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LIZZOLI, AQUILA DELL’EST 686 (2011)
1969년부터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장인 지오반니 펠리쫄리(Giovanni Pelizzoli, 펠리졸리)가 손수 만든 커스텀 프레임이다. 휠 베이스가 길게 형성되는 등 지오메트리를 자전거 여행에 맞게 구성하였다(투어러, 투어링). 여행용 부품과 액세서리, 물통 케이지를 세 개나 장착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온 손지현 씨를 위해 ‘동방의 독수리(AQUILA DELL’EST)’라는 모델명을 펠리쫄리 씨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딸기(Strawberry)처럼 붉다 하여 ‘베리(Berry)’라는 애칭이 붙여진 이 여행용 자전거는 무거운 짐을 싣기 위해 튼튼한 앞 짐받이와 뒤 짐받이를 장착하고, 방수재질의 패니어를 더하여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안전하고도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가죽안장과 트레킹 핸들바를 장착해 장시간의 고된 라이딩에서도 피로감을 덜어낼 수 있도록 하였으며, 27단의 구동계와 펑크방지 기능이 있는 올라운드 성향의 타이어를 채용해 다양한 코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손지현 씨는 23세에 결혼하여 25세부터 남편인 이성종 씨를 따라 5년간 총 50개국 4만km를 유랑한 자전거 여행가이자 작가이다. 그녀는 자신의 애마 ‘베리’와 함께 이탈리아에서부터 유라시아를 횡단하여 키르기즈스탄(Kyrgyzstan)의 수도 비슈케크(Bishkek)까지 총 1만5천km를 달렸으며, 현재 국내에 머물러 재충전을 하면서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자전거를 ‘날개’에 비유하며 “세상 속으로 날아갈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을 열어준 존재”라 말했다.
커스텀 프레임의 매력은 무엇일까?
펠리쫄리는 이탈리아의 교황에게 직접 자전거를 만들어줬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뛰어난 프레임 빌더로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이다. 이 같은 장인이 나의 팔과 다리 등 신체 길이에 맞춰 튜빙를 재단하고 가공한 뒤 용접과 마무리 작업까지 손수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특히 국내에는 체구가 작은 여성들이 탈 만한 여행용 자전거가 한 모델 밖에 없어 선택의 폭이 좁다. 반면에 커스텀 프레임은 제작의 첫 단계가 신체치수를 측정하는 것이어서 신체에 따른 프레임 크기 제한이 거의 없다. 또 헤드튜브나 시트튜브, 포크의 각도가 여행에 맞게끔 형성되어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해 피로가 덜하다.
더욱이 시각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색상이나 데칼을 직접 선택 할 수 있고, 러그의 유무, 소재 등 프레임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관여 할 수도 있다. 이 덕분에 사막이나 가파른 산악, 모진 풍파가 몰아치는 세계 각지의 사계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 교통사고도 두 번이나 났었는데, 프레임 얼라이먼트가 틀어지지 않고 멀쩡했을 만큼 단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한대 모여 세상 단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자전거라는 자부심을 배가시켜주지 않나 싶다.
제작기간과 내역이 궁금하다.
보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약 150만원을 들여 프레임 제작에만 세 달이 걸렸다. 프레임 소재로 크로몰리를 택한 것은 부러졌을 때 어디서든 용접하여 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들은 대부분 기존에 타고 있던 산악 자전거에서 이식하여 비용을 산정할 수 없다. 구동계는 스람(SRAM) X-7 등급의 9단 변속기에 시마노 데오레(Shimano Deore) 트리플 크랭크 세트를 채용하여 27단을 이루었다.
아무래도 남성에 비하여 체력이 약한 여성이 무거운 짐을 싣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려면 폭 넓은 기어비가 필요했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9단 산악 자전거 부품들이 가장 보급률이 높아서 여행지에서의 정비도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아르메니아(Armenia)의 고산에서 변속기가 고장 났었는데, 케이블 타이와 볼트 등을 이용하여 응급처치가 가능했던 것도 같은 이치였다.
휠 세트 역시 프레임을 제작할 때 26인치에 맞도록 설계했는데, 700C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도 작아서 바퀴살이 부러질 확률이 적고 부품 조달도 쉬울 것 같아서였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마구라 HS33 유압식 림 브레이크(Magura HS33 Hydraulic Rim Brake)는 터키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내가 사용중이던 시마노 XT 브레이크 세트와 맞교환해 간 흔적이다. 그는 혹독한 시베리아가 있는 러시아로 떠날 계획이어서 유지보수가 힘든 유압식을 대신하여 자가 정비나 부품 조달이 쉬운 기계식 브레이크를 택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여행을 위해서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쉬운 수리와 원활한 부품 조달여부가 관건이다.
트레킹 바와 앞 짐받이를 위해 작업을 했다고?
수평 톱 튜브의 클래식한 멋을 지닌 크로몰리 여행용 자전거를 콘셉트로 잡았기 때문에 헤드세트 역시 보다 고전적인 나사산 방식(Threaded Headset)을 고집했다. 여기에 퀼 스템을 꽂고 다양한 포지션이 가능한 25.4mm 트레킹 핸들바를 장착하니 구경이 맞지 않아 힘을 버티지 못하더라. 그래서 떠올린 묘책이 바로 알루미늄 캔을 둘레에 맞게 재단하여 말아 넣는 것이었다. 덕분에 1만5천km의 기나긴 여정을 큰 사고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프레임 제작을 의뢰 할 당시에는 추운 날씨에 여행할 계획이 없었으므로 뒤 짐받이만 필요했다. 그래서 포크 중간에 짐받이 지지대 고정 볼트 홀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시리아(Syria) 내전으로 인해 다음 목적지인 이집트로 이동하지 못했고, 때마침 겨울이 오기 시작한 터키에서 계속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겨울 옷가지들이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앞 짐받이가 필요하게 되자 튜부스(TUBUS)의 LM-1 포크마운팅 장치를 이용해 앞 짐받이가 원활히 장착 가능하도록 해결했다.
트레킹 바로 여행해본 소감은?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 사용 중이던 산악 자전거용 부품들을 재활용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자세가 가능한 핸들바는 트레킹 바와 바엔드 두 종류 밖에 없었다. 바엔드는 핸들바를 강하게 당겨야 할 때만 사용돼 활용도가 낮았다. 반면에 트레킹 바는 기본자세가 허리를 곧게 편 상태여서 피로가 덜했고, 고속주행을 할 때는 전면 바를 잡으면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어 효율적이었다.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 중 하나가 패니어인데?
많은 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방수 성능이 부족한 모델을 선택하거나 직접 만든 패니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 모두 오르트립(ORTLIEB)과 같은 세계적으로 검증된 제품을 사용하게 되더라. 방수가 확실하면 소지품들을 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오염도 막을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길가의 먼지들을 뒤집어쓰는 경우도 많은데, 가볍게 물로 세척해주면 금세 깨끗해진다. 잠을 잘 때는 텐트 내부에 패니어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때문에 위생적이어야 하므로 손쉬운 세척은 필수이다.
반대로 방수가 안 되는 패니어는 물 세척이 불가능하고 두꺼운 재질로 인해 완전 건조되기까지 한나절이 걸린다. 소지품들이 지퍼락에 보관되어 있어도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피고 전자제품들은 이것이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짐받이에서 패니어를 탈부착 할 때 쓰이는 고리도 굉장히 중요하다. 무거운 짐을 실었을 때 라이딩 중 고리가 부러져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고리는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야 하고 짐받이에서 탈부착이 쉬워야 한다.
여행에 특별히 도움이 된 아이템을 소개하자면?
여행지에서 자전거 여행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아이템이 바로 외장 스피커였다. 길 위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벗이었고 기나긴 언덕길을 올라갈 때는 힘이 되어주었다.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만, 필수품인 자물쇠는 아부스 보르도(ABUS BORDO)를 사용했다. 10만원 초반대의 가격으로 제법 고가이지만 작게 접을 수도 있어 프레임에 깔끔하게 거치가 가능하고 매우 튼튼하다. 또 자전거를 잃어버리면 더 이상 여행을 이어나갈 수 없어서 어디서든 항상 눈앞에 두었을 정도로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펑크가 발생하면 펑크패치를 붙여야 해서 체력소비가 만만치 않았기에 펑크 방지 타이어가 중요했다. 여행 당시에는 슈발베 두레메(SCHWALBE DUREME)를 사용했는데, 1년이 넘는 여행기간 동안 1만5천km를 달리면서 단 한 번의 펑크만 났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일반적인 타이어들은 5000~8000km 사이에서 수명을 다하곤 했지만 두레메의 트레드는 아직도 생생할 만큼 내구성이 우수하다. 또한 폭이 2.0으로 넓은 편이나 트레드가 작아서 노면을 따라 미끄러져 나가는 속도감과 안정감이 일품이기도 했다.
브룩스(BROOKS) B17S 가죽 안장은 세 대의 자전거가 바뀔 동안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낸 유일한 아이템이다. 4만km의 세계각지를 함께하면서 내 엉덩이에 딱 맞게끔 가죽이 차츰 변형됐다. 여성용이라 폭이 넓고 가죽 고유의 편한 느낌으로 타면 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여행용 자전거를 꾸미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편의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짐받이는 최대 적재무게가 30kg인 알루미늄 2단 레일 디자인의 랙타임 에드잇(Racktime Addit)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짐받이의 상단 레일이 한 칸인 모델들은 패니어를 달면 위 부분이 불룩하게 올라온다. 이로 인해 상단 레일에 짐을 싣기가 불편해지는 등 공간 활용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랙타임 에드잇과 같은 2단 레일 짐받이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하고 패니어를 보다 낮게 장착할 수 있다. 이로써 많은 짐을 실어도 휘청거림이 덜해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특히 장기 여행에서는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 제품보다 단순한 모델을 선택하여 사사로운 문제를 최대한 줄이도록 하자.
자전거를 세울 때 쓰이는 킥 스탠드 역시 저렴한 모델을 사용하면 강성이 떨어져 자전거가 쉽게 넘어지거나, 제품이 부러지면서 프레임에 손상을 가한다. 그래서 값이 비싸더라도 튼튼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최근에는 허브 내장기어가 여행용 자전거 세계에서 점차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비교적 고가지만 밀폐가 확실하여 오일만 주기적으로 교체해준다면 고장날 일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지 상태에서도 변속을 할 수 있으니 무거운 짐을 싣고 기어를 잘못 넣어서 출발이 힘든 경우도 없다. 피니언(Pinion)이나 롤로프(Rohloff)사의 경우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무상 수리나 교체를 해줘 사후지원도 확실하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한 탠덤 자전거 여행을 준비 중이다. 이미 자전거는 90% 정도 완성된 상태인데, 전국일주나 미국횡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성능이 나올 때까지 최종 실험 단계에 있다. 이 자전거로 여행을 하여 친환경 전기자전거의 실용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다.
아쉬움은 없는가?
프레임 마감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런 탓에 포크에 짐받이 고정 볼트 홀이 있는 남편 자전거의 앞 짐받이가 약간 기울어졌다. 또한 자전거를 꾸밀 때 단순함을 기준으로 두고 이에 부합하는 롤로프 14단 내장 기어를 장착하려 했다. 하지만 경비를 아끼려다 보니 상급 구동계로 꾸미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한편 앞바퀴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델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는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다.
타지키스탄(Tajikistan)의 수도 두샨베(Dushanbe)에 있을 때 주행감이 이상해 바퀴를 살펴보니 앞 허브가 문제더라. 주변 자전거 매장을 물색하니 구색을 갖춘 곳이 없어 막막했다. 인적이 드문 오지를 한 달간 헤쳐 나갈 예정이었는데, 이 상태로는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때마침 수소문 끝에 만난 한인 한 분이 선뜻 자신의 자전거 앞바퀴를 때서 건네 주셨다. 덕분에 지금까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저가형 휠이긴 하지만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고 여행의 추억이기에 딱히 교체할 생각은 없다.
자전거 여행의 매력이란?
자전거 여행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상황 속에 놓여지게 되는 도전의 연속이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어 충분히 매력적이다. 요즘 세상이 너무 빠르게만 흘러가는 것 같다. 그만큼 잃게 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두 바퀴 자전거는 평소 지나치며 잊고 있었던 것들을 되찾아주는 건강한 매력이 있다. 안장 위에 올라 느리게 다가오는 풍경들을 여유롭게 맞이해보길 바란다.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http://coupletourist.com (동갑내기 부부의 세계로 가는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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