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HE ARMSTRONG LIE(암스트롱 라이) :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의 거짓말

피아랑 2014. 5. 31. 00:40

암스트롱의 거짓말
다큐멘터리 형식을 택하고 있는 ‘암스트롱 라이(The Armstrong Lie, 2013)’는 지난 2009년, 알렉스 기브니(Alex Gibney) 감독이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7회 내리 우승하고 화려하게 은퇴했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의 귀환을 소재로 제작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 해 암스트롱의 도핑 추문이 터지면서 제작이 연기됐고, 애초 감독과 주인공인 암스트롱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끝맺음을 맺었다. 작품은 암스트롱의 유년기와 도핑 사실이 밝혀지기 이전,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던 모습을 새로운 관점에서 절묘하게 엮어나갔다.

랜스 암스트롱을 비롯한 프로 사이클리스트들을 유혹했던 금지 약물인 EPO는 희대의 사기극을 꽃피운 씨앗이었다. 1990년대 선수들은 자신의 경기력을 향상하고 회복을 돕기 위해 EPO를 사용했다. 효과는 적혈구의 생산이 촉진돼 폐와 근육으로 더 많은 산소가 이동해 피로감이 최대한 늦춰지는 것이다. 고환암 진단을 받기 전의 암스트롱은 1994년까지 너무나도 깨끗하게 경기에 임했다. 그는 1993년 노르웨이의 해안 도시 오슬로에서 개최된 UCI 월드 챔피언쉽(UCI World Championships)에서 가장 높은 포디엄에 오르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암은 모든 것을 앗아 갔다. 찬란하게 빛났던 앞길에 어둠이 드리웠다.


 

힘겹게 고환암을 극복한 랜스 암스트롱을 향해 평단은 재기에 대해 인색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1998년 뚜르 드 프랑스를 깜짝 우승해내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약물의 힘을 빌려서였다. 그를 비롯한 그 시절 선수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물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EPO를 검사할 방법이 개발됐을 때 암스트롱 팀의 전담 의사인 미첼레 페라리(Michele Ferrari)는 선수들의 평상시 혈액을 수집해뒀다. 그리고 레이스 도중 적혈구의 수치가 떨어지면 채취한 혈액을 다시 주입하는 방법으로 적혈구의 수를 늘려 EPO와 같은 효과를 보았다. 이렇게 암스트롱은 검사를 과감하고도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그의 재산과 명성이 쌓일 수록 점점 대담해졌었다.

랜스 암스트롱은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쇼에서 자신의 약물 복용 사실을 고백하며 “2009년 뚜르에 복귀하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 잊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덤덤하게 고했다. 팀 동료 조지 힌캐피(George Hincapie)는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룬 암스트롱이 복귀를 결정한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사이클 경기는 전혀 화려하지 않다. 때로는 영하 1도에의 쏟아지는 빗속에서 달려야 한다.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이루었던 암스트롱은 전 세계 암 환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다.” 방점을 찍었던 암스트롱이 다시 지옥의 레이스를 도전한 대에는 약물 사용 없이 깨끗하게 포디엄에 올라 그를 괴롭혔던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싶어서였다. 암스트롱이 도핑을 은닉 할 수 있었던 것에는 UCI(세계사이클연맹)와 각 기업의 이해관계도 얽혀있었다.


 

2시간 남짓한 이 작품의 절정은 2009년 뚜르 드 프랑스의 스테이지 20 몽바투(MONT VENTOUX)였다. 암스트롱은 해발 1912m, 거리 20.8km 평균 경사도 7.5%에 달하는 극악무도한 산악 몽바투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이미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알베르토 콘타도르(Alberto Contador)에게 옐로우 저지를 내준 상태였지만, 대회 우승이 아닌 포디엄 등극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비평가들마저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4년 뒤, 미국 반도핑 기구에서 암스트롱이 깨끗하게 경기를 치러내지 못했다는 사실, 즉 몽바투를 오르기에 앞서 자신의 혈액을 수혈받은 점을 밝혀내면서 암스트롱은 위기에 봉착했다. 약물 복용없이는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였다. 폭로에 가장 먼저 불을 지핀 이는 2006년 뚜르 드 프랑스를 우승했던 플로이드 랜디스(Floyd Landis)였다.

그는 약물이 검출돼 2006년 뚜르 우승 기록이 박탈되자 분노했다. 랜디스는 암스트롱의 뚜르 우승을 3번이나 도왔다. 자신과 같은 방법을 반복했음에도 세상의 영웅으로 추대받았던 암스트롱을 지켜볼 수가 없었던 랜디스는 2010년 7월 진실의 입을 열었다. 랜스 암스트롱은 약 10여년 간 쌓아 올린 유산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명성을 이용해 거짓말을 해댔고, 자신에게 대앙하는 이들에게 고소를 일삼았다.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되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 이들은 랜디스의 폭로에 힘입어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암스트롱은 수많은 매체와 기구, 팬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더는 버틸 수가 없게 됐다.



랜스 암스트롱은 사이클 스포츠를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강대국인 미국에 알렸고, 붐을 일으키는데 공언했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 공중파 스포츠 뉴스를 통해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미국 자전거 선수가 뚜르 드 프랑스를 우승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프로 사이클링의 존재를 알았으니, 영화와도 같은 그의 삶의 행적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본다. 물론, 사이클 황제의 놀라운 고백으로 일부 UCI 프로팀들이 스폰서 관계를 철회하는 등 진통이 적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마치 종교와도 같은 암스트롱을 향한 강한 믿음이 산산조각이 나버리자 붕괴했다. 암스트롱이 전 세계의 사이클링 팬들을 상대로 희대의 거짓말을 했음에도 나는 그를 맹목적으로 비판할 생각이 없다. 약물 투여와는 별개로 누구보다도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효율적인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3주 동안 약 3,600km를 달려야 하는 지옥의 레이스인 뚜르 드 프랑스에서 7번이나 내리 우승을 차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암스트롱은 암 환자들을 돕기 위해 리브스트롱(LIVESTRONG) 재단을 설립해 3억 달러가 넘는 기금을 모아 선행을 일삼는 암 투병 환자들의 영웅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내 생각은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비슷하다고 본다. “경제만 좋아지면 그의 범죄기록 정도는 용인해 수가 있어”와 같은 편협한 생각들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암스트롱의 추악한 진실보다 아름다운 거짓말을 사랑했었다. 공식적으로 그의 모든 기록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랜스 암스트롱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변치 않는 사이클 황제다.





http://www.lancearmstrong.com/ (Lance Armstrong)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It's not about the bike) (2000, 랜스 암스트롱, 샐리 젠킨스)
암스트롱 라이 (THE ARMSTRONG LIE) (2013, 알렉스 기브니)

TREK Domane 6.2c (트렉 도마니 6.2c) (2013)
TREK Madone 4.5c (트렉 마돈 4.5c)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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