 한다며 시간을 더 주셔서 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울산 돌아 갈 때 까지 이런 취침 시간에 얽매이거나 음주시간을 신경 써야 했다. 어쩔 수가 없지만 게스트하우스들 사정을 들어보면 원래는 이런 규칙이 없었으나 음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 생긴 규칙들이라고 한다.



▲ 첫날 술자리서 처음 만난 사람들의 어색함을 순수한 애교로서 풀어줬던 ‘그물’이 그녀석이 뒹굴뒹굴 하는 바람에 성산게스트하우스 바닥이 깨끗했나보다.



▲ 그물에 걸려서 죽다 살아난 아기 고양이 ‘그물’이는 성산게스트하우스의 마스코트가 됐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구조했다고) 처음엔 피부병도 심하고 잘 걷지도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2시간 밖에 잠을 못자 밤새 가득찬 근심걱정
같이 이야기한 여자분들 이야기를 해보자면 컴퓨터를 하다 합석한 분은 부산 출신이고 미술 하는 분이란다. 제주도에 여행 오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2개월이나 여기서 있게 됐다고 걸어 다니며 여행을 한다고 한다. 2개월이나 있을 수 있는 배경은 성산게스트하우스에 일을 도와주며 숙박을 해결한다고. 그녀가 우리와 함께 한 저녁이 제주에서 마지막 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기 고양이 ‘그물’이와 든 정을 아쉬워했다.

나머지 두 분은 친구인데 서울에서 왔다. 한분은 설계를 하고 한분은 화학쪽, 나랑 병훈이가 자전거 일을 한다니 자전거의 대한 질문을 많이도 하셨다. 나는 여행초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말을 한번 하면 담을 수가 없으니까 말을 아꼇던것도 같고 몹시 피곤했다. 두분 다 우리보다 누나 같았는데 (그녀들을 일부러 나이 밝히길 꺼려했다.) 두분중 한분이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괜찮았는데 어차피 여행지에서 로맨스라 꿈깨자 하고 단념한지 오래다. 거기다 그녀들도 여행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이처럼 성산 일출봉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손님들은 대부분 여행의 끝을 달리는 분이 많았다.

아무래도 성판악을 통한 한라산 등반코스를 마지막으로 염두에 두고 성산일출봉 관광겸 겸사겸사 이곳에서 묵는 것 같았다. 여행기가 계속해서 이어지면 한라산 이야기도 나오지만 성판악 코스는 정말 지루하다. 여건과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관음사 등반 코스를 강추한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12시쯤 되었나? 주인장 아저씨가 이제 그만 자야할 시간이라며 눈치를 주신다.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향해 잠이 들었다. 잠깐, 다른 분들은 잠이 들었을지 몰라도 나는 약 2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꼬박 밤을 샜다. 병훈이 녀석이 코를 자꾸 구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한 거다. 녀석을 때려서 깨울 수도 없고,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는 가운데 내일 코스가 가장 거리가 긴데 X됐다. 라면서 근심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4일 스트라이다 제주일주 첫날 [자세한 지도] : 풍경이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동쪽으로 향할수록 서서히 풍경이 좋아졌다. 세기식당의 순대국밥은 끝내준다. 성산게스트하우스는 성산일출봉에서 가장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이므로 아침에 일어나 일출봉의 일출을 보려 한다면 무난한 선택이 될 것이다. (성산게스트하우스 : 도미토리 1인 1만5천원, 조식 제공,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224-2, 홈페이지)

한국에서 자전거 매장 실장 그리고 월간지 팀장을 엮임 후, 70여년 역사의 캐나다 Ridley's Cycle에서 Senior Service Technician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경험을 녹인 자전거 복합문화공간 <#라이드위드유>를 고향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업사이클을 테마로 한 카페이면서 스캇, 캐논데일, 메리다, 콜나고 그리고 브롬톤, 턴, 버디, 스트라이다, 커넥티드 전기자전거 등을 전개하는 전문점이기도 합니다.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합니다. *찾아가기 | 연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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