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자전거와 사람을 치유하는 명장, 천호동 골목길 정비센타(엔조이바이크)의 김정환
자전거와 사람을 치유하는 명장, 김정환
자전거 정비를 하고 싶었던 계기는 89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태원 젊은이들이 BMX를 마치 내 몸처럼 가지고 노닐던 모습에 매료돼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남에서 20인치 싱글기어 BMX를 타고 구파발까지 쉴 새 없이 오갔었음에도 지치지 않을 만큼 자전거 타기에 푹 빠져들었다. 심지어 방학 때는 오직 자전거 때문에 보름씩이나 귀가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국내 최초의 BMX 프리스타일 팀 ‘일월’의 소속 선수로 활동하면서 체계적으로 실력을 다져나갔다. 프리스타일은 구조물을 밟아서 펄쩍 뛰어오르는 등 기재 충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종목인데, 90년대에는 극소수의 마니아들만이 BMX를 향유했고, 관련 정비를 시행하는 매장조차도 없다시피 해 자연스럽게 자가 정비를 시작했다.
조립식 장난감과 무선조종 자동차를 좋아했던 청년 김정환은 하늘을 향해 자유로이 뛰어오르는 자전거를 보면서 운명을 감지했다. 그리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들어 낱낱이 파헤쳤다. 그러기를 20여 년, 그는 비단 자전거뿐만이 아닌 두 바퀴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들의 마음까지도 치유하는 명장(名匠)에 반열에 올라섰다.
자전거 튜닝 1세대 기술을 배우다
BMX는 아무래도 상당히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육각 렌치와 스패너 종류만 있으면 분해 조립할 수가 있다. 또 어릴 때부터 오밀조밀한 조립식 장난감에 심취해왔기에 무언가를 조립하는 것과 설명서를 읽는 것도 익숙했다. 그래서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자전거 공학적으로도 매우 단순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기 때문에 정비를 익혀나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즐기거나 정비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은 BMX 스턴트 행사에 출연해 비용을 충당했다. 또 대형 서점이나 주변인들을 통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해 기술적으로 궁금했던 부분들을 해결했다.
1997년도에 마구라(MAGURA)의 유압식 림 브레이크를 다운힐 자전거에 국내 최초로 적용했다. 이를 정비하기 위해 케이블을 재결합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속품인 올리브를 분실해 무선조종 자동차의 부품을 활용해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2003년도에는 산악 자전거의 앞 서스펜션을 탈거하고 리지드 포크를 장착해 타고 다녔었다. 그때는 트레드가 많은 산악용 타이어보다 달리기에 적합한 도로용 슬릭 타이어로 교체하는 이들이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는 싱글 코일(스프링) 구조를 취한 락샥(ROCKSHOX)의 쥬디 SL 모델을 더블 코일 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한쪽 서스펜션의 스텐션 튜브(지지 막대) 내부에 있던 엘라스토머(고무 탄성체)를 빼내고 코일을 삽입한 것이었다.
사이클 정비에 기본을 다지던 시절
12년 전, 김영선의 자전거 마을에 몸담고 있었을 때다. 경륜선수 출신인 김영선 프로는 적정 토크에 대한 부분을 난생처음으로 짚어주면서 거칠게 정비했던 나를 부드럽게 다듬어 주셨다. 또 그의 매장에는 경륜 선수들이 많이 찾아왔었는데, 본드를 흡입하지 않았음에도 환각상태에 빠져 지문이 사라지고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질긴 튜블라 타이어를 수없이 붙여댔었다. 덕분에 접착제 숙성시간과 타이어 중심 잡기 비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경륜선수들은 헤드세트나, BB(Bottom Bracket)와 같은 베어링이 삽입되는 부분에 대단히 민감하다. 특히, 조절식 볼 타입의 BB는 적당한 간격으로 조여야 유격도 없고 구름성에도 좋다. 이를 빠르고도 정확하게 정비하는 법을 자전거 마을에서 익히기도 했다.
프레임 빌딩도 도전했다
미캐닉으로 몸담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자전거 공학에 깊이 빠지다 보니, 프레임에 쓰인 소재나 빌딩에 필요한 진동기, 지그 등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알톤스포츠 매장 매니저로 입사해 일본 동경에서 개최되는 사이클 모드와, 중국 현지의 자전거 생산 설비 견학을 다녀왔다. 고교 시절에는 가지고 있던 크로몰리 BMX 프레임을 잘라내어 용접했었고, 세부적인 부분에 마스킹 처리를 한 뒤 도색 후 열처리로 표면을 강화했었다. 특히, 이 때문에 중국 현지의 젊은 친구들이 지그에 튜빙을 걸어놓고 전기 용접하던 모습이 너무나 쉬워 보였다. 그래서 냉큼 해보았더니 튜빙이 지나치게 달궈져 열 변형이 일어났었다. 덕분에 어설프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가 아니란 걸 깨달아서 당분간은 알루미늄 프레임 빌딩에 대한 꿈은 접기로 했다.
기본에 충실한 정비는 미캐닉의 척도
항상 내 것으로 생각하고 정비에 임하며, 자전거 등급을 나누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격을 불문하고 모든 자전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정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볼트나 너트에 직접 맞닿는 부분이 마모된 공구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음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매 순간 기본에 충실해지려고 노력한다면 당연히 지켜지는 요소들이다. 또한, 변속, 제동 케이블 라인의 자연스러움, 마감재 사용 방식, 림과 타이어의 균형과 같은 자전거 정비에서 어떠한 부분을 얼마큼 깔끔하게 마무리했느냐가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브레이크만 잡아보아도 캘리퍼의 중심이 알맞게 위치했는지 알 수가 있고, 핸들바 테이프가 감겨있는 범위나 문양에서도 작업자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자전거를 보면 미캐닉의 실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직도 바테이프 감는 연습을 하고 있다. 라이딩 자세에 따라 바테이프를 잡는 느낌이 달라야 한다. 드롭바의 하단은 풍성하게 감아야 라이더가 공기저항을 최소화면서 휴식도 취할 수가 있다. 컨트롤 레버가 장착된 드롭바의 중심부는 비교적 단단하게 감아야 강한 스프린트에도 힘 손실이 적다. 상단은 부드럽게 감아야 노면의 충격을 효과적으로 상쇄할 수가 있다. 드롭바의 스타일에 따라서도 감는 법이 달라진다. 아나토믹(Anatomic)의 경우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어우러져야 하고, 클래식바라 불리는 딥(Deep) 타입의 경우 스프린터들이 애용하기 때문에 바테이프를 빈틈없이 단단하게 감아야 한다.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둘 때 기뻐
서울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허민호 선수가 통영에서 개최됐던 트라이애슬론 시합에서 낙차해 프레임이 부러졌었다. 전국체전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모델이 국내에 없어 사이즈가 다른 프레임을 공수해 허민호 선수 체구에 각 부품을 맞춰주었다. 기재 문제로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던 민호가 전국체전 단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했을 때. 내 가족의 일인 듯 보람차더라. 이처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가 가장 기쁘다.
순전히 이익만 쫓고 있는 자전거 업계 반성해야
국내 관련 업계는 자전거 타는 것을 순수하게 즐기지 않고 순전히 이익만 쫓고 있는 게 문제다. 국내 자전거 문화가 태동할 적부터 산악 라이딩을 즐기던 노기탁 씨를 비롯한 수많은 라이더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간절히 바라고도 선망했던 자전거 문화가 하루빨리 국내에 정착되는 데 조금이나 이바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사 코스를 구축하는 등 열정을 불살랐다. 그러나 점차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고 자금이 개입되면서부터 서로 간의 소통이 줄어들었고 파가 갈리기 시작했다. 요즘 업계 사람들은 페달 굴리는 게 좋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닌 것 같다. 그저 보이는 것에 치중해서 가식적으로 미소를 띠는 것 같다. 나 역시 이러한 현실에 염증을 느껴 엘리트 선수들 위주로만 정비 지원을 나가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의 어머니이자 신의 손
자전거를 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을 정비해줬을 뿐인데 ‘신의 손’이라고 칭찬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만큼 선수들이 기본에 충실한 정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부드러운 고무 배합물을 사용한 타이어를 써야 하는 경기에서 딱딱한 타이어로 임하는 경우를 발견했을 때나, 언덕을 빠르게 올라야 하는 클라이머가 톱니 수가 많은 코그를 장착한 채로 레이스에 임하는 사례가 그렇다.
2008년에는 이민혜 선수의 자전거 피팅 수치를 바꿔주었더니 전국체전 3관왕을 차지했었다. 그제야 비로소 엘리트 선수들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드롭바 각도부터 시트포스트 높이까지 빠짐없이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수 모두를 챙기기에 나 혼자로는 역부족이란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부 선수들과는 가족같이 가깝게 지내는데, 선수생활을 하면서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할 속 깊은 이야기들을 귀담았더니 자전거계의 ‘어머니’라 추켜세우는 이들도 더러 있다.
엘리트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매해 뚜르 드 코리아와 전국체전이 끝날 때면 지원했던 팀 저지에 소속 선수들의 사인을 남기고 있다. 세월이 흘러 각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선수들이 마주했을 때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고 싶어서다. 엘리트 선수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엘리트다. 일부 동호인들을 보면 자신이 마치 엘리트인양 주제넘은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그들이 엘리트 선수들이 흘렸던 땀방울을 가늠할 수만 있다면 엘리트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더 겸손해질 것이다. 아울러 엘리트 선수들과 동호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동호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들이 생겨날 것이고 프로 사이클링 문화도 인기를 얻어나가면서 언젠가는 국내 레이스에도 구름관중이 형성될 날이 올 거로 생각한다.
경주마가 되지 말고, 잠시 멈춰 뒤돌아 보았으면
90년대 후반에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위해 배려운전을 했었다. 2000년에도 한강 자전거길에는 전문 복장을 갖추고 라이딩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서로가 마주하면 인사를 나누는 등 지금보다 환경은 좋지 못했어도 배려가 몸에 베여있었다. 그러나 대표적인 예로, 산악 자전거 동호인들의 경우 등산객들보다 앞서 가겠다고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질러대니 등산로에 계단이 만들어지면서 산 밖으로 내몰리는 것을 자초하고 있다.
게다가 자전거를 순수하게 타고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는데, 네가 타는 모델은 가격이 얼마 따위의 장비를 과시하는 보여주기 성향이 강한 것 같아서 아쉽다. 더불어 급작스럽게 관련 산업이 성장해서 무질서한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왜 모두 잠시 멈춰서 뒤돌아보지 않고 경주마가 되려고만 하는지 안타깝다.
공구와 친해지고 끝임없는 자기개발을 해야
현재 스포츠 마사지, 테이핑 등 인체와 관련된 부분과 심리치료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트레이너, 미캐닉, 코치, 감독 등의 팀 스태프들이 더욱 체계적으로 선수들의 운동법을 연구하고 훈련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팀 예산이 줄어가고, 자전거 시장 역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어려움이 따르더라. 게다가 파벌이나 정치 싸움으로 인해 생각만큼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올바른 자전거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날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미캐닉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간은 잠시도 멈춰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매번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시계의 초침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한다. 국내에서 미캐닉은 사실 배고픈 직업이다. 그래서 욕심을 줄이고 마음껏 즐기면서 임하기를 바란다. 바른 정비를 하고 싶다면 공구를 어떻게 잡고 힘을 가할지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공구 잡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미캐닉은 자전거가 아닌, 공구와 친해져야 한다.
<바퀴(baqui) vol.31, Mechanic Blues : Editor's B-Edition>
http://baqui.co.kr/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
골목길 정비센타(엔조이바이크):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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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의 역사 : 두 바퀴에 실린 신화와 열정 (2008, 프란체스코 바로니)
자전거 과학 : 라이더와 기계는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가 (2013, 맥스 글래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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