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리움 : 대한민국과 자아를 후련히 던져내는 여행일기, 그 끝은 삶의 회귀
마침내 그리움 이종환 지음/하늘아래_ 평점 : 85점
그간 나는 무게감이 크지 않은 청량음료 같은 자전거 여행기들을 주로 접해왔다. 그 행적들은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읽혔지만 내용들은 부담스럽지 않고 일상의 대리 탈출을 도모해주는 상쾌함이 깃든 여행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 ‘시라토리 가즈야‘의 ’일곱 개의 자전거 여행‘과 비견할만한 무게감 있고 디테일한 국산 자전거 여행기가 있다.
'이종환‘님의 ’마침내 그리움‘이다. 부제는 ’자전거 타고 대한민국 멀리 던지기‘란다. 무엇이 그립고 무엇을 던진단 말인가? 궁금했다. 그래서 또다시 나는 이루지 못한 내 꿈인 자전거 여행을 누군가의 글로 인해 다시 한 번 떠났다. 그와 함께 대한민국을 한반퀴 돌았다.
자전거를 타는 행위. 페달을 휘휘저어 차근차근 움직이는 자전거 여행은 마치 우리내 인생과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또다시 오르막이 있는 우리 인생사를 고스란히 함축해 놓은 것. 푸른 풍경이 가득담긴 마음까지 확 트이는 자전거도 기분 좋아 흥얼대는 맛있는 길이 있는고 하면 유리조각, 모래 등의 온갖 장애물들이 가득해 자전거를 아파 삐걱되게 하는 맛없는 길이 있는 게 우리네 삶과 쏙 빼닮았다.
누구나 꿈꾸는 낭만
사람들은 자전거 여행을 사서 고생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그들 또한 한 번씩은 꿈꾸는 낭만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풀며 두고두고 우려 낼 수 있는 행위다. 그래서 다분히 매력적이고 도전적이며 건강하다. 매일 100Km 이상을 일정에 맞춰 나아간다. 많은 짐을 싣고 있는 두 바퀴의 페달을 꾸역꾸역 밟아 나가는 길 위에 풍경에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추억들이 새겨져 있고 대한민국의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공존한다. 그렇게 저자는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풍경의 일부가 되고 세상을 몸으로 느끼며 특유의 문체와 내공으로 번뇌를 멀리 던져내고 있다.
이 책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지인 K와 저자가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는 1부 ‘둘이서 던지기’보다는 글쓴이인 이종환님 홀로 남아 여행의 중반부터 끝을 마무리 짓는 2부 ‘혼자서 던지기’라 하겠다. 영암에서 시작하여 여행의 막바지 코스인 강원도의 유난히도 힘든 오르막과 늦가을의 추워지는 날씨까지 겹쳐지는 2부는 저자의 머릿속 생각들과 외로움 자전거 여행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풀어내며 읽는 이의 마음속 깊이 다가서게 된다.
물론, 한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이 부족하단 것과 지도의 사용이다. 1부에서 그나마 자주 보이던 여행 사진이 2부에서는 한층 줄어드는데 홀로 힘든 여정을 떠나다 보니 사진을 찍을만한 여유가 없었을 터 풍부한 문장력으로 그때의 느낌과 풍경을 전달 할 수 있긴 하지만 부연 사진이 더 있다면 더욱 당시 상황이 입체적으로 느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 깃든다. 문체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일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하루하루 일정이 시작될 즈음에 대한민국을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에 맞춰 해당 여행지 포인트를 지도에 표시해 줬다면 독자가 여정을 함께한다는 느낌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농도가 짙어지는 자전거의 매력
어떤 책을 읽다보면 머릿속 전구가 깜빡깜빡 켜지듯 느낌이 탁! 오는 구절들이 있는데 ‘마침내 그리움’ 역시 마침내 있다. 자전거는 타면 탈수록 나와 한 몸이 되고 그 농도는 짙어진다. 여기 이종환님이 말하는 자전거의 매력은 어떠한가?
“자전거가 의식의 활로를 연다. 자전거에게 모든 길은 의식의 활로이다. 그래서 자전거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길을 물리적 공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공간은 때로 의식의 균열이다. 의식의 균열 위에서 몸은 페달에 기댄 채 균형을 유지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온갖 잡념이 반딧불이처럼 오간다. 오고가는 그 잡념을 어느 것 하나 치열하게 붙들고 있진 못하나 의식이 사방으로 열려 있어, 마음은 바람 든 무처럼 생각을 오락가락 붙들고 있다.
이제 생각이 나를 끌고 간다. 자전거가 생각을 좇는다. 속도에 비례해 바람은 나를 자꾸만 뒤로 빠뜨린다. 마음은 끊임없이 한쪽의 쓸쓸함과 다른 쪽의 쓸쓸함을 시계추처럼 오고간다. 그때 발견한 사물의 아름다움, 일말의 풍경, 길은 마치 블랙홀처럼 나를 그쪽으로 빨아들인다. 그 우연한 이끌림은 아주 매혹적이어서 거부하기 힘들다.”
인생의 깊이와 삶에 대한 색다른 시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을 다시금 깊게 느끼게 될. 습기 가득한 골방에서 얼큰한 라면국물에 걸치는 소주한잔에 담긴 여행일기 ‘마침내 그리움’은 그동안의 자전거 여행기 추세에 반하는 수작이다. 가볍게 쓰이고 출판되던 두 바퀴 여행의 올바른 방향성 제시해주는 본작은 마지막까지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화면 갑자기 정지하는 극적인 끝맺음으로 대한민국을 후련히 던져냄과 동시에 인생의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 할 그리움인 일상으로 회귀해 마침내 그리움을 안겨다 준다.
관련 문화평
일곱 개의 자전거 여행 (七つの自轉車の旅) (2008, 시라토리 가즈야)
국어교사 한상우의 자전거 다큐 여행 (2010, 한상우)
자전거 아저씨 1 / 2 (2010, 남궁 문)
관련 용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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