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사몽, 정신력으로 버티다
첫날 공항에 내려 점심밥을 먹고 출발한 시간이 오후 2시 정도였다. 해가지기 전에 도착한다고 열심히 탔더니 삭신이 쑤시고 엉덩이가 마비가 올 정도로 안장이 안 맞아서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자전거를 타기 싫었던 적이 있나 싶다. 게다가 병훈이 녀석의 코골이로 잠도 2시간 밖에 못자 컨디션이 엉망이다.
오늘은 이번 제주 자전거 여행 일정중 가장 긴 거리(약 80Km)를 타야 한다. 엉덩이 아픔은 어쩌고 몸 상태도 안 좋은데 걱정이 한 가득이다. 어찌됐든, 유네스코지정 세계유산인 성산일출봉을 보기 위해 나설 생각이었으나 밤을 거의 꼬박 샜고 병훈이 녀석도 그다지 갈 생각이 없는 거 같아. "그래. 일출 그까이거 오늘만 날인가!" 싶어 다시 자리에 누웠다.
함께 묵고 있던 룸메이트 몇몇은 벌써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거도 어째 모양새가 안 난다. 병훈이를 깨워 가자고 설득했다. 그러곤 우리는 점퍼를 껴입고 씻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섰다. 나가보니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다. 성산게스트하우스는 일출봉에서 매우 가까워 한 5분만 걸어가면 일출봉 입구다. 일출봉을 향하여 걸어가다 보니 이미 한참을 올라간 이들도 멀리 보이고 뒤에는 다른 숙소에서 묵은 이들이 일출봉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게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제주도 바다위에서는 서서히 시작되는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봉긋이 솟아있는 봉우리를 보며 병훈이는 “여기서 일출 보면 되겠네”라며 일출봉 인근 바다서 보면 된단다. 나는 이러면 의미가 없고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 후회한다며 병훈이를 대리고 잠이 깨지 않은 눈을 부비며 한걸음 내딛는다.
▲ 일출봉은 오르는 계단도 많고 경사가 심해 힘들지만 계단을 오르며 볼 수 있는 기괴하게 생긴 암석과 주변 경관이 수려해 그렇게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다행이 우리들이 제주를 방문했을 땐 세계7대자연견광에 지정됐다고 대표적인 관광지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일출봉은 11년12월31일까지 (덕분에 관광지 들어간다고 돈쓴 일은 없었다. 몇 곳 다니지도 않았지만) “아싸~ 또 돈 굳었다~”며 기분이 좋아진다. 돌계단을 오르다 보니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우리 둘은 한라산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자며 헥~헥~ 거리며 일출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한라산에 가보고 느꼈지만 일출봉은 아무거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거도……. 하루 꼬박 써서 오르내리는 한라산과 아침에 시간 잠깐 내서 오르내리는 일출봉과 어떻게 그 힘듦이 비교가 되겠는가? (높이 182m의 일출봉과 1950m의 한라산의 비교라니 그러나 오를 당시만 해도 그 급격한 경사에 진심 예행연습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오르다보니 기괴한 돌들과 멀리 보이는 제주도의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경치가 참 좋다. 첫날 숙소로 이쪽으로 지정한 것과 가봐야 할 곳 중에 성산일출봉을 넣은 게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다 다다랐을 즈음 어제 술자리를 함께한 26세의 룸메이트가 이미 내려오고 있다. 해가 다 떴다고 한다. 우리는 상관없다고 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만 서둘렀다면 해 뜨는 장면도 같이 봤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정상에 올랐다. 올라보니 아직 일출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미 태양이 뜬 상태긴 했지만 아침 엄연한 이것은 아침 일출모습이다. 기분이 상쾌하다.
▲ 정상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감상 할 수 있다. 멀리 우도와 섭지코지 한라산이 보인다. (동영상)
정상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장관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많다. 제주도 땅을 중국인들이 많이 샀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가부다. 기념사진 찍는다고 정신이 없다. 나는 성산일출봉 특유의 그 판판한 넓디넓은 분화구를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줄 알았지만 눈으로만 볼 수 있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정상서 이리저리 시야를 돌려보니 멀리 섭지코지도 보인다. 섭지코지는 이병헌이 출현했던 SBS 인기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다. 전날 게스트하우스서 함께 얘기했던 여성분들에 말로는 "한번은 가볼만하다."였고, 병훈이 말로도 "한번 이상은 갈 필요 없다." 길래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원래 유네스코급 관광지가 아니라면 "가지 말자"가 이번 여행의 컨셉이기에 섭지코지는 다음 제주에 올 기회를 기약하며 안녕~
▲ 일출봉은 그 주변도 매우 아름답다. (동영상)
내려다보는 주변 경관은 가슴이 탁 트인다. 특유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와 마을 그리고 멀리 보이는 한라산까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오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월1일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좁디좁은 정상에서 고생 할까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른 새벽부터 나오지 않은 이들은 꼭대기에서 일출 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성산일출봉은 그 일대도 매우 아름답다. 바다위로 떠오르는 해를 본다고 올라가기에 정신이 없어 못가 봤던 곳들을 내려와서 거닌다. 멀리 보이는 우도와 그 사이를 다니는 관광객을 태운 하얀 배가 바다를 가르며 평화롭게 항해하고 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모든 것이 환상적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에도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붉은색 글자의 배너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좀 더 세련되게 주변견광과 어울리게 디자인 할 수 없었을까?
▲ 성산게스트하우스에서는 아침 식사로 토스트와 삶은 달걀, 주스를 제공한다.
편하게 차를 타고 관광 할 수 있었던 기회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보지 못했던 몇몇 이들이 나와 성산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있다. 토스트와 삶은 달걀 그리고 주스를 제공하는데 1만5천원의 숙박료에는 충분히 양질의 조식이다. 토스트와 주스는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병훈이와 나는 먼 길을 떠나야 하므로 과하다 싶을 만큼 넉넉히 먹어둔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보니 일출봉에서 만났던 26세의 룸메이트가 잠자고 있다. 우리도 잠시 눈을 붙인다. 30분정도 쉬었다가 일어났다. 병훈이가 씻으러 갈 때 나는 26세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오늘 우리가 가는 산방산 쪽의 방향과 일치하는 곳으로 향한다고 했다. 나는 잘됐다 싶어 그에게 렌터카에 우리들도 태워주면 안되겠냐고 제안을 했다.
어차피 가는 방향이 일치하므로 최소한 3/2지점까지는 차로 편하고 널널하게 관광도 하면서 다닐 수 있을게다. 차를 태워주었으니 점심은 우리가 산다고 했다. 그도 혼자서 여행하면 심심하니 잘됐다고 그러자고 했다. 병훈이 녀석도 씻고 나와선 내 얘기를 듣더니 싫지 않는 기색이다. 그러나 한 5분이 흐르곤 녀석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나 혼자 가란다.
생각보다 심했던 심리적 압박과 말다툼
나는 계속 병훈이를 설득했지만 STRIDA로 제주도를 일주하러 왔으니 자전거를 타야겠다며 고집이다. 병훈이의 의견도 맞다. 하지만 나는 처음 온 제주도에 보고 싶은 거도 많았고 안장이 안 맞아 10키로 정도만 타면 엉덩이가 마비가 올 지경이었으며 잠도 2시간 밖에 못 잤기에 컨디션이 꽝이라 정말로 자전거를 타기가 싫었다.
그렇게 병훈이와 나는 여행 초반부터 심하게 다투었다. 26세의 서울서 온 룸메이트는 어떻게 할 건지 결정을 짓고 이야기를 해달라며 먼저 나가있겠단다. 그러라고 하고 우리는 짐을 싸며 의견을 조율했다. 나는 병훈이가 답답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고 관광도 할 수 있는데 왜 마다하냐고 했다. 녀석은 자전거 타러 왔으면 자전거를 타야한다며 산방산탄산온천게스트하우스서 만나자고 하곤 나 혼자 차타고 가란다. 결국엔 나는 함께 울산에서 여행을 떠나왔으니 알았다고 나도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로비로 내려와 보니 룸메이트의 렌터카 아반떼MD가 시동을 켜고 기다리고 있다. 때 마침 성산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차가 방전이 되는 바람에 점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병훈이와 나는 채비를 갖추면서도 신경전을 이어나갔다. 녀석은 계속 차타고 가란다. 나는 싫다고 했다. 멀리서 차는 점프를 하고 있고 그렇게 룸메이트에게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곤 작별인사를 했다.
썩 기분이 좋지 않게 우리는 먼 길을 떠난다. 전날 컴퓨터로 지도를 다시 한 번 찍어보면서 빡시다. X됐다. 라고 서로 말했던 그 길을.. 사실 제주도 섬을 도는 것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많은 이들이 쉽게 자전거를 타고 돌기에 구력이 있는 우리들은 우습게 여겼지만 겨울이라는 날씨와 짧아진 해 덕분에 심리적인 압박이 심해. 생각보다 이 일이 힘들 단걸 깨달았다.
다행이도 날씨가 전날과 다르게 최고로 좋다. 봄 날씨다. 10키로 가량 자전거를 타다보니 또 엉덩이가 아파온다. 좀 더 가다가 교차로 신호를 받고 섰는데 26세 룸메이트의 렌터카가 보인다. 그도 우리를 보곤 미소를 짓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신호를 받고 떠나간다. 섭지코지를 관광하고 가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아~ 저거 탔으면 편하게 관광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 우리는 제주일주를 하면서 버스정류장을 쉼터로 애용했다. 의자가 있고 바람을 막아주어서다.
참을 수 없는 엉덩이 아픔, 서로 자전거를 바꿔타다.
15키로 정도 타고는 엉덩이가 다시 심하게 아파 결국 병훈이에게 네 자전거와 바꿔서 타자고 제안을 했다. 병훈이의 스트라이다는 안장이 영국산 명품 수제 안장인 브룩스(BROOKS)로 나의 자전거에 달린 이태리제 안장 피직 툰드라(fizik tundura) 보다는 편할 것 같았다. 날씨가 너무나 좋아. 여행 기분이 난 우리는 이내 마음이 풀렸고 병훈이도 알았다며 자전거를 바꿔타잔다. 그날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 할 때까지 자전거를 바꿔 탔다. 안장을 바꾸니 훨씬 낫다. 이대로라면 오늘 하루 제주 일주 남은 거리 160킬로를 단숨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성산일출봉부터 서귀포까지 코스는 매우 훌륭했다. 경치도 좋고 감귤농장도 많이 보이며 맑은 제주도의 바다도 시야에서 자주 나타났다. 도로 상태도 좋았다. 자전거 타기에 오늘은 더 없이 완벽하다.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라이딩을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병훈이 녀석이 시간이 오후 1시가 됐고 아직 서귀포시를 가려면 조금 더 가야 하니 근처서 밥을 먹자고 한다. 때마침 우리는 갈비타운이란 곳을 지나와서 그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 스트라이다는 일반적인 자전거들과 달리 물통을 꽂을 수 있는 홀이 없다. 때문에 뒤 짐받이에 물통과 옷가지를 끈으로 매 다녔는데 물을 먹을 때면 물통을 꺼내기 귀찮아. 자전거를 뒤로 숙여 물을 먹기도 했다.
▲ 둘째 날 서귀포 가는 길의 갈비센터서 먹은 ‘올레탕’은 갈비탕과 비슷하다. 가격은 8천원 맛은 보통
더 없이 좋았던 날씨와 훌륭한 코스에 비로소 난 여행기분
스트라이다를 접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살피니 ‘올레탕‘이라는 특이한 메뉴가 보인다. 사장님 ’올레탕‘이 뭡니까? 라고 여쭈니 갈비탕과 비슷한데 좋은 것들을 넣고 우려낸 국물이 특징인 탕이라고 한다. 가격도 8천원으로 만만해 (메뉴중 가장 싼 축에 속했다.) 우리는 올레탕을 시켰다. 맛은 뭐 보통정도였으나 사장님도 친절하고 반찬이 많이 나와 좋았다. 제주도 음식은 내 입맛에 맞는 거 같다. 사장님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울산에서 왔다고 하니 나도 울산을 안다며 방어진에서 예전에 일을 했었다고 하신다. 떠날 땐 사장님께서 병훈이에게 감귤도 두 개를 주셔서 여행 중 맛있게 먹었다. 감사했다. 비로소 자전거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
그렇게 20키로 가까이를 더 가니 서귀포시가 다가오고 있고 목적지인 정방폭포를 향해 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눈 쌓인 한라산이 더 가까이 보인다. 최종 보스 한라산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정방폭포를 향하는 곳에는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경치가 매우 훌륭했다. 병훈이는 시야에서 나타난 KAL 호텔을 보며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올 여름에 묵었다며 자랑을 하면서 회상했다. 하지만 녀석은 조금 마음이 아픈 듯 했다. 문득, 요즘은 슬픈 노래가 좋다는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 정방폭포 인근에는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그곳을 자전거로 지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병훈이가 자기가 가본 관광지 중에 제주도에서 가장 좋았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던 정방폭포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둬야 하는데 둘 자리가 없다. 녀석이 근처 자전거 주차장에 내버려두고 가면 된다고 한다.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병훈이는 내가 보기에 한번 크게 절도를 당해봐야 정신 차릴 놈이다. 나는 스트라이다를 우리가 울산에서 가지고 온 이유가 뭐냐며 접히는 것을 활용하자고 잘 말해서 맡겨놓으면 된다 했다.
그렇게 우리는 근처 인포메이션 센터에 말씀을 드려 스트라이다를 맡겼다. 처음엔 약간 싫은 기색도 있으셨지만 정방폭포를 관광하고 자전거를 찾으러 갔을 땐 자전거가 얼마고 어디서 만들었으며 참 유용한 거 같다고 칭찬을 하셨다. 역시 스트라이다는 이런 게 참 좋다. 밖에 있던 아저씨들도 큰 관심을 보이신다. 뻔한 레퍼토리와 함께 접고 펴는 모습을 보며 우와~ 이거 체인이 아니고 타이밍 벨트가 있네~ 얼만데요? 까지..
▲ 정방폭포 포토 존에서 찍은 단 하나의 사진을 집에서 확인해 보니 눈을 감고 있다. 이날 찍은 대부분의 사진에서 눈을 감고 있는 사태가 나중에 다시 가서 찍어야 겠다.
기대에 못 미치던 민물이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
정방폭포는 민물이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폭포다. 아침에 들렀던 성산일출봉과 다르게 이곳에는 중국인들은 찾아볼 수 없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일본인 관광객이 참 많다. 입장료는 역시나 세계7대자연견광에 선정됐다며 무료다. 입구부터 계단의 압박이 있다. 자전거 타고 온다고 힘든데 또 걸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싫었지만 고진감래를 생각하며 정방폭포를 향해 내려간다.
돌계단을 내려가니 멀리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바다 기괴하게 깎여진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병훈이는 이 풍경이 정말 멋있지 않냐 며 이 관경이 너무나 좋다고 칭찬을 하고 있다. 성산일출봉에 감동을 받은 나는 기대 했던 것보다는 미치지 못하는 풍경에 담담해 했다. 그러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과 어찌 비교가 가능하겠냐며 말했다. 물론, 정방폭포도 매우 아름다웠다.
돌이 많은 해안에서는 이곳이 한국임을 다시금 되새겨 주듯 해녀 분들이 갓 잡은 해산물을 즉석에서 팔고 있다. 저거 저거 입에서 사르르르 녹는데.. 입맛을 다시지만 최대한 헝그리하게 컨셉을 잡은 우리는 참는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정방폭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올라오니 병훈이 녀석이 풍경이 훌륭하다고 했던 포인트가 다시 나온다. 그곳의 정방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니 눈을 감고 있다. 젠장맞을…….
▲ 언덕길을 지나 서귀포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는 이 내리막 길은 넓고 시야가 탁 트여 잊을 수 없는 코스다.
아름답던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의 마음속 다짐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음 관광지인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서귀포월드컵경기장을 향해 힘차게 페달링을 했다. 서귀포시는 제주시보다 훨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아마도 집값도 제주시보다 더 비쌀 것 같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도로도 새로 내고 신시가지도 형성이 됐으리라 지나치는 서귀포시를 뒤로하고 언덕길과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오니 저 멀리 서귀포월드컵경기장이 보인다. 멀리 바다와 어우러진 특유의 경기장 지붕이 참 아름답다.
서귀포월드컵경기장은 1132 일주도로변에 위치해 굳이 깊이 찾아 들어가지 않아도 참 좋았다. 나는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식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그래도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 비하면 스포츠공원으로서의 전체적인 규모는 작았다. 축구장만 덩그러니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장 앞에 경기장 건립을 위해 일정 금액을 기부한 이들의 명단이 비석으로 새겨있다. 나도 역사에 깊이 남을만한 어떤 것이 건설될 때 이 같은 기회가 생기면 기금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산방산으로 향해야 한다. 슬슬 좋던 날씨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지 노을이 지고 있다. 우리는 서둘러 페달링을 하지만 아직도 많은 거리가 남았다. 산방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어찌나 언덕도 많던지 나는 병훈에게 “병훈아 이 언덕만 넘으면 쉬자” 했다가 또 나타나는 언덕에 “요고만 넘고 쉬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유의 3단 고음과 견줄 수 있는 3단 언덕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언덕 오르기에 우리들은 열중했다. 3단 언덕을 넘고 조금 더 가면 또 3단짜리 언덕이 나타나고 참..
그렇게 몇 개의 오르막을 올랐는지 모른다. 근처 편의점이 나타나서 쉬었다가 가기로 한다. 점심을 먹었던 갈비타운 사장님께서 주신 감귤과 음료를 사서 먹는다. 우리와 같은 자전거 여행자 두 분이 이곳에서 쉬고 있다. MTB 하드 테일을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 이들 이였는데 자전거 상태를 보아하니 한 대의 자전거 앞바퀴가 펑크가 나있다. 병훈이에게 “야 가서 빵꾸나 때워줄까?“라고 말했지만 먼 거리를 온다고 지친 우리는 이내 귀찮다며 모른 체했다. 그들은 그렇게 자전거를 끌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70Km의 고된 페달질 끝내 나타난 산방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다. 멀리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산 하나가 보인다. 직감적으로 ‘산방산’임을 알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산방산을 보면서 다왔다는 생각으로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인다. 그런데 차 한 대가 빵~거리면서 스는 게 아닌가? 성산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묵었던 26세의 룸메이트다. 우리는 그가 차에서 내리기 전, "저놈 저거 혹시 우리가 숙소에서 묵는 거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알고 보니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며 사람도 많은곳을 알아냈다고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사람 많은 곳을 첫날부터 그리워했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여행지에서 생기는 새로운 인연과 로맨스라고나 할까. 병훈이에게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이나 남겨“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해질녘이라 광량이 부족해 흔들렸다. 이 자리를 빌려 26세 친구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그렇게 남은 여행을 잘하라며 서로를 위해 응원하곤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조금 더 가니 산방산탄산온천이 나왔다. 제법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시설 구석에 있었다. 예약 이름을 대고 체크인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와 같은 자전거 여행자들도 있다. 제법 사람이 많은 거 같다. 사실 나는 사람 많은 것이 싫었다. 전날 잠도 잘 못 잤고 도미토리에 사람이 많으면 또 잠을 잘 못잘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행이 그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코고는 사람이 없어 여행 중 가장 잠을 잘 잤던 날이 이날이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가볼만 한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는 당신이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정말 꼭 묵어야 할 강력추천 숙소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2만원에 지친 몸을 탄산온천수에 물을 푹 담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다. 게다가 시설도 제법 깔끔하다. 물론, 이곳은 우리가 묵었던 숙소중 가장 손님이 돈을 잘 쓸 수밖에 없도록 철저히 상업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탄산온천수에 피로를 푸는 것은 큰 메리트가 있다.
저녁에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은 1인당 1만5천원이다. 전날 성산게스트하우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지 못했고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면서 신청을 했다. 바비큐 파티를 하기 전에 짐을 정리하고 피로를 풀기위해 하이라이트인 탄산온천으로 향했다. 노천을 즐기기 위해선 5천원의 이용요금이 더 부가가 된다. 지나가면서 노천 하는 사람들을 보니 부러웠다. 하지만 5천원을 아끼기 위해 눈을 질끈 감으며 지나친다.
▲ 묵었던 숙소중 규모가 가장 큰 산방산게스트하우스는 도미토리는 몇 개의 방이 이어져 잠을 잘 때 상당히 불편 할 것 같았지만 이외로 쾌적해 단잠을 잤다.
일반적으로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에 포함되어 있는 온천은 대중목욕탕과 같다. 물만 탄산온천수를 쓰는 것에 차이가 있다. 실제 차가운 물에 들어가 보면 물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스트라이다를 타고 70Km 이상 장거리 라이딩을 하루 종일 했기에 몹시 피곤했던 우리는 탕에 몸을 푸욱 담그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저녁 7시30분까지 바비큐 파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참석해야 하므로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향했다. 밖을 보니 불에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직접 밖에서 불에다가 사람들이 준비된 고기로 구워 먹는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고 시설 직원들이 구워서 가져다주는 방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라 춥다고 밖에 마련된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에서 파티를 하지 않는 것도 무척이나 아쉬웠다.
바비큐 파티에는 식판에 저녁거리를 배식 받고 고기가 추가 되는 형식이다. 술을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이곳은 철저히 상업적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놨다. 이것을 안 하면 별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파티를 신청한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대충 둘러보니 15명 남짓의 인원이다. 나중에 가서 알게 됐지만 이게 숙소에 묵는 전체 인원이 아니고 파티를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
▲ 바비큐 파티를 참석하면 큰 접시에 배식을 받을 수 있는데 저녁거리는 그렇다고 해도, 고기는 내가 살면서 먹은 고기중 가장 맛이 없었다. 그래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바베큐 파티
저녁을 먹으며 구워져 나온 고기를 먹어봤다. 처음에는 좀 먹을 만하지만 정말 고기가 맛이 없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먹은 가장 맛이 없는 고기였다. 이곳에서 하는 바비큐 파티는 비추다. 정확히 파티보다는 고기가 별로다. 물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친해지고 싶다면 참석하는 것이 맞다. 병훈이와 나도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과 여행이야기를 하고 간단한 술도 마시며 기분을 냈기 때문이다.
앞에 앉은 사람은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서른네살이다. 부천 출신의 그는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다가 자기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 남을 가끔씩 흉보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 밖으로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겉으론 기분 좋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을 듯 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의 외모 가지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는데. 처음 만난 사람의 겉모습을 가지고 입에 오르내리는가 하면, 자기의 대중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생각을 너무 뚜렷하게 밝혀 대중들의 쓴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소등 시간이 되어 우리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침대로 향했다. 오늘 하루는 계절이 봄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날씨였다. 그러나 아무리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도도 겨울인 가부다. 밤바람은 차다. 밖에서 병훈이와 나는 잠깐 소싯적엔 경륜준비를 했었고 각종 스포츠를 한 직업군인 출신의 25세 정도의 친구와 자전거 이야기를 나눴다.
투어리스트의 오픈 마인드, 탄산온천수의 효과
제주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여행중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남녀 성별로 나타는 특징이 있다면 남자들은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오고 여자들은 대부분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적어도 내가 본 사람들은 그랬다. 그리고 혼자 오더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여행 경로와 마음만 맞는다면 그날부터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필요에 따라 팀플레이와 솔로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 여행을 하는 이들은 마음이 어느 정도는 열려 있으니까 그것이 좋았다.
어느덧 취침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우리들은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다.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는 내가 본 게스트하우스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도미토리는 방이 몇 개나 연결되어 있어 성수기에 오면 잠을 자기가 쉽지 않을 분위기 였다. 그러나 운이 좋게 전날 2시간 밖에 못자 몹시 피곤하기도 했고, 넓으나 무언가 아늑한 숙소 분위기 가장 힘든 일정이 끝이 났다는 가벼운 마음에 푹 잘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그 누구도 코를 골지 않았다는 것. 아마 탄산온천수의 효과가 코고는 사람도 그날만은 코를 골지 않게 하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해본다.
▲ 2011년 12월 5일 스트라이다 제주일주 둘째 날 [자세한 지도] : 끝내주던 날씨와 경치는 자전거 탈 맛이 나게 했다. 그러나 52km부터 시작되기 시작한 아이유의 3단 고음에 버금한 3단 업힐 퍼레이드는 우리를 힘들게 했다. 갈비타운의 올레탕은 그저 그렇다.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는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때 가장 힘든 일정과 함께 숙소로 지정한다면 탄산온천수에 몸을 푸욱 담그는 행복함을 만끽할 것이다.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 : 탄산온천 2회 이용 포함 도미토리 1인 2만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981번지 제2주차장,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