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자전거 여행, 마지막 시간과의 싸움
오늘은 제주도를 떠나는 날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 마지막 날도 쫓기듯 그렇게 짐을 꾸리고 있다. 겨울 자전거 여행은 짧은 해와 차가운 공기덕에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다. 떠날 때의 비행기마저도 표값을 아끼기 위해 얼리버드로 예약했다. 제주도에 좀 더 있고 싶은 생각 지금 현재로서는 없다. 이미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는데 지나온 길을 조금 되짚어 공항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 몹시 싫다. 좀 더 깊게는 자전걸 타기가 싫다는 게 옳다.
떠날 채비를 갖추곤 모든 짐을 남김없이 가지고 1층으로 내려 온다. 내려오자마자 개인 사물함 열쇠도 다시 반납한다. 조금 늦게 일어난 Xing Jian에게는 1층에 미리 내려와 아침을 준비 할 테니 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어제와 같이 계란을 깨 프라이를 하고 빵을 토스터기에 넣어 굽고 주스를 따른 후 테이블 세팅을 한다.
▲ 한라산에서 Xing Jian과 병훈이
잠시 후 내려온 Xing Jian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오늘은 이별의 날이라 조금 서먹서먹. 나는 그에게 한라산에서 찍어준 사진을 울산 집에 가서 E-Mail로 전송해준다고 했다. 어제 하산 후 Xing Jian은 곧장 자신의 아이패드로 나의 메일로 병훈이와 나를 찍은 사진들을 전송해줬다. 이틀 밤을 같이 지내고 파란만장한 산행까지 같이 한 동지니 마음이 남다르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그는 한국에서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라 했다. 그렇게 잠시 남자들만의 서먹한 정적이 흐르고 떠나야 할 시 간이 왔다. 서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다. 매번 여행에서 반복되는 아침 이별 시간. 오늘의 작별 또 남다르고 애뜻한 여운이 남는다. 이곳 제주도를 완전히 떠나는 날이라 그럴까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 마지막 날 예하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세찬 바람에 결국 한번 땅에 꽈당 넘어지고 만 내 스트라이다 옆에 병훈이가 좋다고 낄낄 웃는다. "그래! 영광의 상처 하나 쯤은 있어도 괜찮지!"
장갑과 스포츠글라스를 낀다고 예하게스트하우스를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 최종점검을 하는 데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내 스트라이다가 그만 넘어지고 만다. 병훈이 녀석은 낄낄거린다. 핸들바에 장착되어있던 에르곤 그립(Ergon Grip)의 바엔드가 긁혔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을 향해 페달질 한다. 자전거 여행서 70% 확률로 가야 할 길의 반대로 불어오는 맞바람을 또 맞으며 그렇게 꾸역꾸역
그래도 다행인 것이 이 섬에 도착 후 떠나는 오늘 날씨가 가장 춥고 바람도 거세단 것이다. 우리가 떠난 뒤 들려오는 제주도 소식들은 진짜 겨울이 왔고 눈이 내렸단다. 제주국제공항에 다 도착할 즈음 도로에 물이 잘빠지라고 설치된 금속의 홀에 자전거 바퀴가 차례대로 빠졌다. 1.75 굵기를 지닌 슈발베 마라톤 타이어도 빠질 만큼 폭이 넓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핸들이 털려 꼬꾸라지기 딱 좋은 곳이다. 우리는 나중에 로드바이크를 타고 오면 이 포인트를 기억해뒀다 주의하자고 간담을 쓸어내리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 중소 민간항공사로서 자리를 확고히 잡은, 압도적인 이용률을 보여준 '제주에어'
곧장 첫날 사사로운 기싸움을 했던 제주국제공항 수화물 센터로 향한다. 첫날과는 다르게 박스 처리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웠던 담당 직원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신다. 여행 잘했냐고 안부까지 물어봐 주시면서 말이다. 박스 보관증을 보여드리니 사무실 옆 커다란 공간에 보관 중이던 자전거 박스를 되돌려 주신다. 약속대로 테이프와 칼을 받아 직접 자전거를 포장했다. (1부를 봤던 이라면 알겠지만, 작은 실랑이 끝에 울산서 가져간 커다란 자전거 박스 두 개를 장기 보관했음에도 박스 하나 값인 1만5천원의 합의를 봤다. 비결은 1부 참조)
가격이 저렴한 제주에어는 언제나 인기가 많다. 얼리버드임에도 불구하고 만원사례다. 수화물을 붙이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제주도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해외여행객들도 많이 보인다. 병훈이가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사러 간 사이 대기실에서 비행시간이 될 때 까지 기다린다. 그때 제주의 한 관광단체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며 설문지를 내민다. 기꺼이 응했다. 대부분의 응답에 중간정도의 평가를 내렸다. 돌이켜 보면 재미있는 여행였지만 생에 처음 방문한 제주도는 내가 상상했던 그것과는 좀 달랐기에.
▲ 우측 모서리 부를 보면 해변에 각종 오물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1132 제주 일주로변은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중간 중간 차량이 주차 되어 있기도 했고 제주시 주변은 아예 자전거 도로가 없었으며 그 주변엔 트럭 통행량도 많아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위협적이다.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제주도, 관광객들의 비양심
자전거 여행을 한 관광객 시각으로서 썰을 풀자면 동쪽과 남쪽은 자전거를 타기에 좋고 도로 상태도 양호하지만 그 외 일주로는 공사를 하거나 아예 자전거 도로가 없는 구간도 꽤 된다. 물론 제주시 인접 지역 외에는 차량이 별로 없어 크게 상관없지만 아스팔트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여기저기 사업을 벌여놓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예산으로 도로 관리는 뒷전으로 미뤄질 것이다. 대부분의 외지 관광객들이 렌터카를 이용하니 땅을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가는 자전거 여행자들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차량을 타면 대부분 유명 관광지 위주로 관광을 하기에 그 외의 창밖에 비친 제주도는 마냥 아름다워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본 세세한 풍경은 멀리서는 아름답지만 다가가면 쓰레기가 많은 바닷가를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해변에 쓸려온 오물들은 씁쓸함을 자아냈다. 스트레스를 이곳에 놓고 에너지를 충전해 간다면 가져온 오물도 같이 되가져 갔으면 한다. 오물까지도 스트레스는 아니다. 이 아름다운 섬이 스트레스 받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들의 특별함
어느새 김해공항에 도착해 울산으로 향하는 공항 리무진을 탄다. 타이밍이 딱 좋게 배차가 되어 있어 거의 기다리지 않고 비행기서 내리자마자 일사천리로 버스까지 탔다. 한참을 가는데 속이 미식 거린다. 이른 아침 예하게스트하우스서 빵과 치즈를 서두르면서 먹었더니 체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울산 집에 돌아와서 몸살이 나곤 그 날 저녁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그래도 집에 와서 이렇게 된 게 천만 다행이다.
울산에 도착하니 병훈이에게 셋째날 협재 ‘쫄깃쎈타‘에서 만났던 용윤 형님이 보낸 귤 2박스가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보다 감귤이 울산에 먼저 도착한 것이다. 우리들은 살면서 나중에 밥한 끼 하자. 술 한 잔 하자. 연락할게라는 말을 수 없이 한다. 그것이 한국인들의 문화다. 정작 그런 말을 웃으면서 주고받고는 그 약속들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인사치례일 뿐이다.
하지만 용윤 형님은 정말로 귤을 보내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예하에서 만난 싱가포르인 Xing Jian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Facebook으로 서로가 지내는 모습을 확인하며 얼마 전 새해 인사도 나눴다. 그렇게 여행지의 인연들은 특별하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단기간에 추억을 쌓으며 나를 돌아본다. 우리의 자아는 그렇게 한 단계 성장한다.
▲ 이번 여행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 한라산의 Whiteout(화이트아웃)
▲ 최근에서야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와 '자존감'을 형성한 나
Epilogue
내가 계획했던 일정이 조금 늦춰졌을 때 병훈이는 내게 ‘터닝 포인트’라고 한 말이 기억이 난다. 내게 두 달의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당신도 알 듯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고 여행기를 썼으며 무엇보다 관심 없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독서를 하며 자존감이 생기고 통찰력을 길렀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인생관이 보다 자유롭고 도전적이게 관철됐다.
스트라이다 제주일주를 통해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으며,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을 계기로 내 꿈 중 하나인 여행 책을 한권 내 보는 것,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이 블로그 만큼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연습 삼아 썰을 풀게 됐고, 짧았던 6일간의 여행을 봐준 당신이 있기에 작은 꿈은 이루어졌다고 자위한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땐 전혀 이 짧은 여행을 장황하게 펼쳐놓고 연재를 할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좀 더 양질의 사진과 그 날의 기억들을 짧게나마 일기 형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포스팅을 기획하지 않고 다녀와 쓴 글이기에 지나간 시간들을 회고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아련한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제품에 대해 리뷰를 하거나 서평, 칼럼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이번 여행 에세이를 쓰면서 느끼게 됐다. 보다 새로운 글쓰기 재미를 알았다고나 할까?
이제, 다시 바쁘게 뛰면 언제 내가 이처럼 느리게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길게 써볼까? 시간이 흘러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지금처럼 내 삶의 환기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게 만들어준 계기, 남들이 쓴 자전거 여행기를 읽으면서다. 이 글이 당신에게 자전거의 매력과 어서! 여행을 떠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 나의 이십대 마지막 추억을 아로새기며, 내 앞에 수 없이 펼쳐질 또 다른 ‘삶’ 이란 여행을 기꺼이 즐기겠다고 다짐해 본다.
▲ 2011년 12월 9일 스트라이다 제주일주 마지막 날 [자세한 지도] : 자전거로 완주는 이미 12월 5일 3박4일만에 완료 했다. 해가 길 때 잘 달리는 로드바이크로는 하루 110킬로씩 잡고 이틀만 잡아도 완주가 가능한 제주도다. 가장 아름다웠던 구간은 역시 성산일출봉에서 산방산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날 코스였다. 우리처럼 다소 길게 한다면 이 구간을 중점적으로 관광할 수 있게 코스를 짜보는 것을 권한다. 마지막 숙소 예하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높고 교통이 무척 편리하단 큰 장점이 있다. (예하게스트하우스 : 조식 포함, 도미토리 1인 1만9천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561-17, 064-724-5506, 홈페이지)
▲ 아름다운 제주도, 1132 일주로서 매일 바퀴를 굴려대던 날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