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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고창산악자전거공원(고창MTB파크)의 총괄 감독, 트레일 빌더 손창환의 개척(開拓)

피아랑 2016. 11. 3. 00:12

손창환의 개척(開拓)
두 바퀴에 올라 자연이 선사하는 짜릿함에 매료된 손창환은 더 안전하고 긴장감 넘치는 산악자전거 전용 코스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 산과 저 산 어디에도 마음 편히 바퀴 굴릴 곳은 없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했던가. 그는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삽과 괭이를 들었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묵묵히 산에서 놀이터를 일구었고, 마침내 전라북도 고창군에 산악자전거 공원까지 준공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트레일 빌더(Trail Builder)’ 송창환의 치열했던 삶의 개척기를 귀담아들어 보자.


본능적인 짜릿함
어릴 때부터 방안에 틀어박혀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 뛰놀기를 좋아했다. 겨울이면 비탈길로 올라가 비료 포대를 타고 신이 나게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눈이나 얼음 특유의 미끄러짐을 좋아해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도 했었다. 그러다 눈썰매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고 경사면을 재미있게 내려오는 놀이기구를 찾으니 자연스레 자전거에 눈이 갔었다. 그 길로 손잡이가 길게 쭉 뻗은 유사 산악자전거를 타고 굽이진 산길을 위태롭게 내려오다 사고가 나서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재능도 남달랐다. 생업에 지쳐갈 때쯤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라 페달을 굴리기 시작했다. 잘 닦인 한강 자전거길은 시시했다. 자연스레 칙칙한 회색 도시를 벗어나 푸름을 머금은 산을 찾았다. 어른이 되어 깨달은 산악 라이딩의 참 맛은 스스로와의 건강한 싸움이었다. 험한 지형을 빠르게 돌파하는 속도감과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너무 좋았다. 끼도 부려가면서 즐기고 싶어서 해외영상을 찾아보며 단골 자전거 매장 사람들과 각종 기술을 연습했다. 경쟁심도 생겼다. 2002년에는 삼천리자전거배 무주 산악자전거 대회를 처음 출전했었는데, 50명의 선수 중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뜩이나 재미난 데 남들에게 칭찬까지 받으니 푹 빠질 수밖에.



국내 최초 야간 다운힐 대회 개최
큰 기대를 품고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손꼽히는 대회였음에도 동경했던 해외영상 속 산악 라이딩 코스와는 판이했다. 울창한 숲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뱅크 코너와 하늘을 향해 반복해서 뛰어오르는 점프대는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결국 페달에서 발을 떼고 삽과 곡괭이를 두 손에 들게 되었다.

동호인들과 팀을 꾸려 소소하게 주변 야산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2004년도에는 마침내 관악산 한우물 다운힐 대회를 개최했다. 기획부터 코스 개발까지 모든 것을 총괄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야간 다운힐 대회여서 세간의 주목도 받았다. 처음이었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단단히 준비했다.

참가자들에게 코스를 충분히 숙지시켰고, 밝은 전조등을 3개씩 장착해야만 레이스에 임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정했다. 의료진과 안전요원도 배치했다. 덕분에 무사히 대회를 치러낼 수 있었다. 야간 산악 라이딩을 즐겨보면 밝은 대낮보다 시야가 좁아서 속도감이 배가 된다.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짜릿함을 만끽한 참가자들의 반응은 참으로 뜨거웠다. 무엇보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서 내 가슴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인생의 동반자를 얻다
한편, 인생의 동반자 다운힐 대회로 얻었다. 다운힐 대회는 사고가 잦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던 간호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해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자세한 연애사는 말하기가 쑥스럽다. 자전거를 타다 좀 다치면 아내는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며 콧방귀를 뀌고는 한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코스를 개척하고 있을 때면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와서는 격려해준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해외 유수의 산악자전거 공원 견학을 위해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몰래 항공권도 준비해줬다. 아내가 없었다면 힘든 시기를 이겨내지 못한 채 트레일 빌더의 길을 포기했을 것 같다.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



온 힘을 쏟았던 MTB 공원 문 닫다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이하 지산)는 2007년 수익 다각화를 위해 해외사례들을 조사하다 사시사철 운영 가능한 상설 산악자전거 공원을 개설하기로 했다. 지산 측이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코스를 구축하기 위해 도와줄 사람을 찾으면서 나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렇게 모든 코스를 설계했고 동호인들과 함께 땀 흘려 만들었다. 해마다 크고 작은 대회를 개최하면서 필요한 코스도 늘려나갔었다.

그러나 2010년에 유독 비가 많이 내려서 코스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코스를 복구해야만 했는데, 비용이 많이 필요했다. 지산 내부적으로도 스키 시즌인 겨울에 비해 매출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 나와 동호인들은 우리 놀이터는 직접 만든다는 소명감에 무일푼으로 피땀 흘려 온 힘을 다했었기에 한동안은 상실감이 컸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면 동호인들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

지산 이전에는 흙더미만 쌓아서 점프대를 만드는 등 환경이 참 열악했었다. 코스 대부분이 대회를 위한 일회성에 그치거나 동호인들이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방치돼 성공사례가 없었다고 본다. 규모보다 지원금도 상당히 모자랐고 말이다. 지산 산악자전거 공원이 문을 닫고, 한국산악자전거협회 이사직을 수행하며 전국을 돌면서 산악자전거에 최적화된 시설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끝 없는 연구

트레일 빌딩을 할 때에는 먼저 입지 타당성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한다. 타당성이 확인되면 항공 지도를 이용해 지형을 파악한다. 이를 토대로 고도에 따른 코스 경로를 지도에 그려 본다. GPS를 이용해 경로를 따라 도보로 현장을 답사한다. 이때 산악 라이딩 코스가 설정되는 구간에는 수기로 표시해 실질적인 기본 경로를 설정한다.

나무에 리본을 묶는 것이 대표적이다. 만약에 항공사진이나 등고선이 실제 지형과 차이가 난다면 200m 정도를 되돌아가 실제 경로를 다시 설정한다. 경로 설정이 완료되면 토목 공사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지형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최대한 살려 돌부리와 같은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고 인공기물을 설치한다. 끝으로 각종 부대시설과 시설물을 신설하면 완성이다.

세계수준의 트레일을 만들기 위해 공부도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해외 산악자전거 공원을 찾아가 크랭크웍스(Crankworx) 등 세계적인 대회에 직접 참여해보면서 코스 답사와 행사 운영에 대한 공부를 함께한다. 지난 2008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캐나다 휘슬러 산악자전거 공원(Whistler Mountain Bike Park, Canada) 코스를 설계한 ‘그라비티 로직(Gravity Logic)’ 구성원들을 만나 조언을 듣기도 했다.

세계적인 산악자전거 공원은 2년에 한 번씩 코스가 완전히 새롭게 편성돼 항상 트렌드를 주시해야만 한다. 변화한 시설이나 코스를 재빨리 반영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는 주로 사진과 영상 자료를 수집해서 공부한다. 현장 일을 할 때 삽질과 같은 소규모 장비를 다루는 것은 과거에 건축자재 사업을 했었기에 익숙하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토목 관련 도면과 전문용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화제의 고창 산악자전거 공원

정상까지 차량접근이 가능한 해발 640m의 방장산에 위치한 공원은 선수는 물론 초중급자도 자유롭게 숲 속을 달릴 수 있는 국내 최장거리인 15km 산악자전거 전용 코스를 직접 설계 감독했다. 트레이닝 센터, 정비실, 샤워실, 세척시설 등 편의시설도 갖추었는데, 코스를 비롯한 주요시설은 무료로 개방될 예정이다. 기획부터 시작해서 준공까지 기간은 총 3년이 걸렸다. 방장산은 바람이 좋아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유명하다.

5분거리내 온천과 숙박시설 그리고 골프장 등이 위치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로소 제대로 된 산악자전거 공원이 생겨 국내 마니아들의 뜨거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본다. 다가오는 4월 고창군수배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3회 이상 전국 규모의 산악자전거 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공원 일대에서 일주일 정도 진행하는 종합 아웃도어 행사도 개최하고 싶다.

완성된 코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식과도 같아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띠어진다. 코스 이름도 모두 내가 붙여주었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지판 규격을 사용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문제없이 즐길 수 있다. 굳이 대표적인 코스를 꼽자면 ‘굿잡(Good Job)’과 ‘미쓰고(Miss Go)’이다. 미쓰고에서 ‘고’는 ‘고창’과 ‘달려(Go)’라는 두 의미를 내포하는데, 야릇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자연 그대로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살렸고, 폭이 좁아서 삽과 괭이 같은 작은 장비만을 사용했다. 덕분에 암벽과 바위, 좁은 길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굿잡은 좋은 사람과 함께 손바닥을 마주치며 서로에게 칭찬하는 의미이다. 작은 둔덕이 반복되는 웨이브(Wave)와 뱅크 코너가 연속해서 이어지고 점프대가 많다. 해외 유수의 산악자전거 공원을 돌아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인공 기물을 도입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다양한 동작을 연속해서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싶은 이들이 환영할만한하다.



주도면밀한 코스 설계
다운힐 코스의 경우 위치 에너지를 적절히 활용해야만 한다. 내리막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는데, 언덕을 알맞은 구간에 배치해 자연스러운 감속으로 위험요소를 줄였다. 초보자들이 사고가 날 만한 곳에 안전 매트를 설치하고 절벽 구간에는 안전망도 쳤다.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은 뱅크 코너를 돌아 나올 때의 중력 가속도를 좋아한다. 또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알맞게 위치한다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묘미에 빠져든다. 이러한 요소들에 마니아들이 흠뻑 취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한, 집중호우로 인한 코스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물이 빠져갈 수 있도록 주변 지형을 고려해서 경로를 설정했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나무 보호였다. 고창 산악자전거 공원은 벼락에 맞아서 넘어갔거나 뿌리가 상한 나무만을 위주로 벌채했다. 지름 20cm 이상의 나무들은 전체 약 15km 코스 공사를 진행하면서 50그루도 채 벌목하지 않았다.


위험과 낭만
현장 일이 많아서 위험하기도 하다. 공원 범위가 워낙 넓어서 기동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ATV(All-Terrain Vehicle)를 타야만 하는데, 산세가 험해 ATV와 함께 구르기 일쑤다. 게다가 굴착기 기사와 합을 맞추어 작업을 해나가는데,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나무뿌리가 얼굴로 날아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기도 했다. 목재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르다 벌에 쏘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여름철에는 무더위와 해충, 독사와 사투를 벌여야 했고, 겨울에는 손과 발끝이 끊어질 듯한 추위에 맞서야만 했다.

하지만 낭만도 있다. 머릿속에 구상했던 코스가 현실에서 고스란히 구현됐을 때, 시험 라이딩을 해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몰려온다. 좋아했던 취미가 이제는 일이 돼버려 힘든 점도 있지만, 두 발로 뛰어다니며 만든 코스를 환한 미소로 누빌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흐뭇하고도 설렌다. 산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주며 건강을 되찾아 준다. 재해로 생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있노라면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숙연함이 샘솟아 욕심이 비워진다. 그래서 늘 기본에 충실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런 게 낭만이지.



당부와 목표
우선 동호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있다. 산악 라이더들은 여전히 소수이다. 그래서 산악자전거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일에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면 등산객들과의 마찰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산악자전거는 기술과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학적인 운동이다. 산악자전거 공원을 이용할 때에도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충분히 숙지하고 라이딩을 즐겨야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가 있다. 시설 안전에 온 힘을 다한다고 해도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캐나다 휘슬러 산악자전거 공원의 에이라인(A-Line), 블루벨벳(Blue Velvet)과 같은 세계적으로 난이도 높은 코스를 설계해 시공하고 싶고, 산악 코스 역시 산세에 따라 묘미가 달라지기에 전국적으로 산악자전거 공원 하나씩 열어 보이고 싶기도 하다. 또한, 누군가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 트레일 빌더의 꿈을 키우고 있다면 성심성의껏 가르치며 국내 산악자전거 문화 발전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그리고 꿈
끝으로 전업 트레일 빌더가 되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따질 때면 늘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그래도 앞으로는 충분히 레저 산업에 대한 밝은 전망을 예감하기에 한 걸음씩 열심히 나아가려 한다. 주어진 운명이라 여기고 한국이 아시아 산악자전거 문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산악자전거가 있었기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트레일 빌더라는 명성을 얻을 수가 있었다. 덕택에 손창환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40대에는 자신 있게 알리고 싶었는데 일부분 이룬 것 같다. 캐나다를 갔었을 때 인상 깊었던 모습이 삼대가 함께 어우러져 산악 라이딩을 즐기더라. 60살의 할아버지와 30살 아버지 그리고 7살짜리 꼬마가 함께 말이다. 나도 백발의 노인이 됐을 때 두 손으로 직접 개척한 코스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한 라이딩을 즐기고 싶다. 그것이 살면서 가장 큰 꿈이다.



<바퀴(baqui) vol.31, 바퀴와 사람들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사진: 한용(Studio :D)

고창MTB파크: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 696
펀박스: 서울특별시 양천구 공항대로 656 영일산기빌딩 1층 102호 (02-2655-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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