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anchi X4 Specialissima Moreno Argentin (비앙키 X4 스페치알리씨마 모레노 아르젠틴) (1989)
1989 Bianchi X4 Specialissima Moreno Argentin
어떤 목적의 자전거가 필요했던 것인가_ 소규모 공방에서 만들어진 자전거들이 다수 출품되는 북미수제자전거쇼(North American Handmade Bicycle Show, NAHBS)를 온라인에서 살펴보는 것이 소소한 취미였다. 수평 톱 튜브와 러그(Lugs)가 바탕이 된 간결한 아름다움이 매력적인 자전거들에 매료된 것.
비록 시대를 거스르는 클래식한 외형의 프레임에 현대 기술이 집약된 첨단 구동계를 장착한 모델이 다수였지만, 되려 이 같은 요소들이 성능적인 측면에서는 상호보완 작용을 이루었다고 생각됐기에 북미수제자전거쇼에 출품된 자전거들처럼 조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간 어떤 물건을 구매하더라도 한없이 애지중지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해왔는데, 비결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부분에 가치를 둬서다. 결론적으로 두 바퀴 위에 올라 거리를 누비다 보면 같은 모델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희귀하면서도 훌륭한 성능을 갖춘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자전거가 필요했던 셈이다.
라이더: 김태환, 주행 거리: 약 3,000km, 주행 환경: 일반도로 및 자전거도로, 관리 부위: 프레임 및 전체, 구매비용: 총 500만원, 사양: 프레임 세트 _Bianchi X4 Specialissima Moreno Argentin / 튜빙_ Columbus TSX Cr-Mo / 그룹 세트_ Campagnolo Chorus 11 / 페달_ Speedplay Zero Cr-Mo Black / 휠 세트_ H PLUS SON TB14 700c Hard Ano 32H Rims + Campagnolo Record Hubs / 핸들바_ Deda Piega 44cm / 스템_ 3TTT Record Quill Stem (Black/135mm) / 안장_ San Marco Aspide Celeste / 헤드세트_ Chris King 1” Sotto Voce Black / 중량_ 9.7kg
희소성과 내구성
자전거를 고르며 가장 고민했던 점_ 추구하는 취향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편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최고급 자전거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멋있다.’는 생각에 그치곤 했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추호도 들지 않더라. 이 같은 최신식의 최고급 자전거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반대로 크로몰리 소재의 보편적인 클래식 자전거의 경우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 영원할 것만 같은 내구성도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누가 봐도 탐낼만한 값어치를 지닌 클래식 크로몰리 프레임들은 매물이 흔치 않을뿐더러, 내 몸에 딱 맞지 않는 사이즈 문제도 심심치 않아 모델 선정에 어려움이 따랐었다.
하나의 예술품
브랜드의 매력을 꼽자면_ 자전거를 좋아한다면 위대한 사이클리스트인 캄피오니시모(Campionissimo, 최고의 챔피언) 파우스토 코피(Fausto Coppi), 라 피라타(La Pirata, 해적) 마르코 판타니(Marco Pantani)가 비앙키(Bianchi)의 기함에 올라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와 같은 그랜드 투어에서 어떠한 업적을 남겼는지 잘 알 것이다.
그만큼 성능만으로도 이미 한 세기간 쌓아 올린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 비앙키의 명성은 드높다. 이탈리아어로 ‘하늘’을 일컫는 체레스테(Celeste) 색상은 비앙키의 대표적 상징이다. 얼핏 보기에는 체레스테와 비슷한 민트색 자전거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비앙키가 떠오를 만큼 누구나 한 번쯤 이 영롱한 빛깔을 띤 프레임에 올라 바퀴를 굴리는 상상에 빠진다.
한때 나는 비앙키를 싫어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그야말로 만인의 브랜드이기 때문. 그러나 1980년대 비앙키의 고향 이탈리아 공방에서 제작됐던 크로몰리 자전거들을 보고 있자면 세부적인 조형미가 뛰어나 마치 하나의 예술품 같아서 푹 빠지게 됐다.
신구의 조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자전거를 보며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_ 동시대에 유럽에서 생산됐던 세계적인 프레임들처럼 비앙키 X4 스페치알리씨마 모레노 아르젠틴(Bianchi X4 Specialissima Moreno Argentin) 역시 포크 크라운, BB 쉘, 시트 스테이 그리고 각 부분의 러그 등에 음각 문양이 자랑스러울 만큼 가득하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살펴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는 한다.
특히, 체레스테와 검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프레임에 과하지 않을 정도의 금빛이 어우러져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뽐낸다. 무엇보다 조립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신구의 조화 즉, 첨단 소재인 카본이 가미된 현시대의 구동 부품들과 80년대 스틸 프레임 세트가 마치 한 시대를 함께 풍미한 듯한 절묘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게다가 케이블이 프레임 내부로 말끔하게 지나는 완성도 역시 마찬가지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27.2mm의 치넬리 램(Cinelli Ram) 시트포스트와 100회 뚜르 드 프랑스 기념 라파(Rapha) 한정판 물통에서도 잔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비교적 가벼운 무게
특징 몇 가지_ 1989년 콜럼버스(COLUMBUS)에서 내놓은 튜브 세트 중 상급에 속했던 TSX는 최대한 얇게 만들면서도 강성을 확보해 150km 이상의 장거리 라이딩에 적합하도록 제작됐음에도 동시대의 튜브 세트보다 비교적 가벼운 포크 포함 평균 1,945g의 무게를 자랑한다. 핸들바를 부여잡고 페달을 밟아 자전거를 강하게 흔드는 댄싱으로 라이딩을 해보면 반응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시속 20km 이상의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 지면과 밀착이 되는 듯한 안정적인 주행감이 일품이며, 속도 유지도 뛰어나다. 최근 엔듀런스 바이크라고 불리는 장거리용 로드 사이클의 특징인 물리적 진동 흡수 장치는 없지만, 튜브 자체가 탄성이 뛰어난 편이어서 장시간 라이딩을 해도 피로가 덜 한편이다. 레이싱 성향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포크는 공기역학적인 형상으로 디자인된 부분 역시 돋보인다. 자동차로 빗대자면 스포츠 세단이 적합할 것 같다.
부식에 취약하다
불만도 없진 않을 것 같다_ 태생이 스틸 계열인 크로몰리 프레임인지라 1989년 당시에는 비교적 가벼운 무게를 자랑했더라도 25년이 지난 현시대에는 그저 무거울 뿐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각 컴포넌트를 가벼운 모델로 선정해 자전거 전체 무게를 줄여볼까도 생각해봤었지만, 시간과 금전 모두 낭비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길에 라이더들이 없어 한산하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흠뻑 젖을 수 있는 비 오는 날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비앙키 X4 스페치알리씨마 모레노 아르젠틴과 같은 크로몰리 프레임 세트는 부식에 약해서 우중 라이딩을 할 수가 없어 불만이다. 더불어 모양새가 마음에 들고 가볍다고 소문이 자자한 레이놀즈(REYNOLDS)의 카본 휠 세트로 교체해보고 싶기는 하다.
현재 10kg에 가까운 완차 무게를 지녀 휠 세트만 바꾸어도 9kg 초반이 돼 비교적 경쾌한 라이딩이 가능할 것 같아서다. 사용 중인 에이치 플러스 손(H PLUS SON)의 TB14 림은 검정 바탕의 매우 클래식한 형태를 지녀 무거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택했다.
이태리 감성
컴포넌트의 특성_ 체레스테와 검은색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콘셉트를 잡았더니 은색 계열이 대다수인 클래식 구동 부품들은 맞지가 않더라. 또 노화로 인한 부품 관리에 신경을 쏟고 싶지가 않았고, 프레임 외에는 성능적으로 뒤떨어지기가 싫어서 현대식 컴포넌트를 채용했다. 특히 프레임 세트와 출신지가 같은 이탈리아의 캄파뇰로(Campagnolo)는 특유의 현지 감성이 베여있는 것 같아 미국의 스람(SRAM)이나 일본의 시마노(SHIMANO) 보다 어울린다고 본다.
코러스(Chorus) 등급은 카본이 첨가되어 애초 구상했던 컬러 밸런스와도 절묘하고 성능도 만족스럽다. 캄파뇰로 코러스 허브에 32개의 디티스위스 컴페티션(DT Swiss Competition) 바퀴 살을 세 번 교차하게 엮었더니 튼튼하다. 묵직하기는 하지만 프레임 세트와 조화롭고 탄탄한 주행감이 마음에 든다.
퀼 스템은 검정으로 아노다이징 처리된 135mm 모델이 드물어서 애를 먹었다. 특히 오버사이즈 스템이 아닌 퀼 스템에 맞는 인체공학적인 드롭바를 겨우 구하고 나서도 장착해보니 스템에 맞 물리는 부분이 넓어져 빈틈이 생겨 보기 싫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쓰다 남은 바테이프를 잘라 빈틈에 메꾸었더니 감쪽같더라.
산 마르코 아스피데(San Marco Aspide) 안장과 치넬리 램(Cinelli Ram) 시트포스트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외형에 날렵함을 부여하고 싶어서 택했다. 아울러 프레임 곳곳에 새겨진 금빛 음각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물통 케이지 고정 볼트를 금색으로 택하는 등 소소한 부분에 신경을 썼다.
주기적인 간단 점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 관리해왔나_ 원하는 모습으로 꾸몄다고 해서 그저 방안에 두고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 나와 함께 길 위를 잽싸게 누빌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게 자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변속과 제동, 림 정렬, 타이어의 상태 등 라이딩을 전후로 매번 간단한 점검을 한다.
일상생활에서 바쁜 일이 생겨 페달을 굴리지 못했을 경우 전용 트레이너를 이용해 정기 점검을 하기도 한다. 크로몰리 프레임이기 때문에 우중 라이딩은 삼가고 있지만, 예상치 못하게 비에 젖었을 경우 귀가 후 극세사 천으로 물기를 제거하고 시트포스트는 뽑아둔 채로 뒤집어서 건조하는 방법으로 부식을 방지하고 있다.
풀 카본 로드를 앞지르는 쾌감
혹시 자전거를 바꾸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_ 한때는 알루미늄 프레임 중에서 가볍고 성능 좋기로 유명한 캐논데일 캐드(Cannondale CAAD) 10을 갈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비앙키 X4 스페치알리씨마 모레노 아르젠틴 조립을 평생 함께할 마음으로 임했기에 단 한 순간도 바꾸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크로몰리 클래식 자전거로 최첨단의 공기역학적인 기술이 적용된 풀 카본 로드 사이클을 힐 클라이밍에서 앞지르는 쾌감을 좋아해서 애착이 남다르다. 나 역시 카본 프레임을 타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모델은 없었다. 아무래도 마치 근육과 같이 과장된 카본 튜브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분신, 모레노 아르젠틴
당신에게 이 자전거는 어떤 존재인가_ 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상태가 좋지 못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낙차 해 빗장뼈가 부러지는 커다란 사고를 겪었다. 헌데, 자전거는 안장과 바테이프를 제외하고서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생사를 함께 한순간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굳건히 버텨준 녀석이 대견해 애착이 깊어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또한, 늘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지만 녀석 위에 올라 쭉 뻗은 도로 위를 달려나갈 때의 카타르시스는 마땅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쳇바퀴처럼 되풀이되듯 무심히 지나던 작은 골목도 녀석과 함께라면 새로웠고, 생전 처음으로 탐험했던 곳도 부지기수다.
그곳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은 술 한잔 기울이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이처럼 앞으로도 내 삶의 원동력이자 활력을 불어넣어 줄지 여전히 새삼스럽게 기대가 될 따름이다. 그래서 국내 한두 대만 존재하는 분신과도 같은 이 자전거에 모레노 아르젠틴(Moreno Argentin)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My Pride And Joy” 정성을 다해 열정적으로 만들었기에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 김태환
<온로드(onroad) vol.6, 지극히 주관적인 시승기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 사진 : 정민철(Colon :D)
http://bianchi.com/ (Bianchi - Performance bicycles since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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