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생의 첫번째, 아버지와 아들의 간절곶 로드 사이클 父子 라이딩 (130916)

소통의 매개
자전거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늘 꿈꾸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를 타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전거 동호회에 나가보면 매력적인 여성들의 뒤꽁무니를 쫓거나 감싸는 남정네들이 유독 많다. 비단 자전거 동호회뿐만이 아니라 남성 비중이 높은 취미생활에는 공통되는 현상일 것이다. 공통된 관심사를 서로가 함께 누리는 것은 누가 뭐래도 서로를 위한 최고의 연애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는 가족에게도 해당한다.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오셨다. 그 때문에 별다른 취미 생활을 즐기시질 못하셨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었던 아버지의 취미라는 영화를 감상하시거나 인근 공원에서 운동하시는 것이 전부였었다.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으니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그가 평생을 꿈꾸셨던 사진을 취미로 삼기에도 쉽지 않으셨으리라. 결론적으로 대기업을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정년 퇴임을 하셨음에도, 여전히 넉넉하지 못한 시간 여유를 가지시는 데에는 능력이 부족한 자식. 바로 나로 인한 문제이다. 어서 호강을 시켜드리고 싶은데, 세상살이가 참 호락호락하지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밤낮으로 365일 중 360일가량을 생업에 종사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우리 가족은 교외로 놀러 간 적이 손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러니까 부자지간에 자전거를 타 본적 역시 얼마나 되겠나.


 

선물
내가 자전거를 인생의 대표 단어로 정하고 난 뒤에 수많은 작은 꿈들이 생겨났다. 그중에는 부자간에 함께 라이딩을 하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한 기회에 트렉(TREK)의 프로젝트원(PROJECT ONE) 마돈(MADONE)으로 프레임을 교체하면서 아버지께 자전거를 선물해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년 퇴임 기념이었다. 자전거는 비록 자동차만큼 멀리 이동할 수는 없지만, 자동차로는 볼 수 없는 골목길 구석구석을 다닐 수가 있었고, 건강에도 좋아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생활의 이동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생활비도 대폭 줄일 수 있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그동안 전국 여기저기를 함께 누비면서 정들었던 2008년식 GT GTR Carbon Team을 기반으로 여분의 부품을 조합해서 시마노 105급 카본 로드 사이클을 완성했다. 비록 중고긴 했지만, 로드 사이클에 입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양이었다. 최근에서야 300g이 넘는 안장과 100g에 가까웠던 휠 세트 퀵 릴리즈(Q.R)등을 교체했다.


 

부자(父子) 라이딩
당시의 아버지께서는 로드 사이클 특유의 공격적인 주행 자세에 익숙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자전거를 함께 타기로 한 날, 왕복 50km 정도의 울산의 입문자들이 많이들 향하는 간절곶으로 코스를 정했다. 하늘이 유난히 높아지고 상쾌한 바람까지 귓가에 스치는 가을날 페달에 발을 올리는 순간부터 벅차오르는 감정이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집 앞 호수공원을 지나 덕하에 잠시 들러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분과 점심을 먹었다.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선물한 자전거 자랑에 여념이 없으셨었다. 부자간의 외식도 실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먹는 음식은 확실히 자동차와 같은 인공적인 탈것과는 다른 원초적인 매력을 선사해서 좋다.


 

간절곶
간절곶으로 향하는 길에는 대규모 공단이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노면의 상태가 좋지 못했고, 기나긴 언덕도 드문드문 있어 걱정됐었으나 기우였다. 아버지께서는 목적지까지 향하기까지에는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잘 달리셨었다. 우리는 새롭게 개통된 자동차 도로에 접어들어 당황하기도 했었는데, 덕분에 잠시 목을 축이면서 찰나의 추억을 남겼다. 가는 길에는 농로도 있는었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적당히 굽이진 길 앞에는 오래된 가옥이 늘어서 있었다. 지나는 곳곳마다 익어가는 벼가 고개를 숙이려 했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맡을 수 없는 쇠똥 냄새마저도 삶에 지친 우리를 치유하는 듯했다. 드디어 드넓고 푸른 동해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더 힘을 내니 목적지인 간절곶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선을 바라볼 수 있는 의자 앉아 아버지와 나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안주 삼아 캔맥주를 들이켰었다. 그리고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비록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우리 부자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되새길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소중한 것들
그때 해변을 배경으로 부자가 함께 찍은 사진은 서로의 책상 위에서 그날의 모습 그대로 멈춰서 있는데, 지금도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부자간 라이딩을 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다짐한 게 있다. 더 늦지 않은 시간에 다시 한 번 아버지와 페달을 굴려야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때 할 수 있던 것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많은 것들을 남겨놓고 싶다. 비단 아버지와의 추억뿐만 아니라 내 삶의 소중한 것들은 예외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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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전거 매장 실장 그리고 월간지 팀장을 엮임 후, 70여년 역사의 캐나다 Ridley's Cycle에서 Senior Service Technician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경험을 녹인 자전거 복합문화공간 <#라이드위드유>를 고향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업사이클을 테마로 한 카페이면서 스캇, 캐논데일, 메리다, 콜나고 그리고 브롬톤, 턴, 버디, 스트라이다, 커넥티드 전기자전거 등을 전개하는 전문점이기도 합니다.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합니다. *찾아가기 | 연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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