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프롤로그 - 유기농 자전거 프로젝트 : 근본 없는 놈, 프레임 빌더로 성장하기까지
태풍이 몰고 온, 두바퀴 생활
<삼천리자전거>에서 출시 된 현란한 일러스트가 일품인 어린이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던 어린 시절. 그때를 회상해보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면 신이난다며 웅덩이를 찾아 헤매이고는 했었습니다. 안장 위에 작은 엉덩이를 얹고 두 다리를 활짝 편 채 얕은 웅덩이를 가르고는 했지요. 그 아이는 조금 더 자라나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퀴퀴한 고무냄새와 기름내가 가득했던, 동네 자전거포에서 미끈하게 잘 빠진 ‘태풍(TYPHOON)’라는 이름의 26인치 자전거에 반하게 됩니다.
녀석의 바퀴살에 형형색색의 신발 끈으로 치장을 하고, 바퀴가 앞으로 구를 때 마다 또로록- 떨어지는 플라스틱 구슬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요. 또 핸들바에는 백미러를 장착했고, 톱-튜브와 다운튜브를 가르는 삼각가방으로 풀-옵션을 만들어서는 마치, 다 큰 어른들이 잘 빠진 슈퍼카를 타듯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온 동네를 누볐습니다. 그땐 사랑하는 애마를 얼마나 아껴주었던지 조금만 더러워지면 신발장 한편에서 물 세차를 시켜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재산목록 1호이기도 했던 녀석을 도둑맞고는 두 눈에 불을 키고 온 동네를 샅샅이 헤매던 기억 또한 피어납니다. 그러고 보면 남자들은 언제나 탈것에 대한 로망으로 한 평생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 삼천리자전거의 스테디 셀러, 태풍 시리즈
응답하라 2006년
저는 한국의 마지막 국민학교 세대입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던 '과학자'를 저 역시 장래희망에 기입했었습니다. 깜깜한 미래를 밝히지 못해 바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황하던 20대 중반의 여름날. 일본의 여가수 ZARD(자드)의 負けないで(마케나이데, 지지 말아요)를 들으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블로거 정태준의 자전거 여행기를 보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IT업종에 취직을 하여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사람에 대한 상처와 업종의 대한 환상들이 신기루와 같았다는 것을 깨닫고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와 곧장 한 일이 바로, 자전거를 구매 한 것입니다. 그때 가족들은 “무슨 자전거가 60만원씩이나 하냐?”며 “네가 한 달을 타면 많이 타는거지”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 삶은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일의 발단이었죠.
▲ 자전거의 재미를 알려 준, DAHON SPEED P8 (2008)
미니벨로와 블로그
택배에 쌓여온 (다혼)의 미니벨로 'SPEED P8'을 착착 펴서는 인근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어렸을 적 간절히 원하던 자전거를 구입해서 탄 첫날의 기분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며칠 뒤 녀석을 타고 미니벨로 동호회의 라이딩을 참여했습니다. 저는 제가 타고 나간 자전거가 가장 값 비싼 줄 알았어요. 그런데 훨씬 좋은 자전거들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제게 자전거에 대한 재미를 일깨워 주었어지요. 조금 더 좋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 틈만 나면 용품들을 구매해 튜닝을 하였습니다. 소속 동호회 회원들은 기꺼이 자전거를 꾸미는데 조건 없이 도와주었어요. 2008~9년의 저는 자전거의 ㅈ’자도 모르는 근본 없는 놈이었습니다. 120psi의 고압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다 튕겨나기도 했었죠. 돌이켜보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크게 나쁜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건강함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2009년 초 블로그 <피아랑닷컴>을 만들게 되었고,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전거 타는 이야기나 올려보자’가 개설의 목적이었죠. 시간은 조금씩 흘러 순수했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이걸 어떻게 잘 구슬리면 나도 잘 나가는 블로거들 처럼 어떠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다행이도 블로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점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승욱’이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는 도구로도 활용해보자는 마음까지 먹게 됐지요. 결과적으로 생각들은 좋은 결과물 탄생됐고 호응 역시 좋아 세상의 수많은 기회들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것 또한 현재진행형입니다.
▲ 바이크아카데미 30기, 행주산성 라이딩
근본 없는 놈. 근본 생기다.
블로그가 가져다 준 기회 중 가장 특별한 선물은 전문 교육기관 <바이크아카데미>에서 자전거 정비 기술을 배우게 된 것 입니다. 늘 상 동호회 회원들에게 “난 공구 만지는데 소질이 없는 거 같아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던 저는 그 벽을 깨보기로 다짐을 하고 자전거 매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마치 스펀지 같이 단기간에 매장에서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쭉쭉- 흡수했습니다.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물이 올랐을 때는 실장이란 직함을 달고 매장을 진두지휘 하였고 돌이켜 보면 후회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자전거 여행이라 자부하는 ‘스트라이다(STRiDA)’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일주하는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짧지만 평생 잊지 못할 제주일주를 다녀와서는 자전거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커스텀 프레임 빌딩을 하게 된 것이지요.
▲ 프레임 빌딩을 하고 있는, 피아랑 이승욱
유기농 자전거 프로젝트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피아랑의 유기농 자전거 프로젝트’는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총 2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단계는 100% 수제 자전거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설계, 프레임 빌딩, 데칼 디자인, 도색, 휠 빌딩, 조립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수제 자전거를 만들어 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자세히 풀어나간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도 드물거라는 생각입니다.
2단계는 제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국토를 유랑하거나 지구촌을 상대로 하는 세계일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행기 역시 모든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낼 것 입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은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이 ‘유기농 자전거 프로젝트’의 종착역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날이 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응원해주세요.
유기농 자전거 프로젝트
2. 설계 - 전문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프레임을 설계하기 (BikeCAD 이용과 프레임 도면)
3. 공구 - 자전거 프레임 빌딩에 반드시 필요한 공구와 픽스쳐(Tools & Fixtures) 알아보기
4. 포크 - 클래식 스타일의 크로몰리 자전거 포크(Fork) 직접 설계하고 잘라 용접하기
5. 체인스테이 - 겉과 다르게 자전거에서 중요한 역할의 Chainstay 손질하고 용접하기
관련 문화평
사진보고 따라하는 자전거 정비 (2007, 한국자전거미캐닉협회, 자전거생활 편집부)
바이시클 테크놀로지 (2013, 롭 반 데르 플라스, 스튜어트 베어드)
관련 글타래
바이크 아카데미 : 자전거 '정비(미캐닉),창업,사업,자격증' 교육기관(학원) 수료기
흥아 인도네시아(슈발베) 현장 : 고무에서 세계 최고의 자전거 타이어 되기까지
결론은 피팅이다 : 보다 과학적이고 편안한 사이클링을 논하다
관련 인물들
자전거 정비문화의 리더 : 사단법인 한국자전거미캐닉협회 '이상훈' 회장
서울 한복판에 자전거 공방 <두부공>을 열어 불을 피우는 청년, 프레임 빌더 김두범
자전거 도색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은, 풍류커스텀(PUNGNEW CUSTOM) 이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